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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 사회에서의 종교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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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곽만연 1988년 04월 74호
들어가는 말
지난 겨울 신라인들이 이 땅에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하여 바위마다 골짜기마다 부처님을 새기고 모셨던 경주 남산에 간 적이 있다. 수많은 세월의 풍상 속에서도 바위마다 골찌기에서마다 그렇게 미소짓고 계신 부처님을 대하였을 때 환희심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부처님 한분 한분 앞에서 예불을 드리며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산 꼭대기 바위 위에 페인트로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당혹했고, 곧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우리가 불교를 믿든 안 믿든 우리의 피 속에는 불국사를 창건하고 석굴암을 만든 신라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 남산은 의미가 각별하다. 그런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기독교인에 의해 제주도에서는 사찰이 불타고, 부산 대각사에서는 부처님 상이 훼손당한 일이 있다. 또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같은 종교간의 갈등은 심하게 드러났다.
어떤 시사만화에서는 후보자들을 말 탄 무사로 묘사하면서 그 중 세 후보에게는 십자가 방패를, 나머지 한 후보에게는 만(卍)자 방패를 들렸다. 한 종교에서는 모 후보를 뽑아서 청와대에서 일요일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고 선거운동을 하는가 하면, 또 한 종교에서는 이번 선거의 역사적인 의의나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에 대한 검토도 없이 자기 종교를 믿는다고 알려진 후보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민주주의 나라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책 대결일 터인데, 이번 선거는 그보다는 지역 감정 및 종교 대결의 양상으로 번지고 맡았다. 선거 결과에서 드러난 동과서의 지역 감정에 대해서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는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종교 대결의 문제에 대해선 말하는 사람이 적었다. 종교 문제가 더 심각한 까닭은, 지역 감정과는 달리,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갈등의 해소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정치, 사휘, 문화 면에서 더 큰 문제가 계속 야기되기 때문이다.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 레바논 사태, 이 모든 사태들이 종교적 갈등이 기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듯 오랜 동안 그칠줄 모르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종교적 갈등이 심하지 않았다, 기독고가 들어오면서부터 우리의 종교 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 곧 다종교사회가 된 것이다. 다종교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그에 대응하여 의식의 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종교간의 갈등은 계속 확산되고 심화될 것이다. 이에 다종교사회의 특징과 문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종교 현상과 종교인의 대처 방안
우리나라는 종교적으로 상당히 특이한 면을 갖고 있다. 유교, 불교, 기독교, 회교 따위의 세계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으면서도 그 어느 하나도 오늘날 우리 문화를 결정적으로 대표하는 자리에는 있지 못하다. 유교는 극동의 한국 문화권을 대표하는 종교 전통이며, 불교는 인도의 명상적 사유 문화 체계를 대표하며, 기독교와 회교는 유일신관의 종교 전통을 대표한다. 따라서 인류 문화사의 기반을 이루는 종교 ․문화 전통들이 모두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로, 우리나라만이 안고 있는 매우 독특한 문화 현상이다.
