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신심있는 우바이를 위해서 4- 곱슬머리의 쿤달라케사, 도둑과 결혼했던 여인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강좌 - 김인이 1988년 04월 74호
피야다시 지음/김인이 옮김

곱슬머리의 ‘쿤달라케사’는 ‘바아다’ 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인도 라자가하에 살던 부유한 상인의 외동딸이었다. 바아다는 매우 아름다왔으므로, 바아다의 부모는 그녀가 잘못되지 않도록 매우 신경을 썼다.
그즈음 라자가하에서 한 젊은 청년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다. 왕의 명령대로 경비병은 도둑의 몸을 묶어 사형장으로 끌고가고 있었다. 비록 도둑이긴 했지만 그 청년은 잘생겼고 매력적이었다. 그때 바아다는 궁전같은 저택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창밖으로 내다보고는 그 잘생긴 도둑을 보았다.
바아다는 그 도둑 청년의 용모에 완전히 반하여 그만 사랑에 빠졌다. 그 젊은이를 그리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으므로 바아다는 침대에 누워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인도 문학작품에서는 사랑에 빠진 이들이 사랑을 얻으려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부모들이 걱정스럽게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묻자 바아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경비병들에게 팔려 이 거리를 지나간 젊은이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어요.”
“얘야,” 마음이 산란하여 바아다의 아바지는 이렇게 타일렀다. “그러지 말거라. 너에게는 더 좋은 짝이 있지를 않니. 태생에서나 가문으로나 재산으로나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네겐 어울린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아니면 저는 불행해질 거예요.” 바아다는 소리내어 울었다.
딸을 달래지 못한 아버지는 외동딸에 대한 지나친 사랑때문에 대장을 찾아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도둑을 풀려나게 하려 했다. 그런데 왕의 갑작스런 사면으로 그 젊은 도둑은 풀려났다.
바아다의 부모는 외동딸을 도둑과 결혼시켰다. 바아다는 남편을 끔찍이 아꼈다. 보석과 장신구로 치장하고 바아다는 손수 남편을 일일이 시중들며 섬겼다. 그러나 남편이 된 도둑은 여전히 게걸스럽게 바아다의 보석을 탐내어, 마침내는 바아다를 죽일 책략을 꾸였다. 어느날 바아다는 남편이 음식을 들지 않는 것을 보고 물었다.
“내 사랑이여, 무엇이 괴로운가요. 제 부모님들이 당신에게 화를 내던가요?”
“그런 것이 아니요.”
“그럼 대체 무슨 일인가요?”
“바아다, 언젠가 내가 사형당하러 ‘도둑의 절벽’으로 끌려갈 때, 나는 만일 내가 풀려나면 감사의 공물을 바치겠다고 그 절벽의 신에게 맹세를 했소. 내가 이렇게 풀려나고 또 당신을 아내로 얻게 된 것도 그 신의 덕분이오. 이제 내가 어떻게 그 맹세를 지켜야 할지, 그게 걱정스럽소.”
“사랑하는 이여,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준비하겠어요.” 바아다는 남편을 달래고 정성들여 공물을 마련하였다. 남편은 바아다에게 가장 값나가는 옷과 귀중한 보석들로 꾸미게 하여, 하인들을 데리고 그 험하기로 악명높은 절벽으로 향했다. 산밑에 도착하여 바아다의 남편은 하인들을 돌려보내고 자기에게 목숨이 달린 바아다의 어깨를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그 산의 한쪽은 가파른 절벽이어서, 죄를 짓고 잡힌 도둑들은 그곳에서 산 채로 내던져지곤 했고, 그런 까닭에 그 벼랑은 ‘도둑의 절벽’이라고 불렀다.
산꼭대기에 이르러 바아다가 제물올 바치자고 했을 때 그 도둑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래서 바아다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 주인이여, 왜 아무 말이 없으신가요?”
도둑은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제물을 바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 너를 죽여 보석과 장신구를 갖고 도망가려고 너를 속였다.”
두려움과 공포로 떨며 바아다는 온순하게 말했다.
“내 사랑이여, 내 보석과 내 몸은 모두 당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무력한 종이며 하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그러나 그 도둑은 단지 바아다를 죽이겠다고 냉혹하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래서 바아다는 다시 간청하였다.
“그럼 이 보석과 장신구를 모두 가져가고 제 목숨은 살려주세요. 나를 죽여서 무슨 이익이 있읍니까?”
그러나 도둑은 무자비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살려 준다면 너는 돌아가 모든 일을 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를 잡아 처형할 게 아니냐. 울 것 없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죽기 전에 입고 있는 옷과 보석들을 벗어 놓아라!”
바아다는 소심한 여인이 아니었다. 더 이상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바아다는 이 사악한 사내를 다룰 방법을 궁리해 내고는 도둑에게 말하였다.
“내 주인이여, 내 부모님들이 경비병들로부터 당신을 구한 날부터 나는 충심에서 헌신적으로 당신을 보살폈읍나다. 이번이 당신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겠지요.”

