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도 오리나무 숲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7, 80리
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숲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어찌 눈내린 삼수갑산 가는 길만 고개의 길이겠는가. 눈 내린 대관령 가는 길도 한계령 가는 길도 고개의 길이다. 삼천리강산어딘들, 눈 덮인 영 길은 어슷비슷하게 우리네 고유의 정감을 흠뻑 담고 있다.
이 시에서 느껴지는 정감이야말로 바로 우리 민족 정서의 원형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이런 정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와 있으며, 대도시화와 국제
화, 세계에의 도약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고유의 따뜻한 마음과 오붓하고 오손도손한 이웃간의 인정을 얼마나 많이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더러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연변(延邊) 한인 지구 동포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접하면서 노상 느끼는 감회도, 앞의 시에서 느끼는 정감과 비슷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치마저고리 차림의 중년 여인과 늙은 할머니들이 들판에서 장고 치며 얼씨구 절씨구 춤 추고 노는 우리네 50년대, 60년대의 풍정(風情)이 흠뻑 들어차 보이는 그 속에서 우리가 저도 모를 잔잔한 미소 섞어 맛보는 것도, 옛날에의 향수와, 그리움, 그리고 ‘따뜻한 이웃간의 툭 터져 있는 마음’이다. 과연 행복이라는 것, 잘 산다는 것이 물질생활의 풍요와 GNP의 상승, 선진국 대열에 끼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아무리 수출이 늘고, 외화를 벌어들이고, 선진국 대열에 바싹 다가서며, 하루 하루 사는 것이 풍족해지고 편리해졌다 한들, 진정으로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고 즐겁지 않을 때,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행복은 커녕, 도리어 한사람 한사람은 그 어떤 불안과, 조바심, 공포에 시달린다. 고층빌딩이 임립하고,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고, 모든 것이 현대화의 물결을 타고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데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못하는 것이려니와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비정한 경쟁판에 휘말려들어서 소용돌이 속에 정신없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거니와, 옛날 한때 구라파에서는 이탈리아를 거지의 왕국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프랑스가 그렇다고한다. 가장 앞서간 이른바 선진국의 하나인 프랑스에 거지가 많다니, 언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나 사실로 요즘 프랑스에는 대학 교수 출신의 거지가 날로 늘어나고 있어서 당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옛날 희랍의 디오게네스 같은 철인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말년의 싸르트르 같은 철학자도 일종의 거지였을 것이다. 늙어서 독신으로 살던 그는 보기에 따라서는 거지 쪽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싸르트르의 말년은 쓸쓸했다. 누군가가 그의 말년 어느 날의 정경을 그린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싸르트르가 사는 아파트의 안뜨락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은 공을 내던지고 한쪽으로 달려들 갔다. 다음 순간, 외투 차림의 체수 작은 노인 하나가 양손을 소년들에게 내맡긴 채 소년들에 에워싸여서 나오고 있었다. 싸르트르 씨였다. 아파트의 출구 층층다리를 아이들과 같이 한단 한단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려와, 큰 길 어구까지 나오자, 한 아이만 남고 나머지 아이들은 한덩어리로 엉켜서 ‘봉쥬르, 무쉬 싸르트르’ 라고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싸르트르는, 잡힌 손말고 다른 한 손을 들어 등뒤의 아이들에게 화답을 하였다. 그렇게 남은 한 아이의 손에 이끌려 큰 길을 더듬어갔다. 점심식사라도 하려고 나온 것일 터이다.”
