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의 공원화 과정
“… 황폐해 가는 산림의 보호-육성과 산림에 서식하는 동물의 보호를 꾀하고 각종 천연자원을 확보하고자 하는데 있으며 국민의 문화 연구와 여가 선용에 이바지하고자”라는 명분으로 공원법이 제정된**것은 60년대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작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72년정에 의해서 였다.
처음 공원법이 발표되었을 때 불교계의 반대는 완강하였다. 대부분의 사찰이 수려한 주위 경관과 산림을 소유하고있는 현실에서 공원으로 지정될 경우 불교계는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이고, 더구나 신성해야 할 수도 도량이 관광지로 전락하고 말 것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71년 5월, 당시 총무원장이자 사적보존 특별위원장이었던 이 청담 스님 이름으로 제출한 ‘공원법 시행 반대에 관한 건의서’는 무엇보다 종교의 존엄성과 사찰의 자주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더구나 법은 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사찰과의 사전 협의 없이도 건설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국토 이용관리법 6조에 근거, 현재도 적용되고 있다.)
이는 헌법상 엄연히 보장된 ‘사유재산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다.
처음에 신흥사, 화엄사, 법주사에 이어 ‘72년 8월 해인사가 공원으로 지정 발표되었을 때 불교계의 거센 발대에도 불구하고 확정된 것은 사찰 공원화의 한 분기점이 되었다. 해인사 개발의 발표가 있자 해인사의 전 대중은 곧바로 “한국 유수의 대총림(승가 종합 수도장)이 공원이나 관광지로 전락할 수 없다”는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고, 건설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 요로에 전달하였다. 아울러 종정 및 총무원장까지 나서서 그 뜻을 호소하는 소리를 각계에 전달하였다. 그때에 해인사 대중이 내세운 반대 이유는 불교계의 절실한 주장이었기에, 요즘 오히려 공원으로 지정되기를 바라는 풍조와 좋은 대조를 이루니 한번 되새겨봄 직하다.
1. 해인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국내 유일의 수도원인 바 이 수도원은 절대로 공원과 양립할 수 없다.
2. 만일 해인사가 꼭 개발되어야 한다면 성역화로서의 개발은 타당하나 공원화는 할 수 없으며
3. 해인사를 공원화하고 보면 앞으로 한국 불교의 인재 양성처는 찾아볼 수 없게 되고
4. 이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사찰인 설악산 신흥사, 지리산 화엄사, 속리산 법주사 등은 공원법에 묶여 사우(寺宇)의 신축이나 연료의 채취가 어렵게 되었음은 물론 운영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사찰과 수도원이라는 특수 사정이 조금도 고려되고 있지 않아 동법 제 11조, 12조, 13조와 16조의 ①, ②, ③, ④항 등은 종권 침해의 결과를 초래하여 조도보전(祖道保存)과 포교 전도의 자주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수도 분위기를 망친다.
그러나 결국 해인사는 가야산 국립공원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고, 패배의 한 장을 장식하면서 이후에는 사찰들이 속속 공원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국립공원 내의 사찰이 모두 l8개에 이른다.
사원의 관광지화에 따른 피해
예상대로 사찰은 수도원의 품격을 잃어버리고 관광지로 전락되었다. 여기에다 스님들은 공원 관리인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기에 뜻 있는 스님들은 관광 사찰을 회피하게 된다. 공원화로 말미암아 공원 내의 사찰은 건물의 신축, 개축, 증축에서부터 광물의 채굴, 임목, 사석의 채취, 토질의 개간, 형질의 변경, 식물 또는 곤충의 채취에 이르기까지 매사에 지연되는 수가 허다하다. 또한 절 주위의 산림이 녹지로 묶이는 바람에 연료 채취의 어려움이 있어 연탄을 때야 할 실정인데, 연탄을 때면 또 연탄재로 인해 국립공원 경관을 해칠 우려가 있다 해서 나무를 때라고 요구하기도 하니 구태여 화목을 사서 때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더러 있다.
이런 일도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의 내원사는 비구니 사찰인데 공원 입장료의 수익금을 분배 받지도 못한 채, 여름 등산객이 붐비는 시기가 되면, 사찰 주변에 들어서는 텐트촌이며 관광객들의 고성방가에다 목욕 후 수영복 또는 짧은 옷차림으로 경내까지 출입하는 피서객 때문에 입는 피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이밖에 공원화에 따른 피해는 여러 가지로 많은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입장료에 의한 것이다. 입장료는 언뜻 보기엔 사찰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듯하지만 그것처럼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없다. 그것은 바로 사찰 공원화의 근거가 되는 것이니, 다시 말해, 지금 공원 내의 사찰이 부단히 겪고 있는 제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
입장료 수입에 따를 부작용
“절에 가는데 무슨 돈을 내!” “왜 이리 비싸!” “절은 이 돈 갖다 다 뭐에 쓰나.” 절을 찾는 이들이 한번씩 뱉는 이야기이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공원 입장료가 몽땅 절 차지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찰은 입장료의 10 퍼센트만 지급 받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80년 이후 지급이 중단되었다가 회복된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지급된다 하더라도 몇몇 사찰을 제외하고는 별 실속이 없다.
