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원장 처소에서 성호 스님을 뵙는다. 선방에서 정진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주신 스님은 아직 처소가 낯설다며 어색해하신다. 성호 스님은 승가대학을 마치고 율원을 다니며 강원에서 강의를 하고는 선원을 다니다가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고고미술사학과 사회복지학을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러고는 6년 넘게 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 머물렀다. 그 후 다시 선원을 찾았고 이번엔 해인사 율원장 소임을 맡았다. 한 치의 나태함 없는 그 걸음이 변화무쌍하다.
“엄한 은사스님 밑에서 살다보니 강인함이 생기고 인욕을 배운 것 같아요. 하심하는 법을 배워서 어디서든 열심히 살게 되지 않나 싶어요. 그 은혜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성호 스님은 스무 살 무렵 대학교를 다니던 중에 공주 학림사로 출가했다. 대학 시험을 마친 겨울 방학, 출가하신 속가의 친 누나가 절에 한번 들러 가라고 하셨다. 갔더니 그 절의 주지스님께서 훌륭한 스님을 뵈러 가는데 동행하자 하셨다. 따라나서 그 스님을 뵈었는데 점심 공양을 마치자 함께 산행을 하자고 하셨다.
“이 뭐꼬 화두를 던지셨어요. 보고 듣는 이것이 무엇이냐 물으시대요. 마음이라 했더니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이라 했더니 그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대자연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고는 집에 가려고 돌아서는 제게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하시대요.”
큰 바다에 눈 먼 거북이가 사는데 이 거북이는 백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는단다. 그때 바다를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면 잠시 그 구멍에 목을 넣고 쉰다. 그러나 나무판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불법을 만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말씀이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님 말씀에 의구심이 나대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짬짬이 이 뭐꼬 화두를 들었어요. 공부를 좀 하다보니까 경계가 오대요. 그래서 그해 봄에 스님께 법거량을 하러 갔지요.”
스님께서는 어린 사람이 공부하려는 것이 기특하다며 한껏 독려해주셨다. 다음날 아침 예불을 보고 나자 부르시더니 경허스님 참선곡을 들려주셨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 소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하시는데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몸과 마음에 뒤집어쓰고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업식이 녹는 것만 같았다. 그 인연으로 출가했다. 15개월간의 행자 생활은 눈물을 쏙 뺄 만큼 힘들었다.
“우리 스님은 빈 틈이 없으신 분이에요. 지금까지도 매일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세 시에 법당에 올라 108배를 하시고 예불 보시는 분입니다.”
행자 생활하는 동안 뭐 하나 흐트러지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낮엔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셔서 신도들이 안 오는 오후 시간에 몰래 법당에 들어가 기둥에 기대어 쪽잠을 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 스님께서 \'의식집\'을 들고 와서 외우라고 하셨다.
\"자성을 밝혀서 부처가 돼야지 왜 기도를 하고 목탁을 치고 절을 하냐고 대들었지요. 그랬더니 집에 가라고 하시대요.\"
집에 가지도 못하고 참고 살아보자며 스님 말씀을 따르는데 그 다음엔 \'초발심자경문\'을 외우라고 하셨다. 못 외면 사정없이 때리셨다. 강원에 다니는 것도 흔쾌히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해인사 강원에 보내놓고도 방학이면 꼭 혹독하게 공부 점검을 하셨다. 성호스님은 그 덕에 해인사 강원에서 강사를 할 수 있었다며 그 시절을 감사히 여긴다.
