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삼취경(三聚經)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경전해설 - 무관 1988년 04월 74호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자주 한다. 때로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정말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선한 사람은 항상 손해만 보고 악착같고 독한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닙니까?”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한 뒤는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슬퍼하는 이들이나 착한 일만 하여 법 없이도 살수 있다는, 그래서 오히려 모자라 보이는 듯한 사람이 고을 당하고 뒷전에 밀려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선 지금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고 바보스런 일 같아도 착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인과업보라고 생각하시지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 뜻은 이해되지만 그렇게 여겨지지 않음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선이란 일반적으로 자기의 생각 속에서의 주장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이란 상대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 그것이 악에 밀리어 천대받거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갈등을 겪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선이란 여섯모꼴인지도 모른다. 육각형이 한 변이라도 떨어져 나가면 더 이상 육각형이 아닌 것과 같이, 또 우리 몸의 여섯 가지의 감각 기관 가운데 어느 한 개라도 모자라면 그 부분은 잘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여섯모꼴로 된 완전한 선은 그 여섯개의 변이 똑같은 길이로 서로 이어져야만 완전한 선인 것이다. 결코 한 변이 길거나 짧으면 안 된다. 결국 선과 비슷한 것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잘못된 관념이 이렇게 선을 무기력하다고 생각케 하는 것이다.
악은 완전한 선만이 이길 수 있다. 선과 비슷한 것으로는 악을 이길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항상 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하게 했는데 악에게 졌다고 여겨지면 먼저 나의 선이 올바르고 완전한 선이었는지 관찰해 보아야 한다. 완전한 선은 한 개피의 성냥불로도 천년의 동굴에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단 한 분의 성현이 사바세계에 태어나도 그 세계는 하장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믿을 것은 옳은 것은 언제까지나 옳은 것이고 바른 길은 언제든지 바른 길로 엄연히 거기에 존재해 있음이다. 다만 그것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이 흔들리고 때가 묻어있는 탓에 잘못 보고 잘못 듣고 함으로써 그렇게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진리는 흔들리지도 않고 얄팍해지지도 않거니와 변색되지도 않는다.
부처님은 삼취경에서 악한 세계로 나가는 법과 선한 세계로 나가는 법과 열반으로 나가는 법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인자한마음이 없고 독해(毒害)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그 첫번째 악한 세계로 나가는 법이다. 그 둘째는 악한 마음으로써 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이 장차 선한 세계로 향하는 한 법이다. 그 세째는 능히 부지런히 노력하여 신념처(身念處)를 닦는 것이 장차 열반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생김이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듯이 성격과 기질도 많이 다르다. 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똑같지 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생각이 다르고 업력(業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아무리 못났다는 사람에게라도 한 가지 좋은 점이 목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 훌륭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모자라는 부분만을 드러내어 가며 소심해지고 우울해지며 갈등을 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것은 좋지만 그로 말미암아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좌절에 빠지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맑은 거울 닦듯이 열심히 닦아서 바르게 보도록 하는 일에 힘쓰는 일을 묵묵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자기와 관계를 맺은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고 좋은 점들에 대해 칭찬 듣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삶을 훨씬 풍요롭게 가꾸어 가는 데 밑거름처럼 힘이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칭찬을 해주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것 가운데 가장 풍성한 복인 것이다. 남의 곱지 못한 점들을 들춰 가면서 주변을 삭막하게 하는 것보다 얼마나 정겹고 고귀한가! 남의 잘못만을 비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고 이익이 무엇인가. 남을 비난하고 헐뜯기보다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야 할 곳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할 것이다.
