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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출가승의 위상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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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청하 1988년 04월 74호
메마르고 거칠던 기나긴 겨울이 이제 오차없이 진행되는 변화 법칙에 의해 줍지만 그래도 촉촉히 물기를 안은 봄의 꽃샘바람에 실려 차츰 뒷걸음질치고 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했지만, 또 다시 새로운 봄을 맞는 우리 사회는, 질곡 많던 제 5공화국의, 미처 규명되거나 해결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을 남겨 놓은 채, 큰 변화없이 그 중심 인물만이 바뀌었을 뿐인 제6공화국에서 아직까지 눈에 띌 만한 변화의 폭은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시 단일화 실패로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줬던 야당 또한 여전히 제 모습을 개혁, 변화시키지 못한 채 총선을 앞둔 시점까지 갑론을박하다 끝내는 각자의 울타리 속으로 등을 돌려 버려 마지막까지 희망을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를 또 다시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뭔가 새롭게 변화된 세상을 갈구하며 그저 묵묵히 땅만 보고 사는 사람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에게는 올 봄도 예년과 다름없이 희망의 설레임보다는 삶의 고달픔으로 한숨짓는 세월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거창한 그 무엇을 외치기에 앞서 오염된 시정 가운데서 고달프게 삶을 이끌어 가는 시정인들과 동업중생으로 함께 숨쉬는 한 출가승에게 있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새봄을 맞는 심정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함이 분명하다. 개인적인 고민일지는 모르지만 요즘처럼 젊은 승려로서 자신을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이야 할지 망망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말은 곧 복잡한 현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하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고민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변화하고 발전하여 사회 형태가 더욱 더 세분화하여 복잡한 구조를 갖출수록 종교인, 특히 출가승은 자신의 종교적 역할과 위상을 설정하는 데에서 대단한 어려움을 안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치, 경제적으로 변화의 물결이 거친 시대에 서 있는 젊은 출가승에게는 그러한 고민은 더욱 가중되게 마련이다.
지난 과거에는 출가승은 각기 그 출가 동기에 상관없이 처음 출가를 하면 일정한 행자 수습 과정과 강원 교육을 거쳐 자신의 내면적 깨달음을 증득키 위해 참선에 전념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수행승의 뒷바라지나 포교에 힘쓰는 대중소임을 맡아 정진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수행 행로를 자신의 근기와 능력에 맞게 수행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한국적 불교 상황에 있어선 옛날처럼 출가승이 자신의 수행관과 위상을 정립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이 분명하다. 또한 지난 몇십년 동안의 한국 불교 역사의 흐름이 작금의 출가승을 더욱 고민하게 만드는 종합적이고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불교는 삼국 시대의 찬란한 불교 전성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의 정치적, 제도적 억압 속에서도 끈기있게 일관된 불교적 수행 전통을 이어 오면서 출가승려로서 대 사회적 역할들을 수행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의 지배기를 겪으면서 대처승화를 비롯한 왜색화와, 해방 이후 숨쉴 틈없이 거대한 힘으로 밀어닥친 자본주의의 물결과, 거기에 따른 모든 전통 수행 사찰의 관광지화와 개방화, 그리고 정치적 지도자의 의도적인 정화 유시에 따른 비구와 대처 간의 정화 싸움을 겪어오면서 애석하게도 그러한 한국불교의 전통은 하루아핌에 파괴되었고 게다가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계획성있고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들을 정립해내지 못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많은 모순과 문제를 안게 되었다.
현재 조계종단은 한해에 약 400여명의 승려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수계 이후 몇년의 출가생활을 전후로해서 적지 않은 수효가 다시 사회로 환속하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임으로써 종단으로서나 불교로서 많은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물론 환속 이후에 그들이 펼치는 불교적 역할들에 대해선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아뭏든 초심자가 자기가 고심끝에 선택했던 출가의 길을 중도 포기하는 원인을 단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마도 이같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처음 자신이 기대했던 종교심을 충족시키고 수행생활에 대한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지 못한 채 승려로서의 확실한 위상을 정립하지 못한 데 있지 않나 싶다.
젊은 출가자가 출가 이후 처음 당면하게 되는 과제는 미래에 대한 자신의 진로 문제이다. 약 1년 동안의 승려수습 기인 행자 과정을 거쳐 수계한 뒤에 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바로 선원에 들어가 참선에 전념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강원에 들어가 경전 공부에 몸담는 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과정을 밟아가면서 젊은 다수의 승려는 거기에서 만족함을 얻지 못하고 제3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그러한 수행 형태로서는 다원화되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대중이 요구하는 성직자로서의 역할과 임무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더욱 불행하고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젊은 출가승들의 고민과 방황을 해결해 주어 일정하고도 지속성있게 정도의 길로 이끌어 주고 승려로서의 사명감과 궁지를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종단적 차원의 지도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 출가를 기점으로 모든 문제를 자신의 고민만으로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초심자는 어렵게 선택한 길을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기가 쉬운것이다.