이때, 그는 거의 실명 상태였다. 파출부도 오전 중에 돌아가, 그 다음은 노인 혼자서 종일 쓰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권력과 자유』라는 마지막 저서였다. 서거하기 얼마 전, 한쪽 눈만 약간 시력이 회복되어 눈을 원고지에 찰싹 붙이듯 하고 써나갔다. 물론 그는 거지는 아니었다. 세계적인 대석학이 어찌 거지일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필자가 몇년 전에 파리에 갔을적에, 남달리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도 사실은 거지였다. 품위있게 잘생긴 늙은이 두엇이 어릿광대 같은 울긋불긋한 차림으로 공원 입구에 앉아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거지임이 틀림없어,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포도주병까지 고쳐세우면서 의젓하게 포오즈를 취해주었다. 그러나 사진을 다 찍고 나자, 어김없이 손을 내밀어, 출연료를 요구하였다. 몇푼 뜯기긴 했지만, 그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쁘긴 커녕 그들의 그 얼근히 취해 있는 모습이 묘한 감회마저 불러일으키고, 무언지 사람살이의 근원적인 자연스러움과 따뜻함마저 느끼게 해주는 거였다. 역마살이 된통으로 끼어 팔자대로 거지로 사는데, 누가 간섭이냐는 식이었다. 독신으로 평생을 교사, 교수직에 있다가, 늙어, 현직에서 물러나, 자유스럽게 누구의 간접도 안 받고 거지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그게 대체 어쨌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그때, 필자가 겪은 그 두 늙은이도 바로 그런 거지로,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깊은 철학담을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종류의 거지가 지천으로 늘어날 때는 물론 문제겠지만, 사회 문제로까지 크게 대두되지 않을 정도일 때는, 차라리 자연스러워 보일 법도 하다. 거지가 한 사람도 없는 나라, 그쪽이 도리어 이상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서 반 우스개소리로 들었지만, 요즘 세계에서 가장 거지가 없는 나라가, 우리 한반도, 남한과 북한이라고 한다. 자,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거지가 한사람도 없어서 이것이 과연 지상낙원이고, 이상적인 사회일까. 아니 사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모든 것이 어거지로, 겉가죽으로만 돌아간다는 반증일 것이다. 거지가 없다! 듣기에도 벌써 딱딱하고 부자연스럽고, 어거지 관료주의, 전시성 겉가죽 행복 냄새가 물씬 난다. 그리고 ‘형제복지원’ 원장 같은 시뻘건 얼굴이 떠오른다. ‘통대 대의원’ 같은 얼굴, 욕심많고 정력 좋은 ‘유지’ 라는 사람들의 얼굴, 위선의 철판으로 겹겹으로 깔고 여기저기 설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길인가. 다시 곰곰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전날, 싸르트르는 외국 방문객의 질문에, 그의 아파트 방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국주의가 빚어내는 민주주의는 애시 당초부터 진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이런 패턴이 이어져온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월남 전쟁의 종결로 끝장이 난 것도 아니다. 우리는 19세기 이래 몇 차례의 전쟁까지 포함, 갖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그들 과정을 총괄 반성해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근대, 현대의 원점에까지 되돌아가보는 것이 가장 유효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서구라파 좌익 운동의 전면적인 붕괴와 좌익 정당이라는 것의 ‘정당화(政黨化)’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사회주의 국가군(群)의 국가화(國家化)에 대한 실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 필자는 금년 겨울의 극심한 가뭄과 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싸르트르의 말년과 그무렵의 그의 세계 인식, 세계사 인식에까지 뻗어갔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요컨대 우리 재래의 소박한 삶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 이것이 민족정서의 튼튼한 보루로서 버티고 있어야 한다. 21세기를 향한 웅장한 비젼도 좋고 선진국 대열로의 발전과 급격한 변화도 물론 좋지만, 우리의 고유한 이웃 관계, 인간관계가 경쟁의 논리 속에 날로 가파라지고 버정스러워져갈 때, 그 너머 남북 분단의 영구화는 당연지사가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 대규모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서는 것은 좋지만 그쪽으로의 대량 이민의 권유는, 그리고 그런 행태가 날로 퍼져나 간다는 것은, 해외에로의 민족 웅비(雄飛)려는 면으로 보이기보다는, 남북통일에서 점점 벌어져가는 데 더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어찌 그 옛날의 가난이 그립기야 하겠는가. 배고픔만큼 슬프고 진저리나는 일도 없다. 그건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그 시절엔 따뜻한 이웃 관계가 그대로 온존되어 있었고, 비정한 경쟁과 승부 세계에 시달라는 일 없이 누구나가 허심탄회하게 툭 터져 있었고 인정스러울 수가 있었다. 승부래야, 설날 윷놀이거나 단오날 씨름판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람살이의 자연스러움으로 사람마다 숨쉬기가 편하였고, 서로가 정겨움으로 넘쳐났던 것이다. 질화로 가에 둘러앉아서 감자를 구워 먹던 시절, 어찌 그 시절의 가난이 그립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가난했을 망정 그 시절엔 우리 것, 우리 고유의 것이 어디에나 넘쳐 있었다.
민족과 국토의 통일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21세기라고 다를 것이 없다. 잘 살고, 발전한다는 것이 나라의 통일 쪽으로 가까워질 때 제대로 잘 사는 것이지, 멀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이 제국주의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