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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과 중심의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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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2013년 03월 373호

60갑자를 돌아 본래의 간지 자리를 이태 앞두고 고향 경남으로 돌아왔다. 열여덟 살 나던 해 혈혈단신 서울로 유학을 떠난 지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을 한 마장에 접을 만큼 고향의 인심은 후덕하다.
기자들이 가끔 묻는다. 국회의원하고 도지사하고, 어느 게 더 좋으냐고.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도지사가 훨씬 좋습니다. 어떤 기자들은 되묻는다. 너무 그렇게 대답하면 정치인들이 섭섭해 하지 않겠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왜 도지사가 더 좋다고 하는지 아직 청춘의 더운 열기가 남아있는 젊은 기자들에게 고향의 따뜻함을, 고향의 사투리로 실컷 떠들 수 있는 이 편안함을 설명한들 얼마나 공감을 하겠는가. 세월만이 답이 될 터.

정치인 홍준표로 살아온 지난 16년 동안 네 권의 책을 썼다. 두 권은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그리고 두 권은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본 복기의 기록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내신 분들 앞에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서 멀어져 갈수록 나는 거꾸로 그 시간들을 잡아두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 경남도지사 선거를 하는 동안 유년을 보냈던 창녕이나 합천에 가면 나도 모르게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느냐, 뭐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던 모양이다. 어떤 분이 그랬다. “요즘 젊은이들은 가난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에 아무 관심 없다. 당신이 말하는 가난은 저 아이들에겐 박제된 역사에 불과하다.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맞는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라는 선거공학자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해와 소통의 첫걸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창녕에서, 합천에서, 내 연설을 들으며 어쩌면 곰방대 냄새 나는 노인네의 하소연쯤으로 들었을 젊은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아찔하다.

3년 전인가 썼던 책 ‘변방’에서 나는 가난과 궁핍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옮겼다. 지금 다시 펼쳐보면 ‘나는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이렇게 성공했다’하는 자기자랑쯤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게는 어느 한 줄도 버릴 수 있는 기억이 없다. 그것은 변방에서 중심을 향해 살아온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열여덟, 고향을 떠날 때까지 나는 변방이었다. 내가 사는 곳도 변방이었고 나는 그 변방이 이루는 작은 세상 안에서도 또 변방에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 삶의 장소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는지 모르지만 서울은 경상도 촌놈에게 중심부의 귀퉁이 자리 하나 내주지 않았다. 여전히 변방이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었을 때 어쩌면 나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내 삶을 통째로 들어 옮길 수 있는 인생의 첫 기회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토록 변방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왔지만 정작 내게 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스스로 변방으로 자처해갔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으로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워 보겠다는 의지는 거꾸로 내 삶을 변방으로, 변방으로 인도해 갔다.

검사로서의 소신은 인사의 불이익으로 돌아왔고 경찰청장, 병무청장, 6공황태자, 고등검사장 3명 등 40여 명이 연루된 초대형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 내게 돌아온 것은 수사권도 없는 부서로의 인사 조치였다. 내가 더 이상 검찰에 남아 할 일이 없었고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검사직을 스스로 버렸다. 검사가 되면서 중심부로 왔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늘 변방에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변방을 얘기하면 당대표까지 한 사람이 무슨 변방이냐, 중심부 중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보내지만 정치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스스로 변방에 서고자 했고 변방의 역사를 만들고 싶었다.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중심의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내 안의 약속을 하나씩 무너뜨려야 했기에 내가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변방에 남는 것이었다. 지독한 가난이 싫어 변방에서 중심을 꿈꾸었지만 정작 중심의 문턱에서 나는 스스로 변방으로 인생의 방향을 돌렸고 그 때부터 나는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방을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변방’에 대한 얘기가 장황해졌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왔다고 썼다. 또한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그야말로 변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향을 떠난 지 4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는 겨운 복이다. 지리적으로는 중심에서 변방으로 옮긴 것인지 모르지만 내게는 변방으로의 행복한 귀향이다. 변방과 중심의 세속적 경계를 넘어 변방이 중심이고 중심이 변방인 곳, 그곳은 내 삶의 근원이 있고, 내 꿈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고향이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변방의 숲과 산으로 가서 수행을 한다. 변방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변방과 중심의 경계가 없는 곳, 내 고향에서 나는 하루하루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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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님은 경남 합천 학남초등학교와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지검 검사, 제 15, 16, 17,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경상남도 도지사로 재임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