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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대승大乘의 수행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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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도무지┃해인사승가대학 3학년 2013년 07월 377호

서울 관악산 아래 조그만 암자에 출가 전부터 알고지낸 노스님이 한분 계십니다.
그 스님은 올해 세수世壽 85세이시면서 아직도 매일 아침 산에 오르십니다.
이는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 속인들과의 사교社交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본인의 밥값, 시줏값을 하기 위해서 이십니다.
매일 약수터에 앉아 계시면서 인연이 되는 사람들에게 불교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네들의 이런저런 고민상담도 해주시면서 오전 시간을 보내십니다.
스님은 이젠 약수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유명인사이십니다.

무슨 기연奇緣으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여쭈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대승불교의 수행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불교는 대승불교가 아니다.
중생구제는 그만두고 자기구제도 못하면서 중생들에게 폐만 끼치고 있다.
우리가 남방불교의 수행자들을 소승이라 얕보고 깔보고 있지만
우리가 그네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네들만큼 자기의 수행에 투철한가, 아니면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고 있는가?
우리가 스스로를 대승불교의 수행자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개인적인 수행뿐만 아니라 이를 사회에 회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고, 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불교의 존재가치도 없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중생에게 이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밥값이다.“

스님이 계신 암자는 여러 특색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법당 현판懸板이 여느 절과 다르게 “민중법당民衆法堂”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그러한지 여쭈었더니 이러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여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부처님 시봉侍奉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중생을 부처로 섬겨야 할 때다.
살아있는 중생 모습의 부처님 한 분이 수천 년이 넘은 나무토막 부처님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고,
어제 갓 출가한 행자님 한 분이 죽어 없는 고승대덕 수천 명보다 훨씬 귀한 것이다“

여든을 훌쩍 넘기시고 아흔을 바라보시는 노스님의 이런 말씀은
제 자신의 중생활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만큼 강렬한 것이었고,
출가 전부터 노스님께 들어왔던 이러한 말씀들은
자연히 저의 중생활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지침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말씀들을 곱씹으며 ‘나 자신이 정말 대승불교의 수행자인가, 과연 내가 이 중생계에 무슨 이익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흔히 북방불교北方佛敎는 대승불교大乘佛敎라고 하여 버스에,
남방불교南方佛敎는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하여 자가용에 비유하곤 합니다.
남방불교는 개인의 깨달음만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하여,
북방불교는 중생의 구제까지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가용은 자리를 꽉꽉 채워 5명이 타고 있는 데 반하여
버스에는 달랑 운전기사 한명만 타고 있다면,
과연 이 버스를 대승大乘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의문입니다.

이제는 형식보다는 실질을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자가용이니 버스니 하는 모습에서 탈피하여
‘그 안에 누구를 얼마만큼 태우고 있는가.’하는 점을 살펴야 합니다.
대승불교라는 이름의 허울뿐인 환상을 좇지 말고,
대승의 행行이라는 알맹이를 구해야 할 때입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 아닌 ‘내구보리內求菩提 외화중생外化衆生’으로,
안으로 깨달음을 구하여 얻어진 수행의 결과물을 즉각즉각 말과 행동을 통해 중생계에 회향해야 할 것입니다.
중생구제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중생의 아픔을 위로할수 있는 사소한 말 한마디와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소소한 행동 하나에 불교의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얼마 전부터 포행布行할 때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의 위치에서 그나마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얼마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를 줍다보면 스님이 쓰레기를 줍고 계시니
쓰레기를 버리면 절대 안 된다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어느 새 저를 따르며 쓰레기를 줍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사뭇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실감합니다.

저에게는 조그만 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평생을 나무 심는 스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잠시 다녀가고 없어도
제가 심은 나무들은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드리워 누군가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이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량이 되며,
낙엽과 가지를 떨어뜨려 누군가의 추위를 감싸주는 땔감이 된다면
이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하안거해제 방학에도 저는 노스님을 찾아뵐 것입니다.
언제나 찾아가면 고령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붙잡아 놓고 1~2시간을 말씀하십니다.
본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본인 살림살이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주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을 알기에 저는 방학 때만 되면 노스님을 찾아뵙곤 합니다.
언제나 방학이 기다려지는 것은 노스님을 뵙고 귀한 법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노스님께 전화를 한번 드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