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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카우치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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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유라시카 만행 - 원제스님 2012년 08월 366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스님이 세계 만행을 하실 거라면 카우치서핑을 이용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해인사로 걸어 오르는 중간에 위치한 밝달 커피숍에서 우연찮게 만난 스티브와 베써니는 카우치서핑을 추천했다. 세계 만행을 계획하였지만 자금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 어떻게 하면 경비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현지인들에게서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희소식이었다.
간단하게 카우치서핑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말 그대로 좁고 길다란 의자를 뜻하는 Couch를 파도 타듯이 Surfing한다는 말인데, 이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최소한의 형태로서의 잠자리인 카우치를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비영리 커뮤니티의 이름이다. 카우치서핑의 기원은 보스턴의 케이지 펜튼이라는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가기 전에 여행경비 절약을 위해 1,500명의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학생들에게 자신을 재워줄 있는지의 문의 메일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50여통의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고 여행을 마친 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카우치서핑을 프로그램화하기 시작했다.
카우치서핑이 현지의 집 주인인 호스트가 여행객인 서퍼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시작된 커뮤니티지만 단순히 여행경비를 줄이는 차원으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호스트와 서퍼가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국제적인 교류망을 구축하고 서로의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세계적인 소통을 추구한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현지에서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돈을 소비하는 관광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들과의 대화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교류인 셈이다.
2011년 12월에 카우치서핑에 가입한 이후로, 나는 호스트 자격으로서 해인사와 수도암에서 지금까지 10명 정도의 외국인을 한국의 사찰로 받아들였다. 쿠왈라룸프에서 사회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갤 리나드로부터 시작해서,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으면서 전 세계 불교 수행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덴마크 출신의 브라이언까지 지역과 출신, 직업이 모두들 남다른 사람들 이었다. 그들에게 절집의 방을 내어주고 적당한 산행을 함께 했다. 시간이 허락되는 한도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절집과 수행에 관한, 그리고 그들의 삶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절은 본래 내 영역이었기에 거리낄 것도 어려울 것도 없이 그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9월부터 시작될 유라시카 만행을 실행하기에 앞서서 일본 만행은 하안거 들어가기 이전에 가질 수 있는 가벼운 워밍업이었고 또한 서퍼의 입장에서 카우치서핑의 첫 시험장이었다. 도쿄에서의 카우치서핑은 유지 우에다 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호스트를 구할 적에 내 나름대로 정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우선이었다. 혼자서 개인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보다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 그 나라의 가족의 전반적인 모습을 경험해 보고픈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호스트로 택하게 된 유지 우에다 상과 그의 아내 도모카, 그리고 그들의 딸 노아가 같이 사는 가정은 최선의 기회였다.
도쿄의 아사쿠사 거리를 거닐고 우에다 상이 거주하는 도쿄의 시나가와 씨싸이드까지 우여곡절 끝에 약속한 시간보다 약 15분 가량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아이를 안고 나온 우에다 상은 밝은 미소로 이번 일본 만행에 동행한 도반 숭전 스님과 나를 반겨주었다. 사실 카우치서핑을 통해서 메시지를 보내던 중에 우에다 상은 우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원하는 종류의 음식이 있는지 물어왔었다. 카우치서핑을 경험하면서 집 주인인 호스트가 여행자인 서퍼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호의가 때때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되도록 채식 중심으로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보냈었다. 우에다 상은 저녁 8시나 9시가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직장인들의 삶이 너무 일에 몰두된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의 기사를 뉴스를 통해 틈틈이 보고 있던 와중에 도쿄의 대부분 직장인들의 삶은 한국보다 더 심한 워커홀릭처럼 느껴졌다.
도모카는 그의 남편과 우리들의 저녁 식사를 위해 위해서 야채 덴뿌라와 야채 볶음밥, 미소수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해 놓았다. 첫 만남에 너무 황송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음식을 본 순간, 겸연쩍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우리는 거실에서 차를 함께 했다. 서퍼로서 단순히 무료로 숙박을 제공받는 것만이 아니라 호스트에게 다른 종류의 호의로 답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기에, 내가 생각해서 준비한 것이 바로 한국에서의 녹차였다. 한국에서 이용하는 다구로 제대로 된 맛을 우려낼 수 없어서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끄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유지 우에다 상은 일본에서 벤쳐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였다. DAUM과의 협력 사업을 위해서 한국 사람들과의 몇 차례 교류 경험도 있었다. 도모카는 벤처 회사의 여직원 이었지만 우에다 상과 결혼한 뒤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의 아내가 되어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현재 도모카는 아파트의 주부들에게 꽃꽂이를 가르치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불교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할당된 지면 때문에 그들에 대한 많은 소개를 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단지 그들을 소개하지 못함이 아니라, 그들과의 지낼 수 있었던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기도 했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원제 스님의 블로그 - http://blog.naver.com/monkwon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