이렇게 속삭이면서 바아다는 그 도둑을 품에 안는 척하다가 그를 절벽 아래로 떠밀었다.

바아다는 비탄에 젖어 깊이 생각하였다.
‘만약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시겠지. 그가 내 보석을 탐내어 나를 죽이려 했고, 그 때문에 내가 그를 죽였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못하실거야. 이제 집과는 멀어졌어.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말아야지.’
바아다는 보석과 장신구를 다 던져 버리고, 흰옷을 입고 수행하는 자이나교단에 들어갔다. 바아다가 극도의 고행을 원했으므로 자이나교도들은 바아다의 머리를 잘라 버렸는데, 그 머리카락은 거듭 새로 자라 촘촘한 곱슬머리가 되곤했다. 그래서 바아다는 ‘쿤달라케사’ 또는 ‘곱슬머리’로 알려졌다.
바아다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다 익혔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가서 가르침대로 닦아 그 방면의 대가가 되었다. 바아다가 논쟁에서 상대할 자가 없게 되었을 때, 바아다는 사과나무 가지를 가지고 다녔다. 누군가가 논쟁이나 토론을 하려 하면 바아다는 언제나 아무도 대답 못하는 문제를 내놓았으므로, 사람들은 감히 바아다와 대론할 엄부를 못내고, “저기, 사과나무 가지를 가진 여인이 온다”며 달아났다.
그때부터 바아다는 가는 마을이나 도시 입구에 모래더미를 쌓아 나뭇가지를 꽂아 놓고, 누구든 논챙을 할 사람은 그 나뭇가지로 두드려 주겠다고 장담했다. 누구도 감히 그 가지에 다가서지 못했고, 누구도 언쟁에서 바아다를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한주일 뒤에도 그 가지가 그곳에 있으면 바아다는 가지를 뽑아들고 그곳을 떠났다. 가지가 시들면 다른 가지를 구했다.

어느날 바아다는 쉬라바스티에 도착하여 그 가지를 도시 입구에 꽂아 놓고 탁발을 하러 갔다. 그때 위대하신 스승 싯다르타 고타마 부처님께서는 제타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장로 사리풋타가 그 가지를 보고, 왜 그곳에 그 가지가 꽂혀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에게서 설명을 듣고 나서 사리풋타는 아이들에게 그 가지를 갖고 놀도록 했다. 곱슬머리 바아다가 돌아와, 아이들이 소리치고 고함치며 신나게 노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장로 사리풋타가 그렇게 시킨 것을 알고 바아다는 사리풋타에게 물었다.
“스님이시여, 스님께서 아이들에게 제 나뭇가지를 짓밟도록 시키셨읍니까?”
“그렇소, 내가 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시합을 하실까요?”
장로 사리풋타가 응락하여 바아다는 온갖 질문을 했으나, 사리풋타는 어떤 질문에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했다.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어 바아다가 잠잠해지자 장로 사리풋타는 말하였다.

“그대는 내게 많은 질문을 했고, 나는 다 대답했소. 자, 이젠 내가 한가지만 질문하겠소. 대체 ‘하나’ 란 무엇이오?”
곱슬머리 바아다는 아주 당황하고 아연실색하여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장로 사리풋타는 바아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해 주었고, 바아다는 진심으로 감복하여 사리풋타의 발에 꿇어 엎드리며 귀의하였다. 그래서 장로 사리풋타는 마땅히 부처님께 귀의할 것을 말하며 바아다를 비구니들에게 인도하여 비구니 교단에 들어가게 했다. 바아다는 열심히 선정을 닦아 드디어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비구들은 이 일을 두고, 도둑과 결혼하여 죽이기까지 한 쿤달리케사가 수계를 받고 또 법을 얼마 듣지 않고 곧 아라한이 된 것에 대해 분분한 말들을 나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 비구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친 법을 ‘적다’ 거나 ‘많다’ 고 측정해서는 안 된다. 단 한 귀절의 법이라 할지라도 의미없는 숱한 말보다 낫다.
다른 강도를 이기는 데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더러움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이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쓸모없는 귀절로 이루어진
백편의 시를 읊기보다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한편의 싯귀가
훨씬 뛰어난 것이다.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인을 이기기보다
자기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