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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夫得)스님의 열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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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엮은 삼국유사 - 김호성 1988년 03월 73호
삼국유사는 고려 25대 충렬왕 11년(서기 1285년)에 일연(一然) 스님이 쓴 책으로,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뿐더러 신화나 전설 및 시가 들을 많이 싣고 있는 삼국유사를, 오늘에 이르러, 알기 쉬운 글로 풀이하여 되비추어 보는 작업은 불교라는 틀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를 바로 본다는 데에서 그 깊은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엮는 삼국유사’는 첫째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둘째로, 필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의 사회사 및 생활사를 복원한다는 관점에서 내용을 보태기도 하며, 세째로, 글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꾸며서 설명은 되도록 줄여 나갈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삼국유사 권2, 탑상(塔像) 편의 ‘남백월 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조(條)를 소개한다.


1
“박박(朴朴), 박박스님 있는가?”
“그래, 부득(夫得)스님인가? 어서오게나. 헌데 어째서 그리 보기 힘드나?”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요즘은 우리 회진암(懷眞庵)에도 잘오지 않으니 말일세. 박박, 우리 사는 것이 무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도무지 도(道)를 그리는 마음이 일어날 틈이 없어.”
“맞아. 하지만 문제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닐 거야. 아내와 아이들이 있지 않나? 그러니, 농사라도 부지런히 지어야 먹여살릴 수 있지. 아니면 짚신이라도 삼아야 할 것이고.”
“더우기 아내와 아이들로 말미암아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옛날 이 대불전(大佛田)이나 소불전(小佛田) 마을 같은 데에는 집을 떠나서 혼자 살아가는 진인(眞人)이 있었다고 듣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가 인연에 얽매이게 된 것인지 모르겠네.”
“박박, 너무 낙심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네. 우리 한 번 더 출가하면 그만이니까. 옛날 선천촌(仙川村)에세 법적방(法積房)으로 한 출가는 출가라고 이름하기도 부끄럽네. 애욕과 소유의 집을 떠나는 것이 출가일 텐데 사랑하고 미워하는 정(情)을 안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갔으니, 그건 차라리 이사라고 해야겠네.”
“자네 말이 맞네. 부처를 배우려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는다면 응당 진리를 얻어야하는 것이지. 아무 데에도 집착함이 없이 오직정진만 하세.”
“환경을 달리하면 마음도 새로와지는 법. 소유와 애욕을 떠나기 위해서도 우리는 다른 도량으로 가야 하네.”
“그래. 어디가 좋을까?”
“박박, 이 남백월산(南白月山)은 봉우리들이 기이하고 산의 맥(服)이 수백 리에 뻗어 있으니, 여기가 수도하기에는 좋으리라 생각하네.”
“그럼,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면 무등곡(無等谷)이 있지. 우리 어릴 때 사냥하러 가지 않았던가?”
“그래, 생각이 나네. 거기 옮겨가서 암자를 짓고 함께 수행토록 하세.”
“아니야, 부득, 그건 안돼. 이미 철저히 혼자서 길을 가기로 한 이상, 우리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이지만,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세.”
“좋은 생각이네. 어차피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내버리려고 했으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든지 먼저 깨달음에 드는 때에는 서로 구제해 주기로 약속을 하세.”
“좋아, 우린 오랜 친구니까 마땅히 그리 해야겠지.”
“내가 서쪽 극락세계에 먼저 가게된다면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 들과 함께 부득 자네를 맞으러 오겠네.”
“고마우이. 모든 중생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서 미륵부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도록 기도한다면 틀림없이 미륵부처님이 내려오실 걸세. 그때 우리 함께 미륵부처님을 뵙고 같이 설법을 들어 용화세계(龍華世界)에서 살도록 하세.”
“부득, 어서 정진하러 가세.”
“박박, 어서 정진하러 가세. 그리고 나는 믿네, 우리 같이 용화세계에 있게 될 것을.”

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벌써 삼 년 세월이 다 되는구나. 그런데도 아미타부처님은 아니 오시니, 내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득은 미륵부처의 오심을 기도한다 했는데 아직 아무런 영험이 없는가 보구나.’
“똑, 똑, 똑.”
“아니, 이 밤중에 누가 왔단 말인가? 누구요?”
“스님,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었읍니다.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배는 고픈데 어떻게 갈 수가 없군요. 자비로 거두어 주셔서, 하룻밤 묵어가게 해주셔요.”
“낭자, 절이란 본디 청정한 곳이오. 어찌 부정(不淨)한 여인네가 머무를 수 있단 말이오?”
“사람이 부정하단 말이오? 스님 마음 속의 번뇌와 집착이 부정하다는 말이오?”
“내가 여기에 와서 아미타부처님만을 염(念)한 지가 삼 년 가까이 되오. 그런데도 아무런 응함도 없으니 더더욱 정진을 거듭해야 할 처지라오. 그러니…”
“아미타부처님만으 찾는다고 아미타부처님이 돌아봅니까?”
“……”
“스님, 자기만을 위하고 중생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아미타부처님 또한 그를 돌아지도 않을 것이오.”
“낭자, 그대의 갈 길은 그대가 가고 나의 갈 길은 내가 가는 것이오. 저기, 남쪽으로 내려가면 부득스님의 암자가 있으니 그리고 가 보시오.”
“……”

3
“똑, 똑, 똑.”
“미륵존불, 미륵존불, 미륵존불…”
“스님, 부득스님”
“누구요? 이 깊은 밤중에, 누가 왔읍니까?”
“예, 스님. 지나가는 사람입니다만, 날이 저물어 버렸군요. 갈 길은 아직많이 남아 있고 배는 고픕니다. 자비로 거두어 주소서. 하룻밤 묵어 갈까합니다.”
“이곳은 본디 미륵부처님의 하생(下生)을 염원하는 곳입니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와서 머물고 간 여인은 없읍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중생에게 수순(隨順)함도 보살의 할 일일 것입니다. 더욱이 밤은 깊고 계곡은 깊으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4
“촌장(村長) 어른, 저기 백월산의 무등곡에서 기이하게도 금빛 광명이 하늘에 서려 있고 사향 냄새가 마을에까지 진동하는군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래? 그렇다면 필시 도를 닦으시는 그 두 스님들의 공부가 성취된 것일 게다. 어서 가보지.”
산 아래 촌민(村民)들이 다투어서 산을 올라가보니, 과연 부득스님이 여꽃 좌대에 앉아 계신데, 금빛 광명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 어이 된 일입니까?”
“마음 밖의 어떠한 경계도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며, 내 마음 속의 번뇌만이 경계에 집착하는 것일세. 어젯밤 한 여자가 찾아와서 재워달라기에 그 청(請)을 들어주었더니, 그녀가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네.”
“아, 그래서 스님은 미륵존불을 염한 공덕으로 아예 스스로 미륵부처가 된 것이로군요.”
빙그레 미소하시는 부득스님, 아니 미륵부처님. 이때 헐레벌떡 달려온 박박스님이 놀라며 물었다.
“부득, 자네 어젯밤 아무 일 없었나?”
“있었지. 나는 미륵부처가 되었지.”
“아니, 어떻게 하여 그리 되었나? 우리 옛날 약속하지 않았던가? 서로 구제해 주기로.”
“물론이지. 잘 듣게나, 박박. 그리고 여러분.”
“……”

“자기를 위해 중생을 외면함은 닫힌 마음의 소승이요, 자기를 희생할지라도 중생을 위하는 것은 열린 마음의 대승이라.
그러므로, 알라. 다딘 마음의 소승으로는 성불할 수 없으니 열린 마음의 보살이 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