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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聖寶) 도난에 대한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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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8년 04월 74호
우리나라 땅의 70퍼센트나 차지하는 산을 오르다 보면 아무리 깊고 높은 곳이라 해도 불타의 자취가 없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곳곳에 자리한 사찰과 암자뿐 아니라 기암을 부조해 만든 석불(石佛)과 거대한 불상들 그리고 버려진 절터의 이끼낀 석탑까지, 곳곳마다 선사(先師)들의 수행과 신앙의 열정이 배여 있다. 어디 산뿐인가.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문화)과 마음의 바탕에도 불교는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이 펴낸 ‘국가지정 문화재 목록’ 에 의하면, 현재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는 국보와 보물을 합쳐 모두 1,165점으로 그 가운데 불교문화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62 퍼센트인 722점으로 나타나 있다. 국보 가운데 53 퍼센트, 보물의 64 퍼센트가 불교 문화재인데 종류를 보면 탑, 비, 석등, 불상, 불화, 건물, 서적, 공예, 당간, 종 들이다. 그밖에 사적지(寺蹟址)와 도(道) 지정 문화재를 합친다면 비율은 훨씬 더 커져 우리나라 문화 유산의 대부분이 불교 문화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은 62 퍼센트나 차지하는 국가 지정 불교 문화재의 현재의 소유자별 현황이다.
불교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41 퍼센트에 불과한 298점밖에 안되고,1 43 퍼센트가 국가 소유로 되어 있고 10 퍼센트에 해당하는 72 점이 개인 소장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는 사설 미술관이나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개인이 소유한 것들 가운데에는 도굴된 것이거나 관리 소홀로 유출된 것이 대부분이고, 공개되거나 노출되지는 않았으나 다수의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가 개인의 창고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문화재를 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 유산으로보다는 희소 가치 있는 골동품 정도로 취급하게 된, 가치관 부재의 배금주의적 사회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니, 점점 더 빈번해지는 도난 사태에다 관리 소홀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불자들부터가 불교 문화재에 대해 민족유산이라는 공유 개념보다는 신앙의 대상인 성보(聖寶)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음도 성보 유실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불교 성보들은 역사적으로 불교가 입은 수난만큼이나 많은 양의 유실과 손실을 입어 왔다. 일제시대 다량이 일본으로 유출되었는가 하면 해방 뒤에는 비구와 대처간의 분규와중에서 많은 손실이 있었다. 지금 일본을 비롯하여 외국에서 박물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성보들은 이러한 때 나간 것이 대부분이다.
6.25 때는 전화로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는데, 장흥 보림사(寶林寺)의 대웅전과 송광사의 청운당(責雲堂)은 국보급 건물이었으나 완전히 소실되었고, 월정사의 정원(貞元) 20년 명문(銘文)의 종(鐘)도 신라의 국보급 유물이었으나 월정사가 타버리는 바람에 녹아 버렸다.
이즈음에 와서는 전문 도굴사범들에 의한 도난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84년 미황사의 목불상(木佛像)이 도난당한 것이나 85년 건봉사의 석가여래 치(齒)사리탑 및 그 기(基)의 부도가 도굴되어 한때 교계가 떠들쩍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밖에도 성보의 유실은 알게 모르게 많이 발생하고 있다.
금년에 들어서만도 전남 화순의 운주사(雲住寺) 입구의 석불 2기가 도난 당해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순천 행림사의 불화, 승주(昇洲) 선암사의 석조물과 불화, 담양용추사의 부도 5기, 송광사의 부도 등 연이어 도난사태가 발생하여 성보 관리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도난사고가 빈발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럴수밖에 없다”고 일축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성보들은 지나치게 방치되어 있다. 운주사의 석불도 그렇고 송광사의 부도도 그리고 산중의 탑들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아무런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사찰에는 비지정 문화재인 각종 성물(聖物)들이 보호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언제 도난당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버려져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성물을 대하는 불자들의 인식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나의,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니 보호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인식보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만을 앞세우며 보전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성보를 관리하는 일을 전담할 불교 내부의 기구가 따로 없는 것도 책임의 소지를 불
투명하게 하는 요소이다. 또한 ‘문화재 보호법’ 이 있고 ‘문화재 관리위원회’가 있다하나, 그것은 실상 관의 간섭만을 심화시켜, 불교인 스스로의 보전 의지를 삭감시키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도난을 방지하고 성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대처 방안으로 나오고 있는 이야기가 ‘성보박물관’의 설립이다. 지난 87년 16월에 개관한 현대식 시설의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을 계기로 하여 이러한 이야기는 실효성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지금 박물관이 있는 사찰은 해인사, 대흥사, 송광사, 통도사, 표충사 들인데 그 시설이 미비한 점이 많을 뿐더러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종단의 거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범종단적인 대응책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판단이기에, 각 본사별로 유실의 가능성이 있는 성보를 옮겨 보관하는 방법을 모색함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 어떤 사찰에서는 관리가 불가능해 성보를 국가에 기증하는 예도 있다고 한다. 본사별 사찰 박물관 또한 결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성보를 지켜야 하는 신앙인의 처지에서 반드시 진지한 검토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동국대학교 박물관을 ‘중앙불교 박물관’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물론불교의 성보는 신앙의 대상이기에 제 자리 곧 지금 놓여 있는 자리에 있어야 제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것은 따로이 보호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고, 우선 옮겨서 보관하는 것이 가능한 성물들을 박물관에 모아 전시하면 잘 보전도 되려니와 성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육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도난사태에 직면한 성보들은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적 가치가있다고 판단된 것들이다. 그러나 불자에게는 불물(佛物)하나하나가 성보가 아닐 수 없다. 옛 사찰의 가람 배치, 탑과 석등, 당간 지주, 갖가지 석조물과 전각들, 이 모두가 살아 있는 성보들이다. 그 속에서 선인들의 신앙과 땀과 전통이 계승되고 있음에서이다.