해부해서 떼어내어야 할 혹은 자신의 내부 어느 곳에선가 자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밖에 드러난 남의 작은 티끌 하나를 보았다고 더 부산을 떨고 떠들썩하게 만든다. 누구를 비난하고 명하는 것은 너와 나의 불행의 앙금을 짙게 하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정화시키는 작업이 난도질하듯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밝게 정돈해가야 할 것이다. 고독한 투쟁을 눈물겹도록 전개하는 과정에서 삶을 순수하고 조건 없이 껴안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세계를 향한 마음 가짐으로 4념처와 5근․5력, 6경법(敬法)과 7각의를 설하시고 8가지 올바른 길을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8가지의 현성의 도라 하는가. 바른 소견,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흔 정(定)이 그것이다.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 길일 수 있다. 서쪽으로 오르는 길도 있고 동쪽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처음 산을 쳐다볼 때는 아득하고 먼 것처럼 여겨지지만 각자 자기가 선자리에서 위를 향하여 부지런히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더러는 가시나무 숲과 돌무더기의 자갈 길이라도 애써 외롭고 고통스럽게 혼자 정상에 오르는 이가 있다. 또는 고속도로처럼 잘 닦인 길을 가면서도 마냥 쉬고 있는 이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길로 가느냐가 문제되는 것이아니라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더 문제가 된다. 서로 쳐다보며 비난하고 헐뜯으며 자신이 걷는 길이 가장 바르다고 주장하기보다 서로 격려해 주고 자신에게 모자라는 것은 상대편에게서 찾아 채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른 소견을 갖는다는 것은 정상으로 가는 바른 길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다.
해는 모든 사물에 고루 빛을 비추고 있다. 그런데 해를 등진 사람은 햇빛을 바로 볼 수 없다. 해를 향하여 있으면 서로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햇빛을 볼 수 없다. 바르게 서서 바르게 바라다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바른 소견을 가질 수있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하여 자선사업을 생각하여 집을 짓고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은 조건없이 살게 해 주었다. 그래서 여섯 가구가 그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한동안 살다 보니 그 여섯 사람은 서로 다른 다섯 사람을 쫓아내고 그 집을 독차지하여 살고 싶어졌다. 그러나 만만하게 나가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의 공간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하여 밖에 남은 터에 방을 들이고, 또 힘을 모으기 위해 많은 사람을 모아다가 패를 만들고, 더 욕심을 채우려고 동분서주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돈이 모이고 힘이 세어지자 이 집을 다 사 버릴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의 고마움을 느꼈던 바른 뜻은 저버리게 되었다. 눈비를 맞으며 살아가던 시절의 바른 뜻, 그것은 탐욕심을 버리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보다 거꾸로 번뇌를 확장시켜 놓고 많이 집어 넣은 후에 알맹이를 갖겠다고 정신들이 없다. 사실 껍질이 먼저 생기고 알맹이가 생긴다. 그러나 이름만을 가지고 껍질뿐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오늘처럼 많은 것은 올바른 가치관이 자주 바뀌는 때문이 아닐까.
자기만이 바른 삶이고 다른 이는 쭉정이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그것을 껴안아 본 사람의 체험은 물을 마셔본 사람이 차고 더운 것을 알듯이 분명하다. 바른 말은 갈등과 자신의 번민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간교함은 선과 악의 자리에서 산다. 그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꾸민 말, 허튼 말, 속이는 말, 이간질하는 말 따위는 슬기를 가려버리고 간교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슬기로움은 화해와 평화의 이로움의 결과를 가져온다
몸은 그릇과 같다. 이 그릇에는 도를 담을 수 있다. 그릇이 깨끗해야 담기는 물건도 정갈하다. 얼굴에 미소를 담고 마음은 평온을 간직한 사람은 바른 행동과 바른 생활을 살아 가게 된다. 마음이 텅 비어서 빈 그릇과 같으므로 마음이 안정되어 무엇이나 받아 쓸 수 있는 자세가 되는 것이다. 그그릇이 가득 차면 언제나 남에게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참으로 빈 그릇의 노릇이다. 언제나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더 담을 수가 없듯이 바른 행동과 바른 생활은 깨끗한 그릇에 물건을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릇을 비우는 바른 방편과 바른 생각은 꼭 필요한 것이고 마음의 안정인 바른 인정이 그 으뜸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못했던 때에 많은 갈등과 자기 번민 속에 허덕이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할 일은 언제나 자기를 살피는 것이며, 편리한 것, 손쉬운 것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서있는 자리, 자기의 여섯 감각 기관이 각기 찾아 헤매는 것을 조절하는 자신의 마음을 찾는 일이다.
이제 곧 봄이 오고 새싹이 날 것이고 꽃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아카시아 꽃이 피고 향기는 흘러넘칠 것이다. 우리는 온 몸으로 뭉클뭉클 충동 속에 잠길 것이다. 그러나 꽃은 혼자 피고 향기를 뿜으며 또 혼자 시들어 갈 것이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아름다움으로 이 봄에도 행복을 누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