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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속에서 살아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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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2년 08월 366호

세계란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성의 선택은 이런 세계를 구성하는 개개인에게 어느 정도 위탁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택시 안에서

택시요금을 내려고 조수석 왼쪽 바닥에 놓았던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연다. 장지갑이 세로로 서 있다. 살면서 지갑이 서 있는 것은 처음이다. 언제나 나는 지갑을 가방의 제일 밑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필통을 놓고, 또 그 위에 안경집을 놓는다. 더구나 오늘은 강연 자료집을 둥글게 말아 싸 놓았기에 지갑이 가방 안에서 서 있는 것이 마술 같았다. “야, 지갑이 세로로 서 있네! 재밌다.” 혼자 오래 살다보면 남들이 속으로 하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습관이 생긴다. 여태까지 갖은 수다를 떨던 운전사가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2. 집 안에서

참 긴 하루였다. 하루를 끝내는 의식의 절차 중 첫 번째로 가방 안을 정리하려고 가방을 뒤집었는데, 필통이 없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내가 어디서 필통을 잃어버렸나를 냉정하게 점검해 보지만, 가방 안에 넣고 ‘있음’을 확인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필통을 돈과 각종 카드와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만큼 소중하게 다룬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 선물이 아닌 척 “나는 이런 거 쓸 일 없다. 너 써라.”하면서 주신 S사의 좋은 만년필과 M사의 아주 좋은 볼펜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필통도 L사의 매우 좋은 가죽 제품이다. 말과 글로 사는 사람인 나는 필기구에는 사치를 하는 편이다. 나는 아무리 하루의 궤적을 추적해도 결단코 필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제야 장지갑이 서 있는 것이 실마리가 되어 택시와 택시 기사에게 가졌던 조각난 퍼즐과도 같은 그림들이 하나하나 맞추어지게 되었다. 나는 필통을 도둑맞은 것이었다. 뉴스에서 많이 보았던 사건의 한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기억 안에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억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논리적으로 끼어 맞추고, 분석하기 시작 했다.

첫 번째 기억: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토요일 밤, 빈 택시를 잡을 길이 안 보였다. 정동에서 시청 앞을 지나 한국은행 앞에까지 걸어와서야, 비 내리는 검은 거리에서 하얗게 빛나는, 지붕 위 꼭지가 반짝이는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동행한 선배 언니가 먼저 내려야해서 나는 앞자리의 문을 열었다. 그 때, 내 눈은 택시에 관한 그림을 카메라처럼 찍었다, 문짝에 아무런 글씨도 문양도 없이 차체가 그냥 하얗다는 것을. 택시라면 당연히 써 있어야할 운수 회사 표시도, 개인택시 표시도 없었다. 마치 자가용 같았다.

