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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신선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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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3년 02월 372호

안휘顔輝,이선을그리다(李仙圖), 비단에 수묵, 146.5×72.5㎝, 故宮博物院, 上海, 中國

새해가 오고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수첩 앞장에 써 놓았던 ‘올해의 목표’ 중에서 작심하고 삼일은커녕 아직 시늉도 못한 것도 여러 개다. 보통 사람들은 연말이 되어야 세월이 덧없다는 소리를 하지만 내 경우는 1월이 제일 허망하다. 아마도 나름 야무진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했지만 새해 인사다 뭐다 하면서 손가락 사이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맛난 곶감 빼먹듯 하루하루 달달하게 지내다보면 한해 계획은 물론이려니와 해인지 원고 마감일도 잊어버리면서 한심하게 후딱 한 달을 빼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땐 한 해가 열두 달이 아니라 열세 달이 되고, 그 여분의 한 달은 년초에 주었으면 한다. 워밍업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연말 연초 가릴 것도 없이 가는 세월은 참 덧없다. 세월은 어마어마한 원을 그리며 끝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세월에 얹혀사는 우리 인생은 그 레일 어느 중간에서 일단 시작하고, 일단 마무리를 한다. 각각의 인생에게 주어진 길고 짧은 그 마무리 때문에 늘 바쁘고, 힘들다. 그래서 옛날부터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오복 중에 하나라고 꼽았고 웃어른들께는 만수무강萬壽無疆, 연년익수延年益壽를 축수해 올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왕이면 건강하고 여유있게 지낼 수 있으니까. 옛 조정에서는 새해가 되면 왕이 신선그림을 노신老臣들에게 하사하며 그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해 주었다. 그것이 신선그림의 중요한 용도 중에 하나이다.
독자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한 넉 달 전 지면을 통해 도교와 불교를 이야기 하면서 팔선八仙 중 종리권이라는 신선을 소개한 바 있다. 보살과 같이 중생제도를 하고, 나한과 같이 수행하며 궁국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역할을 맡은 존재가 신선이었다. 신선의 치명적인 매력은 역시 그들이 불사신不死身이라는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선과 보살이 통하고 선사와 도사가 크게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중국 원대 안휘(顔輝, 13세기말~14세기초)는 신선의 몽타주를 제시한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이철괴李鐵拐 그림을 몇 점 남겼다. 팔선 중에 하나인 이철괴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그는 벽곡(辟穀, 곡기를 끊음)과 잠을 자지 않는 고행을 40년 동안 한 후 자신의 몸을 떠나 천상에 있는 스승인 노자를 방문하였다. 이때 노자는 지상의 문중사람들에게(노자 역시 이씨다) 세속의 덧없음을[무상無常] 가르쳐도 좋다는 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지상으로 돌아온 이철괴는 그의 육신을 맡아 두었던 제자가 그 육신을 화장해버렸고, 세속의 육신을 잃어버린 그는 굶어 죽은 거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거지가 들고 다니던 철괴(鐵拐, 쇠지팡이)에서 이름을 따 이철괴라고 불렸다. 이철괴 그림은 쇠 지팡이를 짚고, 호리병을 어께에 메거나 손에 든 늙은 거지로 묘사되었다. 여러분들은 이선李仙의 내력을 보면서 초조 달마 스님의 그것과 겹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몸을 떠나 천상에 간 것이며, 다시 돌아와 보니 자신의 육신을 잃어버렸고, 몰골이 흉한 거지 몸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이 일치한다. 더군다나 이선이 들고 다니는 호리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 약이 담긴 것으로 관음보살의 정병과는 싱크로율 백퍼센트이다.
안휘의 이선도李仙圖는 폭포와 기암 절벽을 배경으로 바위에 앉아 앞을 쳐다보는 이철괴가 표현되어 있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배경이 된 폭포와 기암절벽과 바위자리는 수묵으로 그려진 관음보살도의 전형적인 배경이며, 험상궂은 인상과 기괴한 모습의 신선의 자세는 나한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이렇게 불교와 도교 그림의 도상이 비슷하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비춰진 도교와 불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해석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