등산로 주변의, 기암괴석을 부조하여 만든 석불은 좀처럼 수난을 면할 수가 없다. 빨간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려놓는가하면 낙서와 함께 자기 이름을 거기에 새기는 이들도 있다.
제주도 관음정사와 대각사는 기독교의 광신도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금산사의 대적광전은-여러 이야기가 있지만-조그만 실수로 인한 불씨가 그러한 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않아 땅속에 묻혀 있거나 외면되어 훼손되고 있는 성보도 많다. 최근 판교~구리, 신갈~반월간 수도권 순환속도로로 공사지역 안에 고려시대 절터인 대원사지(大圓寺址)와 석불3기를 비롯하여 많은 선사시대 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대해 서울대 박물관 팀과 충북대 박물관 팀은 최근에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여 공사 착공에 앞서 유적 보호를 위한 본격적 학술탐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예는 더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훼손될 위험에 처한 성보를 발견하고 보존하는 것이 불교 자체에서만 감당하기는 힘든 작업이라면 각 대학이나 기타 탐사반과 연계를 맺어서라도 우리의 성보는 우리가 찾아 나기야 할 것이다.
불자들의 성보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도난방지를 위한 대책의 수립뿐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각종 위해 사태에도 대처할 방안의 모색이 요구된다. 목재로 지어 타기 쉬운 사찰은 화재로부터의 예방책이 필요하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많은 성보들의 자연적, 인공적 훼손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자들에게는 성보가 관람의 대상물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임을 인식시키고 그 유래나 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성보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함으로서 외경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래야만 성보는 불자들 스스로에 의해서 보호될 수가 있다.
불교의 성보에는 민족의 애환이 서린 이야기들이 담긴 것이 많다. 석가탑과 다보탑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며 에밀레종의 이야기며 우리의 전설은 대개가 이런 성보와 연결되어 있다. 그만큼 불교의 성보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역사와 함께 숨쉬면서 민족의 한과 설움과 기쁨을 투명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렇기에 어느 기독교 목사가 외국에 나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박물관에 놓인 불상’ 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에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리라. 그것은 종교를 떠나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교적 바탕을 말해 준다. 높은 건물과 정교한 건축 양식 속에 소박하지만 둥근 선의 불상은 뜨겁게 솟아오르는 뭉클함을 안겨주었을 것을 우리는 공감한다. 그래서 불물(佛物)은 문화 유산의 가치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현존하는 성보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는 데에는 우리 선사와 불자들의 목숨을 건 호지의 정신이 있어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오대산싱원사를 구한 한암스님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6.25 때 인민군을 추격하던 국방군은 오대산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인민군이 사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으므로 상원사를 불태울 계획을 세웠다. 명령을 받은 젊은 장교가 상원사를 소각하려 하자 혼자서 절을 지키던 한암스님이 “나도 절과 함께 불타죽겠다”고 버티니 그 장교는 하는 수 없이 문짝 몇개를 떼서 불태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고려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는 해인사도 폭격으로 소실될뻔 하였으나 어느 장교의 기지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당시 미군은 가야산에 있는 공비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서 해인사를 폭격하라고 했으나 명령을 받은 한국 공군의 조종사는 일부러 다른 곳을 폭격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렇게 바로 ‘우리’ 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불교의 성보(불교문화재)들이 도난되어 몇푼의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하니 퍽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이나 채 값어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전도된 이 세상에서, 불자들은 우선 우리 유산을 보전하고 계승시키는 데에서부터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