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평등, 직접, 비밀, 자유를 기본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데, 이 말이 무색하다.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가까지는데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개표 요구가 거셌다. 개표 직후 결과에 승복한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후보가 재검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함으로써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들고 있다.
‘정치적 창녀’ 운운한 칼럼으로 비난을 샀던 윤창중씨를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이념 대결 국면을 조성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변인은 말 그대로 박 당선인의 입이며 뜻이다. 박 당선인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적절한 표현을 구사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임무를 맡는 직위이다. 윤 대변인 임명을 보며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인데 뜬금없이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박 당선인은 지난 12월 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받은 후 열린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캠프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한편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을 강조했다. “우리의 승리가 정말 값진 것이지만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마음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 국정운영을 해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이제는 선거를 잊고 서민경제를 잘 챙기는 것에 몰두할 때이며 전력 수급상황, 서민보호에 대해 당에서 앞장서서 잘 챙겨주고 살펴달라. 약속한대로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 이 두 가지만 머리에 담고 나가야 된다. 정쟁이라든가, 사적인 일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한다.”
박 당선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큰 무게감을 갖는다. 개표 직후 국민대통합을 언급한 것도 시기적절한 메시지이다. 박-문 1:1의 승부를 치른 탓에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을 우려해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도 선거 후 일성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국민화합을 당부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8%의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윤씨를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은 국민대통합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서는 격리를 택하고 지지자에 대해서는 혜택을 제공하는 ‘통합과 격리’ 전술을 선택한 것인가, 이런 음모적인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밀봉’이니 하는 비판을 불러들인 것도 개운치 않다. 윤 대변인이 인수위원 명단을 발표하며 밀봉된 봉투를 뜯어 발표한 것을 두고 밀봉이라는 비아냥이 붙은 것인데, 보안을 너무 강조하다 빚어진 일회성 해프닝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상징성이 크다. 세상 사람들은, 대변인 정도라면 선임된 인수위원의 면면과 인선 배경을 기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밀봉 이벤트로 대변인이 고작 집사노릇을 하는 직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의아하다. 하자가 있는 위원이 있어 논란이 뒤따르면 박 당선인이 곧바로 부담이 질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우려도 있다. 나아가 문제가 있는 위원에 대한 비판을 애초에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고집으로도 비춰진다면 상황은 심각한 지경으로 번져가는 것 아닌가.
선거는 과거의 평가를 통해 미래의 청사진을 함께 그린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제도이다. 각각의 개인들이 원하는 삶의 조건들을 제시한 후보들을 투표로써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4대강 사업 등 국민적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갈등해소 효과도 크다. 반면 승패가 명확한 만큼 선거과정에서 서로 큰 상처를 입는다. 조그만 흠이 과장되거나 없는 일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을 만들어 퍼뜨리는 일이 예사로 발생하는 아귀다툼이 벌어진다. 선거가 끝나도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
우리 종단의 총무원장 선거가 오는 10월로 예정돼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떤 후보들이 나설까, 후보들이 종단 발전을 위해 어떤 청사진을 제시할 것인가, 그 동안의 종책들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다른 한편으론 근거도 출처도 밝히지 않는 음해성 문건들이 떠돌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총무원장선거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현행의 선거인단(중앙종회의원+각 교구 10명씩)에 의한 간선제, 현행보다 확대된 간선제, 법랍 10년 (또는 5년) 이상의 비구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총무원장후보 3, 4명을 추천해 뽑자는 추천제도 논의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보면, 우선 간선제는 선거 비용이 적게 들고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종도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정 법랍 이상의 비구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의 장단점은 간선제의 장단점을 바꿔놓는 것과 같다.
아마 3월 열리는 종회에서 총무원장선거법 개정 논의가 안건으로 부쳐질 것으로 보인다. 심도 깊은 논의가 전개되길 기대한다. 그 동안의 선거는 늘 사회법에 의한 고소고발이 뒤따르는 큰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들만의 잔치라며 종도들은 극도의 소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선거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소시키지는 않지만, 충분한 논의를 통한 제도의 채택은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건너뛸 수 없는 과정이다. 총무원장선거법 개정 논의의 쟁점은 ‘혼란을 최소화할 것인가, 더 많은 종도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지는 중앙종회의원들이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말없이 지켜보는 종도들의 의견은 무엇인지 세심하게 헤아리는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야 선거과정에 종도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새로 뽑힌 총무원장이 명실상부하게 종도들의 총무원장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총무원장선거법 개정을 논의하는 자리가 몇 차례 있었으나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종도들이 무관심한 것인지, 아니면 몇몇의 논의로 한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종도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면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하며, 많은 종도들이 논의에 참여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 종도들이 외면한 결정은 선거과정과 이후의 혼란을 최소화하는데도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불교적이지도 않다. 중앙종회는 3월 종회를 총무원장선거법 개정을 위한 마지막 시한이라고 못박지 말고 이후에라도 총무원장선거법 개정 안건만 놓고 임시종회를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