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rchives of Buddhist Culture, 이하 ‘ABC’) 사업단은 201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국내외 불교기록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있다. 작년에는 평창 지암정사와 대구 동화사 · 용연사 · 신둔사 · 파계사 소장 불교고문헌을 조사한 바 있고, 올해는 더욱 규모가 확장되어 해인사를 비롯하여 중앙승가대학 · 서울대규장각과 업무협약서를 체결하여 불교기록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내외의 모든 불교고문헌의 서지사항을 입력하고 고해상도로 촬영하여 검색 가능한 텍스트로 글자를 변환한 후에 번역하여 인터넷을 통해 무상으로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불교계 최대의 학술문화 사업이다.
지금까지는 불교고문헌의 보관 상태를 파악하거나 몇몇 학자들의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ABC사업단은 불교고문헌에 대한 정밀 조사를 통해 그 가치를 재발견할 뿐만 아니라 문헌의 사진이미지 및 번역문을 제공하여 연구 및 관리가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불교고문헌의 네트워크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등의 큰 사찰은 물론이고 전국 각 기관과 개인 소장의 불교문헌도 온라인을 통해 같은 판본과 다른 판본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새로운 자료의 발견은 물론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불교학술원 ABC사업단은 집성팀, 역주팀, 편찬팀, DB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성팀은 국내외에 있는 한국 찬술 및 간행 불교고문헌의 조사와 촬영을 하고 있다. 역주팀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경전 및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문헌들을 비롯하여 집성팀에서 새로 발굴한 문헌들을 번역하고 있으며, 아울러 번역전문가 양성을 위해 6년 과정의 불교한문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편찬팀에서는 집성팀에서 발굴한 문헌과 역주팀에서 번역한 것을 출판하거나 문헌 해제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DB팀에서는 집성·역주·편찬팀의 성과물들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기 위한 DB구축 및 시스템 개발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ABC사업단은 40여명의 교수·박사급 인력과 20여명의 연구보조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불교학술 사업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해인사에서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ABC사업단 집성팀은 올해 5월 7일부터 해인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서 고서를 조사하기 시작하여 약 1개월에 걸쳐 기초조사를 진행하였다. 집성팀의 조사 방법은 먼저 문헌에 대한 기초조사를 통해 문헌의 성격을 파악하고 번호를 부여한 후에 제목사항, 발행사항, 형태사항, 판각인명정보 등의 40여 개 항목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루어진다. 정밀조사는 연구원 2인이 1조가 되어 하루에 평균 5책 정도의 분량을 조사하고 박사급 전임연구원이 검수를 함으로써 최대한 오류가 없도록 한다. 정밀조사 후에 3.5m 높이에 겹겹이 설치된 조명시설의 도움을 받은 디지털 카메라가 고문헌을 60메가 이상의 초정밀촬영을 한다. 이렇게 조사하고 촬영한 것은 모두 해인사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공동소유를 하며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기초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흥미 있는 기록물 두 가지를 발견하였다. 하나는 고려대장경 인출과 관련된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소초 간행과 관련된 기록이다. 먼저 19세기 이후 고려대장경 인출과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모두 6차례 인출한 기록이 있다. ①1865년에 인출한 2부 가운데 1부가 현재 오대산 월정사에 봉안되어 있고, ②1899년에 인출한 4부는 통도사, 송광사 등에도 보내졌고 현재 해인사 수다라장에 봉안되어 있다. ③1906년에는 1,400권을 인출하여 금강산 정양사에 봉안하였지만 현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으며, ④1915년에 인출한 3부 가운데 1부는 서울대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또 ⑤1937년에 만주국 황제의 요청으로 인출한 2부 가운데 1부는 묘향산 보현사에 봉안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⑥1963년부터 1968년까지 동국대학교에서 주관하여 인출한 13부는 동아대, 성균관대, 일본, 미국, 영국, 호주, 대만 등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인출된 것 가운데 고려대장경 완질이 보관되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인출한 판본으로 동국대학교에서 고려대장경 영인본을 발행하였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완벽한 고려대장경은 출판되지 못하였다. 경전의 장차가 뒤바뀌거나 결락된 부분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 인출한 시기에 따라 달라진 글자에 대한 정확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려대장경을 우리나라 최고의 보물로서 소중하게 관리해왔고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들이 발표되었지만 정작 고려대장경 그 자체에 대해서는 가장 기초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다. 이제부터라도 시간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말고 차근차근 기초적인 조사부터 진행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번 집성팀의 조사에서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고문헌 가운데 1937년 고려대장경 인출과 관련한 재미있는 기록을 발견하였다. 이 기록은 고려대장경 판본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모다라니신경》의 앞속지에 필사되어 있었다.
