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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승가대학 학감 진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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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2년 08월 366호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운문호雲門湖를 끼고 돈다. 저 고요함에 누가 될까싶어 모쪼록 입을 다문다. 저 고요의 어디쯤이 내가 가야 할 곳이라면 왜 저토록 미지일까 싶어 막막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방향으로 향하고는 있으니 이 한 걸음을 위안을 삼는다. 그러니 구름 문안에 발을 들여 이제 막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기 시작한 앳된 스님들의 걸음을 쫓으니 또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저만치 학인 스님들 사이에서 진광 스님이 반가이 걸어오신다. 수 해 전 스님과 함께 바라본 운문사 밤하늘의 별들과 스님이 불러주시던 노래가 그리웠던지라 두 손을 부여잡고 그간의 안부부터 여쭙는다.
“미얀마에 다녀왔어요. 걸음이 날아가듯이 가벼워졌지요.”
박사 논문을 마치고 몸과 마음이 지쳐 고갈되어 있던 때였다. 발심 출가의 동기였던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분自無半錢分, 하루 종일 다른 이의 보배만 헤아리지 내 것은 반 푼어치도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처음 발심했을 때, 참선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다던 신심과 간절함이 그리웠다. 다행히 사중의 배려로 일년 간의 휴식을 얻어 스님은 미얀마로 향했다. 남방불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그곳에 가면 부처님 당시처럼 수행을 한다기에 그저 향한 걸음이다. 스님은 양곤에서도 차로 열 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파욱에 있는 숲 속 사원의 작은 오두막에서 사마타 수행을 하며 머물렀다. 그곳에서 스님은 맨발에 가사를 수하고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을 챙기는 아나빠나 사띠의 선정수행을 했다. 철저하게 오후불식을 하며 묵언을 하기 위해 가슴에는 ‘Noble Silence\'라는 명찰을 달았다.
“내가 그동안 학인 스님들에게 실천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말로만 했다는 부끄러움이 들었어요. 정말 고요해지고 싶었지요.”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한 출리出離였다. 만날 사람도 없고 말할 사람도 없고 기다릴 일도 없으니 침묵 속의 오롯한 고요만 있었다. 침묵이 주는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가득했다. 아침엔 죽을 먹고 점심에 탁발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시를 받았어요. 사과 반쪽, 작은 옷핀 한 개, 사탕 한 알, 꽃 한송이… 그런 것들이 미소와 함께 나에게 왔어요.”
가난한 나라의 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받은 보시는 스님이 수행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우기 안거를 마치고 스님은 양곤에서 다시 3개월 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고요해진 가운데 마음을 대상화시켜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스님은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마음이 무엇을 탐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평화로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가 고요해지니 거부하고 성내는 내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난 한 순간도 탐진치와 더불어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거죠.”
그것도 모른 채 지금껏 말하고 행동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런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스님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경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성격이 느긋해지고 학인들을 가르치는 데에도 힘이 생겼다. 일어나는 마음을 지켜보니 화내는 일도 없다. 중생이기에 탐진치와 늘 놀아나지만, 계속해서 마음을 지켜보니 그것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화라는 불덩이를 상대에게 던지려면 상대가 아프기 전에 내 손이 먼저 아픈 법이지요.”

진광 스님이 운문사 강원에서 학인스님을 가르친 것도 어느새 30여년이 됐다. 운문사로 출가해 지금껏, 잠시 나가 공부를 하던 시절 말고는 운문사를 떠나 본 적이 없다. 걸림 없이 떠도는 구름을 동경하며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던 스무 살 무렵의 스님은 세간의 문을 나와 구름 문에 들어섰고, 지금은 그 구름 문에 들어서는 학인스님들을 맞이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학인스님들이 강원에서 경전을 보는 뜻은 옛 거울에 오늘의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일상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광 스님은 늘 학인스님들에게, 부처님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잘 쓰는 것이라 하신다. 서로 지식을 쌓으려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며, 마음을 모나지 않게 둥근 거울처럼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경전의 글자만 알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알고 일상이 그러해야 할 것이란 말씀이다. 그래서 스님은 학인스님들에게 들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감동하고 감사하라 하신다. 눈을 떠서 저 산을 볼 수 있고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란 말씀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멀리에 있는 것도 멀리에 둘 것도 아니라 삶 속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했을 때, 유명한 글귀가 새겨진 책을 책장에 꽂아두거나
혼자 산꼭대기에서 고고하게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것들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만큼 공허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진광 스님은 벗할 수 있는 스승, 스승 삼을 수 있는 벗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선생이기보다 학인들과 같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길동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권위라는 더께도 없이 학인 스님들과 어우러진다. 그렇게 대중 속에서 살아온 것 자체가 스님을 성장시켰기에 그것이 공부의 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단다.
