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노스님께서 해 주신 옛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옛날, 깊은 산골 마을에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소를 한 마리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몇 년 후에 농부는 소를 살 수 있었단다. 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늦 자식을 얻은 노부부의 기쁨 이상이었다. 농부는 소를 자식처럼 아껴주고 그의 생활은 소와 같이 더 부지런해졌다.
그러면 어느 날 갑자기 소가 없어져버렸다. 농부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소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농부는 자리에 몸져 앓아 누웠다. 그 가엾은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이웃 마을의 아주 용하다는 점장이를 불러다 주었다. 소가 어디에 있는가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 점장이가 하는 말이 그 소는 산 꼭대기에 있는 소나무 위에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점장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소가 어떻게 소나무에 오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 꼭대기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그리고 허겁지겁 소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아 거기에 소가 있는 게 아닌가. 그는 갈대 숲 사이에 누워 있는 소를 찾아서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정말 소가 소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느냐고 묻는 마을 사람들에게 농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고, 그것을 본 점장이는 말없이 웃으며 그 마을을 떠났다.
이야기를 마치신 노스님께서도 역시 빙긋이 웃으실 뿐 내게 더 이상의 말씀은 하시지 않았다.
이제서야 옛이야기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 줄 알게 되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나를 설레이게 하였던 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방문을 열며 내게 말했다.
“당신은 충분히 될 수 있소. 기다리시오. 당신 눈 앞에 당신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그 확실히 드러난 당신의 모습 속에서 당신은 거대한 또 하나의 우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우주와 당신의 만남, 그것이오, 깨달음이란. 그러나 그것은 당신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줄지도 모르오. 그러나 이 우주 안에 영원 상주하는 것은 없으니, 고통 그것마저도 고통 그 자체로 있게 하시오. 그럼 잘 가오.”
나는 그의 방을 나섰다.
마당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도시의 달은 창백한 빛으로 처연히 어둠을 헤치고 있었다.
“그래. 여고 시절 민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야.”
아이들은 국어 시간을 무척 싫어했다.
시인이란 말만 들어도 까무라칠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아이들이었는데, 민선생님만큼은 예외였다.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지금에 와서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 때 그 단원이 수필이었을 것이다. 민선생님은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것을 이야기하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평소와 같이 자유 시간(민선생님 시간에는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여도 꾸짖지 않았기때문에 우리는 그 귀중한 시간을 자기들만의 자유 시간이라 부르고 있었다)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
내 시선은 운동장 한 구석 숲을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에 온통 쏠려 있었다.
“부처님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보이셨는데 수많은 대중들은 묵묵부답이었지. 그때 조금 늦게 들어온 가섭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가섭이 빙긋이 웃었어. 그 미소를 보시고 부처님은 가섭에게 법(法)을 전하셨단다… 부처님의 마음과 가섭의 마음이 온전하게 하나되어 만났기 때문이야. 마음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은 그 안에 우주를 갖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지…”
난 무척 신기해 하였다.
민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찼다.
부처님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보이신 뜻은 무엇일까? 또 가섭이 미소로 답한 의미는 무엇일까? 한 마음 속에 우주가 들어차다니, 그것이 내게도 가능할까? 의심이 끝없이 일면서도 난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힘에 의해 조금씩 떨면서 한편으론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방과후, 민선생님을 찾았다. 그리고는 마음 속에 의심이 있는 것들을 다 털어놓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 난 민선생님의 이야기를 언어라는 틀 속에 맞추어 내 것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 요구를 들어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민선생님께서는 서둘며 무엇인가를 찾아가려는 제자의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우셨던지 단지 바라보기만 하실 뿐 묵묵히 앉아계시기만 했다.
나는 보챘다.
민선생님께서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말씀하셨다.
“다만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란다. 내가 느낀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느낀다는 말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틀에 맞추면 그것은 역시 본질을 벗어나 느낄 수 없게 되지.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척 어렵단다. 언어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단다. 말을 하지 않으면 본질을 담고 있는 틀마저 모르니까 이야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틀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야. 머리로 이해하려 들면 이해는 될지 몰라도 자기의 것은 되지 않는단다. 단지 느껴보렴. 느낀다는 생각도 잊은 채 말이다…”
여고 2년생인 나는 혼돈에 빠져 버렸다. 곧 입시가 닥쳐 오는데 난 그 문제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 방황으로 인해 재수, 삼수까지 겪고 그 우스운 대학에 들어가기는 하였다. 그 때 나는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해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놓아 버리지는 않았다.
수년 후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건물에 작은 간판을 보았다.
“염화선실”
“염화”라는 두 글자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연꽃 한 송이와 가섭의 미소에 또 집착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내 가슴을 후려치고 가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황홀함이었다.
바로 민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느낌이었다.
난 거리로 나섰다.
밤 거리는 달리는 차들의 불빛으로 현란하였다.
그 빛 속에서 난 또 한 송이의 연꽃을 보았고 또 가섭의 미소도 보았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동시대에 존재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체를 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