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태종사에 있을 때였다. 태종사는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이라 평소에도 날이 좋으면 일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어느 봄날, 경내에는 유치원생들이 100여명 소풍을 왔었다. 멀리서 보면 정말로 병아리들의 행진이다. 아장아장 걷는 폼이나 맨 앞 선생님의 뒤를 길게 줄서 가는 모양이 영락없는 어미닭을 따라가는 병아리들이었다. 그 긴 행렬 앞에 마침 점심공양을 마치고 나온 내가 서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군가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고, 제법 격식에 맞춰 절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한 아이의 외침!
“스님, 절은 사람이 죽으면 오는 곳인가요?”
어떻게 그날 하루는 자나갔지만 그 아이의 물음은 계속 나를 고뇌하게 만들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불교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불교가 이정도의 이미지만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구나. 저 아이가 커서 20살, 30살이 됐을 때도 여전히 사찰은 사람이 죽으면 장례지내고 제사 지내는 곳이라는 인식만 남는다면 정말 문제 아닌가?’ 그런 고민의 결과가 지금 내가 있는 곳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준 것 같다.
현재 나는 인천에 위치한 육군 17사단 100연대에서 군종장교로 복무중이다. 스님이면서 군인이다. 평일에는 장병들의 인성교육과 상담을 맡고 있고, 주말에는 종교 활동을 주관한다. 일요일 하루만 4번의 법회가 있고 매주 못해도 200여명의 젊은이들을 만난다.
병사들의 행동은 그 누구도 종잡을 수 없다. 휴가증과 가나파이(초코파이 진화버전^^)를 얻을 수만 있다면 사단장 님의 휴대전화도 빌려와 나한테 전화할 기세다. 하지만 법회 때 어머님의 은혜를 이야기하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익숙하지 않은 단체생활과 야전의 고된 훈련, 빡빡한 근무일정 중에도 여자친구의 편지, 부모님의 면회에 곧 화색이 돈다. 신병 땐 무얼 해도 실수투성이고 행동 하나하나에 선임들의 잔소리 듣기 일쑤지만, 계급이 상병으로만 바꿔도 제법 노련미가 보인다. 전역하기 100일부터 날짜를 하루씩 지워가며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 와중에 행여 자기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선임이 전역이라도 하는 날이면 공허하고 허탈해 못 견뎌한다.
이런 병사들과 함께 매주 법회를 본다. 아무리 군대가 편해졌다 말해도 휴일날 쫄병들이 생활관에서 두 다리 뻗고 편히 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종교 활동은 일주일만의 단비 같은 휴식이자 자기계발 시간이다. 법회가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조는 병사들이 눈에 띄지만 차마 깨울 수 없다. 졸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시킬 수만 있다면 자는 것이 무슨 큰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이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요새 유행하는 노래라든가 컴퓨터게임을 꿰고 있어야 되고, 무한도전, 런닝맨, 개콘 등을 시청하는 것은 필수다. 법문의 예시나 상황설정 등은 꼭 병사들의 생활에 비유해서 말해줘야 이해가 빠르다. 군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들과 이런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자기를 알아갈 수 있는지 방법들을 알려준다.
반년 가까이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태종사에서 내가 했던 고민,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을 불교신자로 양성할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생각났다.
1. 불교에 관심 있는 전역병들을 모아 전역 후 한 달 정도 불교 프로그램을 참여 시키는 것을 어떨까? 각 군법당의 군종병들만 모아도 수가 엄청나다. 단기출가도 괜찮다. 기수별로 하면 기수별 인맥도 형성될 것이고 그 무리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재원확충은 그 병사가 사는 곳, 인근 사찰의 협조를 되도록 구한다. 대신 프로그램 종료 후 병사가 후원받은 사찰에 봉사활동 등을 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면 서울 잠실이 집인 친구는 불광사의 후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프로그램 종료 후 불광사에 의무적으로 몇 달간 활동하게 만든다. 그러면 자연히 불광사의 청년신도로 양성될 가능성이 높고 그 인연으로 불교 저변이 확대될 것이다.
2. 병사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전문가, 혹은 지역의 명사 등을 불러 1시간 강의, 1시간 토론을 하는 것이다. 병사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전역 후 진로문제다. 10여 년간을 아무 생각 없이 입시에만 매달려왔고 학교-학원-집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들이 절대다수다. 이런 아이들이기에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목마름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해당 직업의 전문가가 와서 전공분야를 설명하고 질문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진로문제를 해결해주면 군대내 사고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도움을 준 불교 측에 큰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참고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직종은 바리스타, 파티디자이너, 제과제빵 쪽이다.
어느 날 행자시절부터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도반 스님이 강원 방학이라고 나를 찾아왔다. 지내는 곳이 누추했지만 막역한 사이라 그냥 별 부담 없이 대하고 보냈다. 그랬는데 이 스님은 내가 좀 안돼보였나보다. 그래서 지난 1월 해인지에 내 이야기도 써주고 계좌번호도 공개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돈이 입금되었다. 만원부터 백만원까지,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고 지금 현재 250만원의 목돈이 되었다. 돈의 액수도 그렇지만 생전에 본적도 없는 스님에게 선뜻 보시를 해주신 이름 모를 분들의 정성에 큰 감동이었다. 다시 한 번 부처님의 울타리가 큼을 알았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보시해주신 분들의 정성에 감사해서 그것을 표현하고자 쓰는 것이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정성에 보답하고자 오늘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병사들을 상담하고 위문했습니다. 강 사이에 다리를 놓고, 물이 부족한 곳에 우물을 파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보시도 좋은 일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장 최고의 보시는 사람을 키우는데 일조하는 게 아닐까요? 언젠가 그 열매가 찬란히 열리길 바라며 오늘도 정진하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