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상해박물관에 소장된 안휘의 선인 이철괴도를 소개한 바 있다. 이선李仙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감상해 온 신선들은 한결같이 험상궂고, 기괴하면서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용모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선화에 등장하는 선사禪師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신선이 된 동기와 신선이 된 후의 행적이 세상의 공명과 거리를 두고, 정신은 세상법에 구속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그림 속 장치물이었다. 선인仙人이란 알다시피 산중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산중에 살다보니 세속에 대한 욕망으로 그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욕망을 따라가기 위한 노력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니 정精,기氣,신神을 보존하므로 당연지사 수명이 늘어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선인은 해섬자海蟾子라고 불렸던 유현영劉玄英이란 사람이다. 그는 중국 오대五代 사람으로(대략 10세기 경) 당시 연燕나라 재상을 지내던 인물이었다. 세상의 부귀와 공명을 모두 가졌던 그의 손에는 늘 도가道家책이 들려있었는데, 당시 지식인들이 선망하던 조일朝逸 혹은 은일隱逸의 경향을 이야기 하는 것일 게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종리권(선과 그림 37 참조)이 찾아와 청정무위淸淨無爲와 신선술 등 선도를 강의하고 도력으로 엽전 열 개와 계란 열 개를 수직으로 세운 보탑을 만들어 보였다. 이른바 누란지위累卵之危를 보여준 것이다. 엽전 위에 계란을 쌓은 탑보다 당신의 처지가 이보다 더 위태롭다는 의미였다. 유현영은 깨달은 바가 있어 그날 밤 잔치를 열고 자신의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후, 재상의 자리에서 떠나 명산에서 수련하여 득도하였다고 한다. 이후 앞머리를 자른 동자의 모습으로 손으로는 돈꿰미를 놀리며 두꺼비 등에 타고 다녔다고 해서 유해섬劉海蟾 혹은 해섬자海蟾子라고 불렸다. 금빛을 하고 발이 셋 달린 이 두꺼비는 어디나 데려다 줄 수 있지만 가끔 심술을 부려 물속으로 도망치면 동전에 끈을 매달아 낚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구리나 두꺼비는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겨졌다. 옛 동부여의 건국신화인 금와金蛙 이야기가 그렇고, 콩쥐가 깨진 독에 물을 채울 때 도와준 것 역시 두꺼비이다. 유해섬 설화의 근본취지는 인간 고해의 근원인 욕망이 만든 누란지위의 위태로움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하자는 것인데, 신선그림으로 그려낸 인간의 마음은 수명과 재물을 바라는데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선화禪畵보다는 신선을 그린 선화仙畵를 찾는 편이 쉽다. 그것도 주로 문인들의 그림에서 그렇다. 18세기 대표적인 화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1707~1769)은 당대 도석인물화의 대가로 겸제 정선과 관아재 조영석이 세상을 떠난 이후 명성은 더해졌다. 지금까지도 그의 걸작이 많이 전해지는 가운데,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마선인도蝦蟆仙人圖는 두꺼비를 희롱하며 놀고 있는 해섬자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해섬자 유현영은 고사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앞머리를 내린 짧은 난발亂髮을 하고, 너덜거리는 회색 도복, 종아리를 드러낸 맨발,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오른손에는 (정확하게 그리진 않았으나) 엽전을 줄에 매어들고 금빛 두꺼비를 한바탕 희롱하고 있다. 유해섬도는 주로 세화(歲畵, 연초에 복을 비는 그림)로 그려졌다. 신선이 된 유해섬이니 수명장수이고, 금빛 두꺼비는 재물을 상징하는 것이니 ‘건강하세요’, ‘부자되세요’가 새해인사인 요즘의 세태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이 참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