종단은 그동안 줄곧 종단의 3대 사업에 대해서 일관되게 한 목소리로 그 중요성을 주장해 오고 있다. 포교, 역경, 교육 사업이 그것인데, 그러한 종단의 3대 사업용 아직까지도 체계성있고 일관되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라도 가장 중요시되고 우선되어야 할 교육 사업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고 시급한 실정이다. 점점 더 첨단과학화되고 다원화되는 현대 사회에 있어 다른 타종교와 대응해서 종단을 이끌고 책임져야 될 전문적 인재를 배출함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에서, 그러한 작업을 담당해 낼 종단 내의 교육기관은 지방 본사별로 유포되어 있는 불교전문대학(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 중앙승가대학이 고작이다. 그나마 지방 본사 불교전문대학은 봉건적 형태의 현문 경전 중심의 훈고학적 교육과정을 이수시킬뿐,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제 방면의 전문 교양 과정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동국대학 또한 처음 종단적 차원에서 기대했던 승려들만의 전문적 인재를 배출시키는 대학으로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 역시 아직까지는 시험단계의 교육장으로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많은 젊은 승려가 위와 같은 불교대학이나 일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전혀 종단적 지원이나 감독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은 입시학원에서 일반 학생들과 더불어 공부하는 안타까운 현상까지도 보이고 있다. 교육에 대한 종단적 혁신이 없는 한, 젊은 승려가 자신의 뜻을 살려 공부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위치를 찾아가기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며, 젊은 승려를 여러 가지 면에서 방황케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대단한 변혁과 계층간의 갈등, 대립으로 혼란의 연속을 걷고 있다. 독재정권에 대항해 최루탄을 무릅쓰고 싸웠던 민중 항거의 결과로서 직선제에 따른 치열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이후 제6공화국이 새로운 보통론을 내세우며 들어섰지만, 군사정권의 연장론과 부정 투표의 주장이 계속 정가와 학원가에서 정치구호로 쟁점이 되는 상황에서 그 혼란과 대립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정치 상황과 더불어 80년대의 그 혼란한 정치 상형을 겪어 오면서, 10․27법란이라는 한국 불교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사건을 시발로 처음 80년대를 맞이해야 했던 한국 불교는 그동안 정치 현상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많은 사건과 변화를 맞이하였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이념을 주장하며 나선 진보적 승려의 대두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불교 운동 단체의 결성은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들은, 종단이 정부의 사회정책에 대해 무조건 수긍하고 찬동하거나 침묵하던 지난 과거의 왜곡된 호국불교론에서 탈피하여, 여러 면에서 종단의 이익과 자주성을 외치고 부분적이나마 사회 민주화 운동에 불교적 목소리로 동참하는, 예년에 볼 수 없던 변혁된 활동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에 반비례해서 일부 중진급 승려의 기존 종단이 갖고 있는 전통적 보수성과, 이해 부족에 기인한 진보적 승려의 움직임에 대한 이단시와 상이한 입장 대립으로 보수승과 진보승이라는 새로운 획을 긋게 만들었으니 그 사이에 보이지않는 갈등까지 야기시키고 있는 것 같다.
이상과 같이 정화 이후 아직까지 내부적으로 계속되는 종단의 분규와 잡음, 전통적으로 계승되던 상하 위계 질서의 파괴, 자신이 몸담고 책임있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의 미비, 다양화되어가는 기농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적응 문제, 격동하는 정치 상황에 따른 젊은 승려로서의 진보적 욕구에 기인한 심리적 압박감 등,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산적한 문제들이 현대 사회에서의 젊은 출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있어 깊은 고민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새 봄을 준비하기에 앞서, 새롭게 제기되는 그와 같은 자신의 위상 정립에 대한 시대적 어려움과 문제는 비단 어느 한 연약한 젊은 승려의 개인적 고민이 아닌 다수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승려 대중이 앓아야 하는 시대적 전염병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뭏든 젊은 승려들을 고민하게 하고 방황하게 하는 이와 같은 오늘의 불교에 내포된 종합적인 문제들은 결코 한 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님이 분명한 것같다. 그것은 종단 차원에서의 끊임없는 선두적 노력과 더불어 문제를 안고 있는 모든 승려 대중이 스스로 해결하고 풀어나가야 될 시대적 과제가 틀림없다.
비록 많은 질곡과 모순을 안고 있는 지금의 한국 불교 상황과 시대적 상황이 젊은 출가 승려로 하여금 자신의 시대적 위상을 설정하고 불퇴전의 수행관을 정립하는 데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줄지라도, 그것은 스스로의 굳건한 종교적 사명감과 신앙심으로 타개해 나갈 수밖에 없는 과제일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풀어가면서 스스로의 시대적 위상을 철저한 자기 반성 및 현 사회와 불교에 대한 객관적 비판을 이룬 가운데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시 맞는 새봄 앞에서, 역시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서기는 예년과 다름없는 현실일지라도 또 한번 새로운 희망과 기대 속의 새봄을 그리며, 종단이 변화, 발전하고 사회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갈구하면서 이 어려운 시대적 삶을 계속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