스페인 사람은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가톨릭 신자로 보면 틀림없을 것이고 태국 사람은 불교 신자로 보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은 물어 보기 전에는 어떤 종교의 신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종교의 백화점이라고도 하고 부정적으로는 종교의 쓰레기장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종교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현상을 가져온다. 어떤 사람이 중동지방에 태어났다면 그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교도가 될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태어났다면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거의 기독교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서 자기 스스로의 결단을 내려서 종교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다종교 현상은 가정에도 영향을 미쳐서 일요일에는 아버지와 딸이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고 불교 명절에는 어머니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다종교 현상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세계 종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수없이 많은 민족종교들이 있다. 특히 몇몇 민족종교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몇몇 민족종교는 민족주의의 경향이 강한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근 큰 파문을 끼치며 퍼져 가고 있다. 현존하는 이들 민족종교들은 대체로 19세기 서양 문명의 전래에서 오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충격 및 정신적 자기 발견이 이루어진 뒤에 태어났다.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는 무속신앙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다. 무속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변에서 그 끈질긴 영향력을 지금까지 행사하고 있다. 대기업체에서 현대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컴퓨터실을 개장하면서 고사를 지내는 것이 그것의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이 무속신앙은 또한 우리나라에 들어온 세계종교를 변화, 변질시키는 무서운 생명력을 발휘하였다. 불교의 산신각이나 또 유난히 복을 강조하는 목사의 설교는 세계 종교와 무속신앙의 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중요한 세계종교, 민족종교, 무속들이 이렇듯 총 집합되어 있으니 과연 종교백화점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다종교 현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주로 여러 가지 종교인들이 서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이 접촉은 개인들의 일상생활의 현장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사회집단으로서의 종교가 저마다 자기들의 편익을 위하여 발휘하는 사회 정책적인 대결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종교 현상은 많은 갈등과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져 있다. 곧 우리의 학교 교육은 기독교 정신의 유산을 밑바탕으로 한 서구의 교육이념을 받아들여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은 대체로 유교적인 분위기가 지배한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담대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가르치는 반면에, 집안에서는 어른 앞에서는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반대 의견을 표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 따위이다. 이러한 상반된 가치들은 개인의 가치 혼란 또는 가치 상실을 심화시키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나타나고 있다. 기성세대의 선거부정에 대단한 분노를 보이면서도, 일부 학원가의 선거에서는 기성세대처럼 타락한 선거를 우리는 볼 수 있다.
또 여러 가지 종교 가치가 동일하게 공존하는 작용하기 때문에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생활 태도를 보인다. 직장에서의 한국인은 무척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런데 조직의 위계질서 속에 들어가서는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여 준다. 곧 상사에게는 자유를 주장하고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면서, 막상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엄격하고 권위적인 태도를 취한다. 더우기 자신이 이같은 상반된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심각한 가치의 혼동 상태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 시점에서 문화 가치관에 대하여 서둘러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각 종교들은 문화사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가치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한자기 성찰과 끝없는 내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다종교 현상은 다분히 존재 양식으로 관용적으로 공존하면서도 개별적 가치 체계를 대표하는 사회집단으로서는 매우 배타적인 성격을 띠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불교의 사찰, 단군성전 건립을 둘러싸고 일부 개신교의 반대를 비롯하여 종교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세계 종교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우리의 다종교 현상은, 인류 역사의 모든 문화적 유산과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축복 못지 않게, 가치 혼돈과 종교 분쟁을 초래활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이제 다종교 현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 혼돈과 종교간의 갈등이라는 사회문화적 문제로 점점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을 지배하려는 경향을 버려야 한다. 또 각 종교는 현재의 다종교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곧 자기 종교의 역사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에 우리 사회의 각 종교들이 저마다 자기가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임을 인식하고 더불어 타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더 쉽게 개방사회로 도약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종교란 인간 의식의 근저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라는 이 시대는 한 개인을 어느 집단에도 소속하게 하여 그것과 운명을 같이 하도록 하고 있다. 곧 개인과 집단은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사회의 여러 종교들이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불교든 기독교든, 인간 존엄성 위에서 그 존재의 당위성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인간과 사회에 관한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다같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대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본다. 청소년 문제, 마약 문제, 미혼모 문제, 이혼 문제, 고문 근절 문제, 핵 문제, 공해 문제, 지역 감정 해소 문제, 통일 문제,노사문제, 도시 빈민 문제, 농촌 문제, 도시 철거민 문제 등등의 많은 문제에 대하여, ‘인간 존엄’의 원칙 아래에서, 공동으로 대처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대화와 상호이해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작은 문제부터 시작하여 풀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끝으로 기독교인에게 고언(苦言)을 한 마디 하고 싶다. 기독교는 사막에서 발생한 종교이기에 양자택일의, 배타적인 요소가 많음을 자각해 달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땅은 산이 많은 곳이다. 산에서는 커다란 맹수부터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생물이 공존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기독교가 이 땅에 계속 있으려면 그 공존의 윤리를 터득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