“학인들이 예불 드리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이들의 한 사람으로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참 고마워요.”
그런데도 스님은 학인들 앞에서 문득 절망한다.
“잘 차려진 밥상을 가져다 놓고 이것은 어디에 좋고 이것은 무슨 맛이라고 설명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선 그것을 먹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벗과 같은 스승이기에 갖는, 더 이상은 해 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속상함과 그 속수무책의 애정이리라. 소를 냇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스님은 학인 스님들에게 시를 읊어주고 노래를 불러 주신다. 한 줌 위로가 되라고.

스님은 시, 음악, 그림을 좋아한다. 어려서 남도에서 자라 그 흥취가 묻어 있기도 하겠거니와 훈장이셨던 아버지가 스님을 무릎에 앉히고 읊어주셨던 육자배기 자락이 스며 있기도 하겠지만, 스님은 예술적 체험과 종교적 체험이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종교인은 성스러움을 추구하지요.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가장 성스러운 것 같아요.”
예술가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고뇌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것은 수행자와 많은 부분 닮아 있다. 그래서 스님은 예술가와의 소통이 즐겁다. 그러다보니 스님은 예술을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예술가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석사과정에서 미학미술사를 공부하다보니 예술에 대해 더 깊어지고 삶의 시야는 더 넓어졌다.
“수행자이긴 하지만 아직은 성숙되지 않아서 가끔은 마음을 위로받고 평화로워 질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염불이 아닌 동요가 흥얼거려지기도 하는데, 스님이니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하려고 해요. 그것에 위로받는 것이지 빠져드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수행이 잘 되면 그런 것도 필요 없겠죠. 수행의 즐거움이 훨씬 크니까.”
스님은 늘 행복해 보이신다고 말씀 건네니, 실제로 행복하다며 맑게 웃으신다. 눈을 뜨면 무엇이 그리도 행복하신가 여쭙는다. 그러자 학인들과 새벽 별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새벽마다 줄 맞춰 예불하고 땀 흘려 백팔 배 하니 행복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독경하고 고요히 앉아 자신을 살피니 행복하고 누군가를 찬탄하고 나를 굽혀 참회하니 행복하고 학인들과 경전 보니 행복하고 여법한 공양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단다. 다시 요약해 말하자면 스님에게 있어 행복 아닌 것이 없단 말씀이다.
“여행 가고 싶을 때 걸망 하나 짊어지면 갈 수 있고 책 사볼 수 있을 정도의 돈은 있으니 행복하지요.”
그러니 여쭙는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인들의 삶은 그렇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난 이 출세간도 깨닫기 전에는 또 하나의 세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삶이 옳고 누구의 삶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요.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할 때 행복할 테니까요.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한가요?”
스님과 말씀을 나누다 보니 저녁 공양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어찌하면 좋을지 여쭈니, 텅 비우라 하신다. 몸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라 하신다. 그러면 생의 걸음이 날아가듯이 가벼워진단다. 그러면서 스님은 건강하게 사는 비법을 슬쩍 일러주신다. 음식 적게, 말 적게!
“무욕無欲은 대욕大欲이란 말이 있지요. 욕심이 없을 때 가장 행복한데 또 그것만큼 큰 욕심이 어디 있겠어요.”
어둑어둑해지는 구름 문 안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스님과 극락교를 건넌다. 텅 빈 숲길을 고요히 발밤발밤 걷는다. 텅 비우니 참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