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들의 역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여연
1988년 04월 74호
198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소설가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이라는 책에서 나치즘의 군중 동원과 조작 권력 증대와 전쟁 도발이 어떻게 히틀러 개인의 편집광적인 권력 망상과 그 자신의 살아남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잘 이야기하고 있다.
그 책은 권력자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내보내고 마지막까지 살아 남으려는 자이며 또한 인간의 군중적 속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이용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권력이라고 하는 엄청난 ‘신화’의 역사이며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권력의 역사에 동참하거나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라밋과 개선문의 웅장함에 경탄하지만 정작 피라밋을 쌓아올린 ‘이름없는 부역자’나 권력의 증대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민중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역사를 권력자의 역사와 동일시하고 문화를 기껏해야 개선 행렬에 따라다니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역사주의, 문화사적 역사관을 냉혹히 비판하고 있다.
한달 전 낡은 틀을 깨뜨리고 온 국민이 민주와 번영을 누리게 하며 지주와 자존의 통일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었다. 그는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국민화합을 위해 칠천이백명의 많은 양심수를 사변 복권시켰다. 그리하여 제5공화국 군청치하 7년 동안에 일만이 천삼백육십사명의 엄청난 시국사범들이 피라밋의 부역자가 되어 풀려난 셈이다. 그들은 개인의 따뜻한 행복의 삶을 포기한 채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다수의 생존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죄목으로, 진리의 제단인 상아탑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외치다가, 또는 개인의 영달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마당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투쟁하다가 갇혀 고생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은 양심수들이 죄인이 되어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가 단적으로 억압과 굴종의 역사, 권력자 중심의 역사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물량 성장과 안보를 앞세워 자율과 인권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시대, 힘으로 억압하거나 밀실의 고문이 없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지난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빛나는 맹서를 국민에게 했다. 그러나 그 동안 권력의 논리와 힘만이 지배하는 역사 속에서 말의 힘, 말의 양심을 잃어버린 시대에 너무도 오래 살았던 우리들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취임사 전부가 어느 한 구절도 버릴 수 없는 꿈의 동산에서 주워온 어떤 신비한 씨앗만 같다. 희망이란 새벽은 이렇게도 어지럽고 몽롱한 것인가. 그래서인지 어질고 착한 백성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무조건 불신만 말고 믿고 그가 국민 앞에 약속한 말의 불꽃을 어떻게 찬연히 피어내는가를 지키며 기다려 보자고 하지만, 그의 말을 믿기엔 시기상조인 듯 싶은 것이, 아직도 역사의 진실을 알고 사랑하는 많은 양심수들이 그 미래의 화려한 메시지의 그늘 아래에서 차갑게 웅크리고 있지 않은가. 천지에 봄의 신명이 내려 온갖 대지의 생명들이 눈뜨는 소리로 물결쳐도 그 어둔 곳에는 퍼런 고통의 신음 소리만 들끓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젊은이들이 이상과 꿈을 수용하며 항상 개혁하고 새로워지는 진취적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데에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그 달콤한 말의 꽃밭에 동참할 수 있을까.
믿음의 대지 위에 희망의 새벽, 행복이란 약속의 씨앗을 뿌리려면 황폐하고 그늘진 땅, 버려진 황무지를 더 많이 개간하며 높은 둑을 무너뜨려 갈라진 틈을 메워서 평온을 일구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말의 양심”, 그 진실한 믿음의 열매를 풍요히 거둘 수 있으리라.
또한 노 대통령의 말의 양심이 고통과 분노가 되어 이땅에 뛰어나오지 않기 위해, 아니 우리들이 권력의 역사에 동조하고 동참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모든 악덕에 주둥이를 파묻고 이를 가차없이 파헤치는 “시대의 개”가 되어야 한다는 헤르만 브르흐의 외침을 더 크게 우리들의 봄의 언어로 확인해 나아가야겠다. 그래서 이땅에 다시는 민족의 통일과 역사의 은폐된 허위를 밝히려는 수많은 자유인들이 어둠에 갇히는 시대가 끝나기를 눈 퍼렇게 뜨고 지켜야 할 것이다.
어둡고 칙칙했던 겨울의 상처투성이로 갈라진 땅 속에서 이름 모를 들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여기 저기 구릉진 비탈에서도 산수유 꽃이 흐드러지고 있다.
이제 머잖아 조국의 산야엔 피같은 절규의 꽃 진달래가 죽은 자의 영혼을 묻혀내며 피어날 것이다. 제발, 우리의 봄, 이 넘치는 계절이 갇힌 자들이 외면당하고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안에 화사한 꽃 잔치를 벌이는 계절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비록 반쪽으로 갈라진 이 조국의 품에서나마, 그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우러르며 진달래꽃 피는 고향 언덕에 올라 4월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