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사찰 속의 쥐를 찾아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김우림 울산박물관장 2013년 02월 372호

2005년 어느 날 법보신문에서 󰡒내 마음에 남은 절󰡓이란 지면의 원고를 청탁받은 적이 있었다. 나름 열심히 쓰긴 했는데 원고에 들어간 사진 때문에 신문 지면상 원고의 내용이 상당부분 편집되어 필자로서는 마음이 안타까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월간해인에서 편집장이신 종현 스님의 정중한 부탁에 문뜩 그 생각이 나서 승낙을 하고 말았다. 같은 글의 2중 게제가 아닌가라는 순간적인 고민도 있었지만 논문도 아니고, 원고의 양도 보장되어 내용도 보강될 것이며, 특히 해인사와 관련이 있는 글이라 다시 풀어보기로 했다.

필자의 전공은 조선시대 묘제墓制이다. 조선시대 무덤을 고고학적으로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덤에 나타난 다양한 현상들을 역사․민속․미술․풍수․음양론적 방법들을 통해 해석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가장 해결이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무덤에 있는 망주석望柱石의 주신柱身부에 한쪽은 올라가고, 다른 쪽은 내려가고 있는 동물모양이 과연 어떤 동물인가 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예서禮書의 기록에 의하면 이 동물을 세호細虎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호는 가는 호랑이 혹은 작은 호랑이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실제 모습은 호랑이와는 전혀 상관없고 마치 다람쥐나 청설모(靑鼠)처럼 생겼다.

강원대 김의숙 교수는 《열두 띠 이야기》라는 책 속에서 합천 해인사의 법당 앞에 있는 돌기둥에는 오르는 흰 쥐와 내려가는 검은 쥐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중생의 교화를 위해 《불설비유경佛說比喩經》에 있는 업고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때의 불설비유경의 내용은 지면상 창원 불모산 성주사의 설법전에 있는 벽화의 사진으로 대체한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비유한 것이며, 쥐들이 나무뿌리를 갉아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 찰나로 목숨이 줄어드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창원 불모산 성주사 설법전(1993년 신축) 벽화

해인사 석주(좌)


해인사 석주(우)

위 책을 보자마자 필자는 해인사를 찾았고, 해인사 법당 앞 석주石柱에 양각으로 새겨진 동물 문양과 조선시대 무덤의 망주석에 양각으로 새겨진 동물 모양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만 해인사 석주의 동물을 바로 흰 쥐와 검은 쥐로 대입하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어보였다. 이후부터 필자는 사찰을 방문하면 쥐를 찾아보겠다고 눈을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게 되었다. 그 결과로 김천 직지사 석등의 주신柱身부분에 올라가고 있는 쥐, 전술한 성주사의 벽화에 있는 흰 쥐와 검은 쥐 등을 만나게 되었다.


직지사 석등

직지사 석등의 쥐


그런데 이들 쥐들을 사찰에서 찾게 되었을 때, 특히 영천 은해사에서 흰 쥐와 검은 쥐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감동과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미 해가 지고 도착한 은해사에서는 저녁 예불이 한창이었다. 예불이 끝나고 만난 대웅전 내부 기둥 상단의 흰 쥐와 검은 쥐는 그렇게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은해사 대웅전 내부의 흰 쥐

은해사 대웅전 내부의 검은 쥐


놀랍게도 해인사, 직지사, 은해사의 쥐들이 망주석의 모양과 너무 흡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시대 무덤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와 사람의 혼을 쥐로 형상화하여 해석하고 있는 혼서설魂鼠說, 음양론 등을 가미해 망주석에 보이는 동물 모양이 흰 쥐와 검은 쥐를 상징하는 것으로 필자의 이론이 완성되었다. 조선시대 무덤의 망주석에 불교에서 말하는 낮과 밤의 상징으로서 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은 무덤을 찾는 후손들에게 세월이 흘러감, 즉 죽음이 다가옴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써 무덤을 찾는 후손들에게 삶에 충실하라는 교훈적 요소가 담겨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무덤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는 의외로 많다.

이후 계속해서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쥐 등 묘제와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 그래서 마치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하나만을 찾아다니고 있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사찰에 나타난 다양한 문양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다니는 또 따른 여정이 시작되었다. 전공을 벗어나 또 다른 상징성의 세계를 찾아다니는 여정으로 말이다.


--

김우림 님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과정 민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학예사 및 학예과장과 서울역사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울산박물관 추진단장 및 관장과 서울시 문화재위원으로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