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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감춘 사복(蛇福)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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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엮은 삼국유사 - 김호성 1988년 04월 74호
삼국유사는 고려 25대 충렬왕 11년(서기 1285년)에 일연(一然) 스님이 쓴 책으로,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뿐더러 신화나 전설 및 시가 들을 많이 싣고 있는 삼국유사를, 오늘에 이르러, 알기 쉬운 글로 풀이하여 되비추어 보는 작업은 불교라는 틀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를 바로 본다는 데에서 그 깊은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엮는 삼국유사’는 첫째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둘째로, 필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의 사회사 및 생활사를 복원한다는 관점에서 내용을 보태기도 하며, 세째로, 글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꾸며서 설명은 되도록 줄여 나갈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 편의 ‘샤복불언(蛇福不言)’ 조(條)를 소개한다.


1
원성왕(元聖王) 때의 일이다. 서라벌의 한 민가에서 들려오는 모녀간의 대화를 보자.
“어머니, 오늘은 2월 초여드레예요. 앞으로 이렛동안 흥륜사에서는 탑돌이를 한답니다.”
“그래. 그야 오래된 풍습이지. 하지만 그냥 노는 양 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께 복을 비는 모임〔福會〕인 게야”
“어머니, 우리 함께 다녀와요.”
“그러자꾸나.”
흥륜사는 신라 최초의 절로, 부처님의 진리를 처음 일으키고 편 곳이라는 뜻에서 홍륜사(興輪寺)라고 이름하였다.
“어머니, 이 곳에 계신 스님상(像)들은 누구신가요?”
“글쎄, 이 어미도 잘 모르겠구나. 마침 저기 스님이 계시니까 가서 여춰 보렴.”
“스님, 여기 이곳에 계신 분들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동쪽에 모신 분들은 아도 (我道), 이차돈(異次頓), 혜숙(惠宿), 안함(安含), 의상(義湘)스님이시고 서쪽에 계신 분들은 표훈(表訓), 사복(蛇福), 원효(元曉), 혜공(惠空), 자장(慧藏)스님이랍니다.”
“다른 분들은 다 말씀을 들은 적 있는데, 저기 사복스님만은 처음 듣겠군요. 어떤 분이셨나요? 큰스님이셨는지요? 어떻게 우리나라 열 분 큰스님〔新羅十聖〕을 꼽는 중에 들어가 계신가요?”
“사복스님은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므로 크게 유명하지는 못했지만 원효스님보다 더 훌륭하답니다.”

2
“여보게, 저 집에 사는 과부가 아이를 낳았다며?”
“글쎄, 동네 꼴이 말이 아닐세그려. 과부가 아이를 낳지 않나…”
“아니야, 자네들 추측이 틀릴 수도 있어. 그 여자는 우리 만선북리 (萬善北里)에서도 가장 몸가짐이 단정하고, 절에도 열심히 다니는 불심 깊은 여자야.”
“절에만 열심히 다니면 남자 없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암, 부처님의 세계는 우리네 중생들이 다 헤아릴 수가 없지. 나도 들었는데 훌륭한 도인이 태어날 때는 인간의 욕정을 빌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네.”
“그건 말도 안 되네. 아무리 불교의 묘리가 깊고 깊다지만, 어찌 상식 밖의 이야기를 용인하겠는가?”
“그런데, 태어난 아기가 병신이라는데, 울지도 못하고 기어다니지도 못한대. 다 크고 나서도 그러는 것 아닌가몰라. 울지도 못하니까 말도 못하겠지.”
“과부가 애를 낳았으니 부처님의 벌을 받은 게지.”
“여보게들, 남의 이야기라고 그리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닐세. 비범한 인물의 탄생에는 흔히 기이한 일들이 있질 않던가?”
“아무래도 자네가 수상허이. 혹시 그애 아비가 아닌가?”
“예끼. 이 사람…”