두 번째 기억: 앞자리에 앉아 가방을 운전석 쪽 바닥에 놓았다. 너무 지쳐 있어서 자그마한 가방조차도 무거웠다. 게다가 나는 내가 운전을 하지 않을 때는, 차멀미를 해서 몸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어야 했다. 언니가 행선지를 말하는 동안 나는 택시안의 면허증을 흘끗 보았다. 개인택시의 등록증이 붙어 있었다. 행선지를 주고받자마자 길이 막힌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표준어를 구사하고는 있었지만 말투에서 연변 억양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개인택시데 연변 말투의 운전사지?’ 다시 내 눈은 택시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개인택시라면 의례히 있어야할 가, 나, 다 중 어느 표시도 없었다. ‘그럼 이 택시는 언제 쉬지?’ 의아했지만 의심의 마음은 들지 않았다. 꽉 막혔던 소공동 사거리를 지나 어느덧 남산 터널을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을 험하게 했다. 속이 약간 미식 거렸다. 용산에서 언니는 “우리 공주님, 잘 데려다 주세요.”하면서 내렸다. 언니가 간혹 장난삼아 나를 “공주님”이라고 불렀지만 낯선 사람에게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처음이었다. 다시 출발을 하면서 운전사는 뽕짝을 귀가 찢어져라 싶게 틀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 번째 기억: 내 눈은 나도 모르게 택시의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지를 확인한다. 문은 수동이었다. 마음 한 쪽에서 ‘다행이다.’라고 한다. 그러다 ‘내가 왜 이러지?’한다. 이내 내 앞에 있는 등록증의 이름 000과 03-85**…을 나도 모르게 외우고 있는 것을 알고 내가 놀란다. ‘이걸 외워서 어쩌려고, 가짜면 소용도 없는데.’라고 마음이 말을 한다. 드디어 나는 의식적으로 의지를 내어, 눈길을 약간 돌려, 등록증 사진의 얼굴과 내 옆에 앉아 있는 기사의 얼굴을 대조했다. 사진의 얼굴과 다른 사람이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남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사건일 수도 있겠다. 또는 다른 이들에게는 달리는 택시 문을 열어 제치고 죽든 살든 한판 붙을 만한 일 수도 있겠다. 예전의 나도 그랬었다. 대학교 때, 한창 운행 중이던 택시의 뒷좌석에서 머리가 부스스한 남자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다 싶어서 달리는 택시 문을 열고 울고불고 했었다. 사실은 운전기사 아저씨가 술을 마셔 친구가 대신 운전을 해주고 있었단다. 그때 아저씨들은 미안하다면서 택시요금도 받지 않았던 살벌하지만 코믹했던 추억이 있었기에, ‘이 아저씨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싶었다. 마음에는 한 점의 불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사실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도 기억을 더듬으면서 안 것이지 그 때의 내 마음은 철저하게 내가 빠진 사실만을 기술할 뿐이었다. ‘얼굴이 다르다.’ 그게 다였다. 내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안 그는 옆으로 나를 보았다. 남에게 부탁을 할 때 그렇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저, 라디오 볼륨 좀 낮춰 주시겠어요.”라고 했다. 그가 아예 라디오를 껐다. “감사합니다.” 나는 좀 더 깊게 의자에 앉았다. ‘참 이상한 밤이야. 하지만 평온해.’

네 번째의 기억과 추측: 음악을 껐지만 그는 사람의 혼을 빼놓기로 작정한 듯이 큰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세빛둥둥섬이 보이자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전 서울 시장의 욕을 크게 해 대었다. 욕이라는 것은 이상해서 내가 함께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남을 향한 욕도 나에게 향해지는 것 같다. 상스런 욕에 귀를 닫고 싶어서 흉측한 인공섬만 출창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 때 그의 오른손이 내 가방 안으로 들어 왔던 것 같다. 지갑 위에 있었던 가죽 필통을 먼저 꺼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아는 곳에 갈 땐, 택시요금을 꺼내는 지점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강북에서 반포의 어머니 집을 갈 때는 반포대교 남단에서 택시요금을 넉넉하게 꺼내 손에 쥐고 있다가 잔돈을 받지 않고 다 낸다. 강박증이 오늘은 나를 도왔다. 그가 지갑을 왼쪽 구석으로 몰아 세워 빼어나려는 순간이 내가 요금을 준비하는 즈음이던 것 같다. 드디어 발 옆에 놓았던 가방에 시선을 주었고, 내 무릎에 올렸던 것이다. 그리곤 서 있는 지갑이 신기해서 아무 먹은 마음 없이 “야, 지갑이 세로로 서 있네! 재밌다.”하고 감탄했던 것이다.

4. 기도 안에서

오늘 저는 관 속에서 살아 돌아온 것 같습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 돌아올 때는 어딘가에 감춰진 이 세계의 심장에서 오는 빛을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는지를,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를 지옥에서 가지고 나온 것 같습니다. 엄습해 오는 외부의 운명을 향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운명을 향해서 마음을 칼처럼 벼리는 것이 진실이 된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배웠습니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다 ‘오늘’이라는 지점에서 스쳐간 그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도 그 때 저와 같이 관 속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딸의 그리움이 담겨있는 필기구가 그의 손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관 속에서 사랑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빕니다. 그의 얕은 마음은 꿈을 쫒아 흔들리고, 악몽을 피해 도망치지만, 그의 깊은 마음은 사랑으로 세워지기를 빕니다. 그곳에 진정한 의미의 닻을 내리기를 빕니다.
오늘은 그와 제가 위험한 나라에서 검은 거리에서 만나 서로 모질게 헤어졌지만, 내일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마주보고 좋아서 웃기만”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