\"한번은 책을 사고 싶어서 돈을 좀 주셨으면 했어요. 갖고 싶은 책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서장을 외웠냐 선요를 외웠냐며 돈을 안 주셨어요. 그땐 야속했지요. 그런데 이제야 알겠어요. 다독한다고 공부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한 책을 열심히 봐서 그 속에서 안목이 트여야 한다는 것을요. 일생을 수행하신 큰 스님들이 금강경이나 원각경을 늘 독송하시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늦게야 알았어요.\"
성호 스님은 늦은 나이에 동국대에 들어갔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불교를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불교 유산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학문을 해야겠단 생각에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다니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선학과가 아니다보니 인문학대에 유일한 스님이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저절로 공부가 됐다. 게다가 동국대 이사장님이신 정련 스님께서 사회복지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늦게야 복수전공을 했는데 4학년도 마치기 전에 조기졸업을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고는 학교를 마치고나자 정련 스님께서 찾으셨다. 그렇게 해서 몰운대 종합복지관 관장으로 6년을 넘게 지내며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중에서도 북한이탈주민이나 청소년을 위한 복지사업을 많이 했다. 스님은 불교가 청소년 문제를 보듬어야 한다는 생각에 청소년 지도자 시험을 봤다. 그러다보니 합천청소년수련관 관장을 맡게 되었고 정련 스님을 모시고 살면서 청소년사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복지가 미약하기 때문에 종교단체가 참여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를 대중화하고 사회화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추상적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보여드리는 거죠. 동사섭同事攝, 그게 바로 불교사회복지죠.\"
그렇게 사회복지를 하며 6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다가 스님은 다시 선방에 들었다. 그리고 해인사 율원의 율원장 소임을 맡았다.
\"대율사이신 현 율주 스님과 예전 율주이셨던 일타 큰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수학했던 그 소중한 인연이 저를 이곳에 있게 했습니다.\"
해인사 율원은 불교 정화 이후 최초의 율원이다. 종단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이어가기 위한 도량으로써 율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호 스님은 늘 어디에 살든 해인사 율원에서 훌륭한 스님들을 모시고 살았다는 게 마음에 뿌듯이 남아 있단다. 그리고 이 시대에 왜 계율이 필요한지 생각한다.
\"요즘 신도들은 정말 박식해요. 방송, 신문, 인터넷, 서적 등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지요. 그런 불자들이 스님들에게 정말 원하는 건, 스님이 스님다운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계율을 잘 지키는 거예요. 신도들에게 환희심을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성호 스님은 계율을 통해 한국 불교가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부처님 말씀을 잘 따르며 사는 것도 한국 불교 발전에 일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존경받을 수 있는 승려 상을 구현해보자는 생각으로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스님이 존경받지 못하면 부처님 법도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어요. 부처님 법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죠. 그런 걸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 바로 율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성호 스님은 그렇게 율원의 스님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구현해 나갈 생각이다.
\"총림에선 설에 \'통알通謁\'이라는 것을 합니다. 부처님께 절하고 법보에 절하고 동수도반전에 세알 삼배를 합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동수도반이예요. 그래서 율원의 스님들과도 동수도반이란 마음으로 탁마하며 공부할까 해요.\"
그렇게 불교가 친밀해지고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스님들 스스로가 권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감동을 줘서 동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성호 스님의 생각이다. 그 노력 중에 계율을 지켜가는 노력이 한국 불교의 발전을 위한 좋은 방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스님께 여쭙는다. 계율을 지킴에 있어 마음 밑바닥에 무엇을 둘 것은 무엇입니까?
\"참괴慙愧, 부끄러워하는 마음이지요. 자신의 죄나 허물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 자신의 죄나 허물에 대해 남을 의식하여 부끄러워하는 마음. 늘 부끄러워 할 줄 알면 돼요. 부끄러워 할 줄 알면 참회할 수 있고 참회하면 고쳐지거든요. 우린 누구나 욕망이 있잖아요. 그 일어나는 욕망을 부끄러워하면 제어가 되거든요. 사람들이 계율을 어려워하는데 부끄러운 마음만 갖고 있으면 어렵지 않습니다.\"
성호 스님은 이 소임을 마치면 다시 선방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출가 본의가 선수행이니 당연히 선방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말씀하신다.
\"계율을 따르는 것은 참선하는 수행자가 좀 더 선정에 잘 들어가게끔 해주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성호 스님은 진각국사의 말씀을 한 자락 내어놓으신다.
\'보살이여 보살이여. 항상 스스로 머리를 어루만져 보아라. 머리를 만지면서 깊이 생각해보니 출가 본래 의도가 무엇이냐. 승려의 모습이 속세와 같으면 어찌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아니하겠는가. 추한 행동을 하고 부질없는 말을 하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뜨거운 지옥을 어찌 피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참괴심이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스님은 말씀이 너무 많으셨다며 산사의 어둠 속으로 홀연히 모습을 감추신다. 귀한 새들의 지저귐이 부질없는 승려의 말이었다는 듯이. 그러니 깊은 밤 산사에 깨어 있는 새들의 말을 어찌 꿈결 속에 듣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