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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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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4월 74호
국군과 미군이 바다와 육지를 에워싸고 올라온다고 했다. 인민군이 쫓겨가면 그 동안 인민군에게 부역을 하거나 의
용군으로 나간 식구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점득이 외숙부님은 마을 어른들이 다 떠나가도록 머뭇거리고 남아 있었다.
“당신도 승기 데리고 가세요. 무엇보다 목숨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어요.”
외숙모는 간곡하게 떠나기를 권했다.
“우리 여자들이야 무슨 일이 있겠어요. 인민군 후퇴는 잠깐 동안 물러났다 쉬 돌어온다니까 그 동안만 피해야 하지않겠어요.”
점득이네 어머니도 같어 외숙모의 말을 따르라고 했다.
“국군은 닥치는 대로 죽인다고 했어요. 형님은 제가 돌보고 있을 테니 오빠는 걱정 마셔요.”
결국 외숙부는 북으로 떠나기로 했다.
“아버지!”
떠나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승기가 불렸다.
“……”
외숙부는 말없이 승기를 돌아다 봤다.
“나도 가겠어요.”
승기 말에 외숙모와 어머니가 같이 승기 등을 떼밀었다.
“그래, 따라가거라.”
“오빠, 데리고 가세요.”
외숙부는 말없이 승기 손을 잡고 집을 나갔다. 뒷산 모통이 뚫어진 오솔길로 바쁘게 아버지와 아들이 멀어져갔다.
외숙모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울며 지샜다.
“다 가버렸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떠나가버렸어. 승숙아… 너만이라도 돌아 와 다오… 승숙아… 승호야…”
어머니는 외숙모를 달래었다.
“해방군이 임시로 후퇴했다가 다시 돌어온다고 했잖아요. 오빠는 쉬 돌아올 거여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도 역시 두렵고 외로웠다.
다음날, 과연 가장 앞선 국군 부대가 미군과 함께 나타났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 시커먼 얼굴의 혹인 병사, 모두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인민군부대에 붙어서 일하던 사람들이 금방 국군과 미군들에게 옮겨갔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가 없어지고 나이 많은 어른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쪽 저쪽 맞춰가면서 처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점득이네는 장터 판순이네 집이 불에 타버려 할머니와 종대까지 모과나무골로 옮겨왔다. 혼자 남은 외숙모한테는 식구가 많아진 것이 오혀려 다행이었다.
여기 저기서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인민군 유격부대의 마지막 전술이라고 했다. 장터마을 냇가에 머무르고 있던 미군 야전부대에 갑자기 기습공격을 해온 인민군 유격부대는 3분의 2나 되는 미군을 죽이고 달아났다. 모과나무골까지 발칵 뒤집혀진 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국군과 미군이 달아난 인민군을 잡기 위해 빈틈없이 둘러쳤다.
그날 밤, 사방이 조용해지고 간간히 먼 곳에서 총소리가 울려오는데 외숙모는 역시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다. 그러다가 겨우 잠이 들었을 무렵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누가 부르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깨었다.
“어머니… 어머니…”
“……”
외숙모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 접니다. 승호입니다…”
“……”
외숙모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머니…”
“누, 누구냐?”
“승호입니다.”
외숙모가 부시시 일어나자 곤히 잠들었던 어머니도 눈을 떴다.
“스, 승호라니? 승호라니…”
어머니가 황급히 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 검은 그림자가 우뚝 서 있었다.
“……”
“고모님!”
승호는 나직히 그러나 반가운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승호야!”
외숙모와 어머니는 뛰쳐나가 승호를 껴안았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네가… 네가 이렇게 돌아오다니…”
외숙모는 승호의 팔을 잡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붙어 있었다. 승호는 그렇게 끌려들어가듯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승호는 몹씨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아버지는 승기하고 같이 떠났단다. 인민군이 내려오면 돌아올 거야.”
“그, 그러셨읍니까?”
승호는 잠깐 눈을 감었다가 떴다.
“어머니, 고모님, 저도 곧 떠나야 합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어머니 모습이라도 뵙고 가려고 들른 것입니다.”
“안돼! 넌 남아 있어야 한다.”
외숙모는 승호의 거친 손을 힘껏 틀어쥐었다.
그 때,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발자국 소리가 요란한 걸 보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승호는 벌떡 일어났다. 일어서는 승호의 모습을 보니 발에 너덜거리는 군화를 신은 채였다.
어머니와 외숙모가 똑같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서 저리로 도망치거라.”
어머니가 속삭였다.
승호가 뒷문 고리를 잡고 막 열었을 때, 앞쪽 방문이 열리며 무장을 한 군인이 방으로 성큼 들어섰다. 외숙모는 쓰러지며 그대로 까무라쳤다. 삼년 전에 토벌대가 밀어닥쳐 집에 불을 지르고 외숙부를 끌고 갔을 때의 일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뒷문 쪽 바람벽에 구멍이 여기 저기 뚫어졌다. 승호가 뒤란으로 빠져나가고 국군이 뒤를 덮치듯이 따랐다.
총소리가 계속 울리고 고함소리가 났다.
건넌방에 자고 있던 아이들과 판순이네 할머니가 깨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승호야! 승호야!”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점득이는 단숨에 어머니께 달려갔다.
“엄마, 정말이야? 승호 형이 왔어?”
어머니는 대답 대신 점득이 손을 끌고 일어났다. 마당으로 뛰어내리자 사립문으로 달려갔다.