3
“스님, 원효(元曉)스님 계십니까?”
“누군가?”
“예. 저는 서라벌 알천(關川)의 북쪽, 만선북리(萬善北里)라는 마을에 사는 뱀동이〔蛇福〕라고 합니다.”
“음, 내 일찌기 자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
“스님, 거두어 주소서.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스님을 찾아서 완산주(完山州) 고대산(孤大山)의 보덕(普德)스님이 계신 절에 가서 물으니 이 토굴을 가르쳐 주시더군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이나 말도 하지 않았으며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다시 더 배울 불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불법을 행하고 있거늘.”
“말 있음의 도(道)를 배우고자 하나이다.”
“차(茶)나 한 잔 마시자.”
“스님, 차를 다릴 물이 없습니다.”
“중생들이 삼계(三界)에 윤회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열심히 정진하여 물보다도 더 차가운 얼음이 되어야 하네.”
“예.”
“도(道)는 스승이 주는 것이 아니네.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가는 것이지. 나는 서라벌로 가겠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봄날, 뱀동이 사복은 고선사(高仙寺)에 머물고 있는 원효를 찾아왔다.
“스님, 스님과 제가 옛날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지금 죽었습니다. 함께 가서 장사를 지내주시지 않겠읍니까?”
사복이 모시고 정진하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경(經)의 공덕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서 훌륭한 스님 아들을 두었으니 이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야겠지.”
“그러니까 스님께서 가셔서 업장을 소멸하여 참회시켜 주십시오.”
사복은 원효스님과 함께 노모가 계시던 만선북리로 향했다.
“스님, 세상에 대한 애착이 끊어지도록 포살(布薩)을 해주시지요.”
“그러지.”

나지 말지어다 莫生兮
그 죽음이 괴로우니 其死也苦
죽지 말지어다 莫死兮
그 태어남이 괴로우니 其生也苦

“스님, 무얼 좀 깨달았노라고 글을 길게 쓰고 말을 많이 하면 다 도인(道人)인가요? 남들이 일컬어 성사(聖師)라 하니 진짜 그런 것으로 생각되시는가요?”
“자네는 아까부터 심상찮더구먼. 그렇다면 자네가 직접 한 번 해보게나.”
“예 그러지요.”

죽고 나는 것이 괴롭다 死生苦兮

“깨치기 전에는 내가 그대의 스승이었으나, 깨치고 나서는 도리어 그대가 스승이네. 이제 장시나 지내세.”
두 스님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의 동쪽 기슭으로 갔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호랑이〔智惠虎, 사복의 母 〕를 지혜 숲속〔智惠林〕에 장사함이 좋지 않은가” 하고 원효스님이 비유하여 말하였다. 그러자 사
복이,

그 옛날 석가모니불(佛)은
사라수(沙羅樹)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 역시 그와 같은 이 있어
연화장세계(運華藏世界)에 들고자
하네.

라고 말을 마치고 나서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아래에 세계가 있는데 맑고 깨끗하며 빛이 나고 칠보로 장식한 난간과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함께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졌다.

4
“아니 스님, 사복은 어디 가고 혼자 돌아오십니까? 장사는 잘 치루셨는지요?”
“사복은 열반에 들었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복이 띠풀의 줄기를 잡고 뽑으니 땅밑에 연화장세계가 나타나 어머니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네. 확실히 그의 도(道)가, 스승이었던 나보다 훨씬 깊었던 것이지. 입으로 말하고 글로 쓰기만 하던 나에 비해 그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몸소 열어서〔開〕, 보이고〔示〕 또 직접 들어간〔悟入〕 것이지.
나의 수행올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겠네. 말이란 것이 법 (法)의 참뜻을 얼마나 담을 수 있었더란 말인가? 온갖 법〔諸法〕의 참뜻은 오히려 언설(言說)을 넘어서는 것이니, 이제 또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네.”
“스님, 어디로 가시겠읍니까? 이제 가시면 언제나 다시 오시겠읍니까?”

말없음으로 진리를 나타내며
저자 속에 빛을 감춘 용,
한 번 일어나 하늘로 날아갔네.
스승을 오히려 깨우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