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공신력을 가질 거란 기대를 하게 되는 뉴욕 타임즈가 2008년‘올해에 가면 좋은 세계 여행지’1위로 라오스를 꼽았었습니다. 그리고 배낭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은 파키스탄의 훈자, 이집트의 다합과 더불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의미로 세계 3대 블랙홀 중 하나의 장소란 영예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여행 중에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자신이 지금껏 가봤던 곳 중에서 라오스가 제일로 좋았다는 평가가 저의 호기심을 한껏 불러일으켰습니다. 라오스에 대한 사전 보도 전무했던 터라 이런 과찬을 받는 라오스에 대한 미지의 동경을 품고서 중국을 떠났던 것입니다.
국경을 지날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너무나 대조적인 국경 검문소의 모습이었습니다. 웅장하고 세련된 중국의 검문소와 초라한 시멘트 건물로 된 라오스의 검문소는 두 나라 국력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켜주었습니다. 국경을 지나 두 시간 떨어져 있는 루앙남타는 라오스 북부의 중심도시라는 위상에 비해 비교적 소박한 마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비교적 작은 군 단위의 소재지라고 할까요. 루앙남타 남부의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밀림이나 북부의 고산족의 마을
을 트레킹하려는 사람들이 찾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외부인들의 발길이 뜸해 한가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으로 찾은 루앙프라방은 전혀 달랐습니다. 뉴욕 타임즈가 소개해준 영향 탓인지 루앙프라 방의 중심가는 이미 세계 도처에서 찾아온 외국인들
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성지순례를 온 스님들, 불자님들, 그리고 일반 여행자들을 여러분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좀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마음속으로 기대했던 이유 때문이었는지 다소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루앙프라방에서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새벽 6시 넘어서 거행되는 스님들의 탁발이었습니다. 새벽의 어둠이 가시지 않았음에
도 사원지역의 거리는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려는 불자님들 혹은 관광객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탁발의 문화지만
상좌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는 라오스나 태국에서는 여일하게 이 탁발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인들에게 루앙프라방은 스님들의 탁발 공양에 참석할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보통은 밥과 과일, 반찬들을 공양물로 올리지만 우유나 요구르트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오시는 스님마다 하나씩 공양 올리는 외국인들도 있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의 직원들이 이미 탁발 공양에 참석하고픈 투숙
객들을 위하여 공양 올리는 자리와 공양물을 준비해 놓는 듯 보였습니다. 탁발과 공양은 이곳 라오스에서 스님들과 불자들간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종교적 생
활의 모습이었지만 외국인들에게도 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참여해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기에 참 좋아 보였습니다.
후에 루앙프라방을 떠나 석양이 아름다운 마을인 방비엥을 지나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으로 향했습니다. 본래 비엔티엔에서는 카우치서핑으로 현지인집에 머물 계획이었지만 연락이 잘 되질 않아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비엔티엔의 통신회사에서 근무하며 1년간 살고 있다는 파키스탄의 무슬림 청년 하샨 샤히드를 만났습니다. 그는 불교에 저는 또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대화중에 유독 귀에 들어와 박힌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샨이 라오스에 살면서 그 어떤 사람도 싸우거나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싸움이나 다툼이 전혀 없는 곳, 라오스. 이것이 하샨에게 각인된 라오스의 인상이었습니다. 한 달간 지내온 라오스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평화로운 나라로 기억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단 하나의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라오스 역시 이런 평화의 양상과는 정반대로 분열과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이런 이면을 돌아보게 한 것은 바로 야시장의 한켠에 진열된 팔찌로부터였습니다. 불투명한 은색의 단출한 모양새를 한 팔찌는 기실 미군이 라오스 내전 당시에
라오스 전역에 투하한 총 2억 7천만 발의 폭탄 중에서 불발탄들을 분해하여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이 불발탄으로 인해서 한 해에 사상을 당하는 사람
들이 300명에 이른다고 하니 아직까지 전쟁의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를 주목하게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비밀 전쟁(Secret War)이었습니다. 냉전시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세력의 첨예한 갈등으로 내전을 겪을 당시 미국 CIA는 베트공 세력의 확장을 막고자 라오스의 토종 산악 민족인 몽(Hmong)족의 도움을 받았습
니다. CIA는 몽족의 용병들로 하여금 미군의 레이다 기지를 보호하고 미군 조종사를 지원하며 베트공의 물자 공급 루트를 차단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내
전이 끝나고 1975년 라오스가 공산정부를 수립한 뒤로 미국을 도왔던 몽족은 숙청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몽족들이 미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했지만
거부되었고 미국 정부는 몽족의 용병 존재 자체를 아예 부인해 버렸습니다. 태국으로 피난을 떠난 몽족들은 많은 경우 다시 본국으로 송환되어 소리 없이 사라
져들 갔습니다.
그러나 눈물나도록 안타까운 사실은 바로 그 숙청이 지금에도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40여년이 가까이 되어가지만 5,000여명
의 몽족 사람들은 아직도 라오스 정부군을 피해 밀림안에 숨어 비참한 생활을 유지하며 외부세계의 구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애원
합니다. 2013년, 지금의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세계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합리적인 사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볼 수 없는 외진 곳에서는 아직도 증오와 갈등이 맹목적인 믿음처럼 무자비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