“승호야! 승호야…!”
손전등 불빛이 이리 저리 엇갈려 비추어지고 총소리도 계속 울렸다.
“형! 승호 형!”
점득이는 온몸의 힘을 다해 불렀다. 골목길을 돌아 승호가 달아났을 성싶은 뒷산 쪽으로 쉬지 않고 뛰었다. 싸리 울타리가 얼기설기 둘러쳐진 감나무집 옆골목을 빠져나가면 산밑으로 막다른길이 나온다.
어머니와 점득이는 우뚝 발길을 멈추었다. 기어코 승호는 붙잡힌 것이다. 점득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뒤따라 몰려온 점례와 종대, 판순이도 점득이 곁에 바싹 불어서서 울먹거렸다. 승호는 포승줄로 손을 뒤로묶인 채 군화와 총대로 채이며 맞으며 끌려오고 있었다.
“형! 승호형… !”
점득이가 불렸다. 손전등 불빚이 흔들리는 속에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승호의 모습은 똑똑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꾸부리고 걷던 승호가 순간 고개를 들었다.
“점득아!”
승호 형이 틀림없었다. 삼년 전에 산 위 소나무 아래에서 나라와 해방을 위해 일하겠다던 승호 형이었다. 그 때, 점득이한테 다정하게 얘기해 주던 그 목소리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형!”
점득이는 목이 메었다.
“승호야! 승호야…”
“오빠! 오빠… !”
어머니와 점례 누나가 역시 목메인 목소리로 불렀다.
“고모님, 안녕히 계셔요. 우리 어머니 보살펴 주십시오. 점득아… 점례야…”
그러나 승호는 더 이상 말을 못했다. 군인들은 사납게 떼밀며 차면서 끌고 갔고, 서 있는 점득이네를 거칠게 떠다 밀었다. 어머니는 골목길 울타리 밑에 쓰러지듯 주저앉았고 군인들은 사냥으로 잡은 짐승처럼 승호를 끌고 갔다.
“형…!”
점득이가 달려가자 총을 겨누며 군인이 막았다. 그토록 애타게 삼년을 기다리며 보고 싶어했던 승호는 이렇게 변변히 얼굴도 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안방에 희미한 호롱불이 켜져 있고 판순이네 할머니가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운없이 봉당에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형님!”
삭사리에 피를 흥건히 토해 놓고 외숙모는 죽어 있었다. 판순이네 할머니는 어쩔줄 모르고 한 쪽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울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외숙모의 몸을 흔들고 가슴의 맥박을 짚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몇번 치더니, 이렇게 피를 토해 놓았오.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그만 숨이 넘어간 거요.”
판순이네 할머니는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빌고 있었다. 두 손을 모두어 비비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점례는 걸레로 피를 닦었다. 어머니가 걸레를 되받아들고 나가 물에 헹그어왔다. 방바닥을 깨끗이 닦고 외숙모의 옷을 갈아입혔다.
“너희들은 그만 건너가서 자거라.”
아이들은 건넌방으로 갔다.
점득이는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살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골목길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서성대며 보초를 서 있었다.
안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나왔다.
“게 누구냐?”
점득이는 어머니께 다가갔다.
“엄마!”
어머니는 점득이를 껴안았다.
“승호 형은 이젠 죽는 거지?”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보자.”
“날이 밝거든 찾으러 가요, 엄마.”
“그래, 찾아가자. 찾아가서 돌려달라고 그러자. 돌려주지 않으면 함께 죽는 거야. 모두 죽여 달라고 하는 거야.”
어머니도 울고 점득이도 울고 둘은 마냥 서서 울었다.
날이 밝았다.
어머니는 외숙모의 시신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삼베 홑이불로 덮었다.
“할머니, 잠시만 지켜 주셔요. 승호한테 가보고 오겠어요.”
“그 총각이 어디 있는 줄은 아오?”
“물어보면서 가겠어요. 아직 멀리 데려가지는 않았을 거에요.”
점득이와 점례가 함께 따라나셨다. 종대와 판순이가 같이가겠다는 것을 어머니는 말렸다.
“너희들은 할머니 곁에 있거라. 갔다가 곧 올 테니까.”
가을 아침, 하늘이 유난히도 맑았다. 셋은 이슬이 갈린 들길을 걸었다. 무장군인들이 여기 저기 대열을 짓고 서 있거나 걸어갔다.
“엄마, 저기 천막이 있는 부대로 가봐요. 그쪽으로 끌고 갔을 거에요.”
점례가 포풀라나무가 있는 강둑을 가리켰다.
“그래, 어서 가보자.”
셋은 가슴을 할딱이며 두려움을 무릎쓰고 걸었다.
어젯밤의 총소리와 소동은 거짓말인 것처럼 들판은 조용했다.
그러나 찾아간 부대 앞에서 어머니는 총을 든 국군에게 떠밀려나왔다.
“빨갱이를 만나러 왔다니, 당신들은 간첩일지 모르겠소.”
“승호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착한 아이어요. 여기 있으면 좀 만나게 해주세요.”
“여러 말 하면 당신들도 그냥 두지 않겠소.”
어머니는 점례와 점득이 손을 잡고 떼밀려났다.
그 때, 건너편 산골짜기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연거푸 연거푸 무섭게 쏘아대는 총소리였다.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승호 형!”
점득이가 총소리가 나는 산골짜기를 향해 소리껏 불렀다.
그 소리는 쏘아대는 총소리에 묻혀 힘없이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