보결인출전말補缺印出顚末
本寺曾前奉安高麗大藏一部 是李朝高宗三十六年己亥 化主梵雲公印出者也 而中間所遺失散秩者多矣 今昭和十二年丁丑歲 朝鮮總督受滿州國皇帝之依賴 命帝大高橋博士就于本寺印經 時印出補缺納上者 合壹百三十二卷也 時海印寺釋古鏡德元記
본사가 전에 봉안했던 고려대장경 1부는 고종 36년 기해년(1899)에 범운 스님이 화주가 되어 인출한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유실되어 산질이 많았다. 지금 소화 12년 정축년(1937)에 조선총독부에서 만주국 황제의 의뢰를 받아 경성제국대학의 다카하시 박사에게 해인사에 가서 대장경을 인출하도록 하였다. 이때 결본을 보충 인출하여 헌납한 것이 132권이었다. 당시 해인사 승려 고경 덕원이 기록하다.
1899년과 1937년의 대장경 인출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위의 기록에서 그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 판본이 1937년에 인출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당시에 사용된 종이를 기준으로 1899년 판본이나 그 이후의 판본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기록이 없다면 판본이 있어도 몇 년경에 인출된 것인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기준이 될 만한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은 조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마운 자료인 것이다.
다음으로 《화엄소초》와 관련한 흥미 있는 문헌을 발견하였다. 이 《화엄소초》는 1681년에 전라남도 임자도에 표류해온 중국 상선에 있던 것을 백암성총(1631-1700)이 수집하여 1695~1700년에 걸쳐 복각한 것이 처음이다. 80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16~17세기에 걸쳐 중국에서 간행된 가흥대장경의 일부이며 천자문 순서로 권차가 새겨져 있다. 당시 백암성총의 간행으로 인해 조선후기 화엄학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1770년경에 낙안 징광사에 보관되어 있던 《화엄소초》 목판이 화마를 만나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설파상언(1707-1791)이 중심이 되어 1773~1775년에 걸쳐 다시 복각하여 덕유산 영각사에 봉안하고 인출하였다. 하지만 전국적인 화엄학의 유행으로 인출이 빈번하여 판목 상태가 점점 좋지 않았다. 그래서 1852년에 남호영기(1820-1872)가 다시 복각하였고 그 목판이 현재 서울 봉은사 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전국 사찰에 있는 《화엄소초》는 1700년 징광사판본과 1775년 영각사판본, 그리고 1852년 봉은사판본이 혼재되어 있다. 아직 이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서 집성팀에서 여러 차례 《화엄소초》를 조사했지만 어느 판본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그 세 판본이 모두 있었다. 어느 것도 완질은 아니지만 세 판본을 비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우리 조사팀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간기나 각수명이 다른 세 판본을 펼쳐놓고 판각상태와 종이질, 그리고 판각인명정보의 차이를 조사하였다. 징광사판본은 영각사판본이나 봉은사판본에 비해 글자새김이 정교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종이는 18세기 간행본에서 흔히 보이는 색감이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영각사판본은 다른 두 판본에 비해 글자새김이나 종이 질감도 투박하였으며 글자가 다르게 판각된 부분도 있었다. 봉은사판본은 글자가 다소 길쭉하면서도 예리하였는데 책말에는 반드시 판각에 참여한 시주자 이름이 동일한 형식과 필체로 새겨져 있어서 다른 두 판본과 구별되었다. 그리고 봉은사판본 가운데는 징광사판본과 영각사판본의 글자가 달라진 부분을 비교하여 적어 놓은 교감본이 있었다. 이 교감본은 향후 징광사판본과 영각사판본을 구별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문헌을 조사하다보면 흥미 있는 자료들이 발견된다. 해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어느 곳보다 더욱 가치 있는 자료들이 해인사 곳곳에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그런 자료를 찾아내어 조사하고 촬영함으로써 누구나 그 자료를 볼 수 있도록 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집성팀의 역할이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떠돌이 인생의 고단함은 물론이고 생각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4,700여개의 유가목판 클리닝 작업이 최대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이 목판들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먼지를 털어내고 반들반들하게 닦아내어야 한다. 그 많은 목판을 끄집어내어 클리닝 한다고 생각해보라.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약 1개월의 클리닝 작업에 동원되는 우리 집성팀의 연구원과 촬영팀원들은 그 먼지구덩이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여러 차례의 조사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었듯이 이번에도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아무쪼록 ABC사업단의 조사가 원만히 성사되어 불교기록문화유산이 과거의 문화재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활용될 수 있도록 새 단장을 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인사를 찾고, 더 나아가 한국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