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째 주말에 사찰의 선방에 참여해오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이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고 혼돈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에 모두 참선에 든다. 정신이 집중되지 않고 마음은 어느새 두고 온 이들과 일어난 일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다시 화두를 잡는다. 여전히 정신을 집중시키지 못하자 몸이 마음을 지배해 가부좌한 다리에 아픔을 느낀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에 참선을 끝내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시 선방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대로 있고 싶었다. 모두들 선방으로 들어가자 고요와 어둠만이 주위에 머물러 있다. 어둠이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대로 앉아서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깊은 산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라 그런지 별이 참 맑고도 많다. 넓고 넓은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모여 은하를 이루고, 은하가 모여 소천세계를 이루고 소천세계가 모여 중천세계가 되고 중천세계가 대천세계로 펼쳐진다. 그래서 우주를 삼천대천세계라고 한다. 한 개의 별들이 모여 큰 우주를 이루듯이 사람들도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다. 사람들은 별들을 쳐다보며 그 중 하나의 별을 자신의 별로 의미를 두어 보기도 한다. 사람들이 때론 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각자가 빛을 가지고 있지만 저 별들처럼 서로 떨어져 혼자 내재된 고독을 느끼며 반짝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 사회의 작은 구성원이 되어 한 집합체와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만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헤어지며 그렇게 자신의 생명의 열을 발생시키고 있다. 우주의 시간 속에 언젠가는 빛을 잃을 어느 별처럼 그렇게 자신의 삶을 운행을 하고 있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티끌보다도 더 작은 존재인 나지만 자신의 고통은 우주를 뒤덮을 만큼 크게도 느껴진다. 오늘밤에는 은하수 즈음에 빼곡이 모여있는 별이 내별이 아니고 뚝 떨어져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별이 내별 같다. 그 무엇에도 속하지 못하고 혼자 이곳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말이다.
어느덧 새벽 예불을 알리는 법고가 울린다. 새벽이 되자 기온이 꽤 내려가 스산해졌다. 이곳을 다녀가면서 어느덧 계절도 바뀌어 곧 추위가 닥칠 것 같다.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느껴져 마음마저 추워진다. 법당 안의 촛불은 수많은 상념들이 교차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여전히 고요히 타오르고 있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공연히 몸만 이곳에 옮겨 놓았을 뿐, 남들처럼 이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일까 심경이 참담하게 가라앉았다. 도심을 들어서자 창밖에는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푸르스름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버스는 사람들을 각자의 삶의 위치에 점점이 뿌려 놓듯이 잠시 정차를 했다가 떠난다. 깨침을 이루기 위해 잠을 쫒아내며 하루를 지샌 사람들은 회색도시 어디인가로 바삐 사라져 갔다.
새벽의 도심에는 일찍 일어나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어느 한 장면에 눈이 멈추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운집해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른 새벽에 하루 일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 같았다. ‘아!’하고 마음이 막힌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밤새 답답한 마음을 참고 있던 내가 불현듯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무엇을 하든 좀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하는 마음이었을까.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며 그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가졌기 때문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삶의 모양이 다르다. 밝고 큰 별이 있는가 하면 미미한 빛을 바라는 초라한 별들이 있듯이 우리의 삶의 모습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 생명이 다하는 때까지 자신의 별빛을 찬란히 빛을 내며 살아야 한다.
법당 안에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타오르고 있던 촛불을 기억하며 오늘의 내 삶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