처음에 정부는 사찰에 입장료 수입의 70퍼센트 지급을 약속하였다. 그것은 공원의 대부분이 사찰 소유지이므로 마땅한 권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20퍼센트만을 지급하다 ‘76년부터
각 시•도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30 퍼센트를 지급해 왔었다. 그런데 ‘81년부터는 아무런 통보 없이 해인사(10퍼센트)를 제외하고는 지급을 중단하더니 그 해 10월 내무부와 문공부에서 뒤늦게 지급할 수 없음을 통보해 왔다. 그러다 ‘85년에 와서 “대부분 국립공원 입장 수입이 공원관리 및 개발에 따른 재정 수요에 못 미치는 실정이나 조계종단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86, ‘88올림픽을 앞둔 당면 상황을 감안하여 국립공원 입장료의 10 퍼센트를 지급하겠다”고 마치 선심쓰듯 통보해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공원 입장료에서 얻은 사찰의 수익금은 실제로 사찰 보수와 편의 시설의 설치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입장료는 불교에 각종 부정적인 면을 산출시키고 있다. 먼저 불교 내적으로 생겨나는 공원 지역 사찰의 안일함을 지적할 수 있다. 사찰이 신도에 의해 운영되지 못하고 관람객에 의해 운영되니 굳이 전법 포교에 힘쓸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의 문제는 좋은 몫의 사찰에 주지 쟁탈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는 점이다. ‘83년 신흥사의 살인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종권이 바뀌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또한 신앙심을 떨어뜨린다. 오랜만에 신심을 내서 산사를 찾은 사람들, 비록 그 속 사정을 알아도, 찌푸려지는 눈 쌀을 어쩔 수가 없는데 불자가 아닌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 신앙심을 저하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신앙적 예의를 요구할 수 없음이다. 요구한다 해도 다만 도덕적 요구일 뿐이고 그에 대한 타당성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되지 못한다. 불자의 처지에서는 그 곳이 삼보 호지의 신성한 땅일지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입장료 내고 관광삼아 놀이삼아 왔다고 해서 탓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신앙적 예의와 전통적 습관을 요구할 이유가 그만큼 반감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반 부정적 요소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원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교계의 반응이다. 해인사 이후로는 사찰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공원 지정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것보다는 더 많은 입장료의 지급에 집중되어 있는 형편이다. 적어도 30퍼센트는 지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니,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사찰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위협(?)을 정부에 가하기도 했었다. (‘87년 9월 본사 주지연합회 결의)
어찌하였든 본질적인 문제는 입장료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원 내 종교지구 설치
연기영 교수(동국대)는 “공원화에 따라 사찰이 입게 되는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원 내 ‘종교지구’가 설정되어 공원화로 인해 입게 되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국토이용 관리 법령에 규정된 제15조 “산림보존지역 안에서는 영림과 관련되지 않은 한 농지 조성, 택지 조성…의 토지이용 행위는 이를 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에 관해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의 조항에 “종교시설의 신축, 개축, 또는 증축과 그 부대 시설의 설치에 관한 행위와”를 ▲표한 곳에 첨가시켜 법령을 개정한다면 종교 시설지구는 보호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사찰은 공원지역에서 제외되고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는 대신 입장료 수입은 없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상안만은 아니다. 10년 넘게 입장료에 의해 운영되던 사찰은 신도 조직의 바탕도 없고 포교의 경험도 없어 당장 어려움이 따른다.
공원화에 따르는 불편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공원에서 제외되는 것을 또한 두려워하는 것이 오늘의 절 집안이다. 그러니 종교지구를 설치하여 사찰의 관광지화를 막는 일은 외부적인 것보다는 내부적인 요인 때문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84년에 봉암사가 공원화에 반대하여 결국 공원에서 제외된 보기가 있음은 불교인의 의지 여하에 따라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사찰 재정의 어려움은 일단 불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공원화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전법 포교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불자에 의해 운영되는 사찰이어야 신앙은 그 깊이와 생명을 더해갈 수 있음은 너무도 자명한다.
봄바람과 함께 몰려드는 관광객에 산사가 몸살을 앓기 시작하는 계절이 또다시 다가왔다.
* ‘전통사찰보존법’ 또한 50년이 넘은 사찰에 준한다는 규정만 첨가되었을 뿐이지 재산의 자율적 활용을 금지하는 그 기본 원칙이 바뀐 것은 아니다.
** 초기 공원법은 국립, 도립, 군립, 도시 근린공원법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80년 자연 공원법과 도시 공원법으로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