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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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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3월 73호
연합군 비행기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면서 날아들었다. 폭격이 끊이지 않았다.
예배당은 할머니 몇 분만이 나오고 거의 빈자리인 채 예배를 드렸다. 아이들도 모이지 않고 주일학교 선생님들도 의용군으로 나갔다. 목사님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다만 강대상 아래 꿇어 엎드려 길게 눈물로 기도할 뿐이었다.

장 대성 목사님은 성실하고 착한 목사님이었다. 이제 쉰살을 넘긴 목사님은 슬하에 자식이 없이 사모님과 두 식구만으로 살고 있었다. 딸이 하나 있었지만 아홉살 때 장질부사로 죽어 버렸다.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난하게 교회를 지키며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인민해방군이라 부르는 공산당과 맞선다는 것은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사모님은 몹시 걱정이 되어 아침 밥상 앞에서 말씀드렸다.
“여보, 지금이라도 그만 남쪽으로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하나님이 맡기신 양떼를 버리고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요!”
목사님은 언제나처럼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떼는 모두 교회를 떠나고 있지 않아요. 이젠 몇분 할머니들도 다음 주일날엔 못 나오실 거라고 합디다.”
“말세가 된 거요. 이젠 세상이 끝났소. 그러나 깨어 일어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을 거요.”
“죽은 다음의 구원이야 하나님이 선택하는 일이지만 우리 할 일은 우리가 해야지요.”
“그러니까 정신을 차려 기도할 뿐이요. 우리가 할 일은 그것뿐이오.”
“아니에요. 기도만으로는 안 되어요. 해방군들은 쉴 새없이 일하고 있어요.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토지를 나누고 있어요.”
“……”
“그들은 모두 한 형제가 되었어요. 대장도 부하도 상전도 하인도 없어요. 누구나 동무라고 불러요…”
“시끄럽소! 당신도 단단히 물이 들었구려.”
강 목사님은 정말 전에 없던 화를 내고 말았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건 정말이니까요.”
“성경 말씀에도 있지 않소? 본래 사탄은 양의 옷을 입고와서 백성을 속인다고 했소.”
“저 보기엔 거짓으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만, 그만 닥치시오!”
목사님은 숱가락을 밥상 위에 내리치듯이 놓고는 일어나 버렸다. 검푸른 물푸레 조밥 그릇이 그대로 남아서 밥상 위에 얹혀 있었다. 사모님은 끝내 훌쩍거렸다. 눈물을 홈치며 밥상을 치웠다.
바깥 예배당 둘레의 낙엽송은 오늘따라 푸르게 뻗어 있고 하늘이 맑았다. 사모님은 물동이를 이고 향나무가 있는 우물로 갔다. 두레박으로 물을 걸어올리면서, 한없이 길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을 들여다보며 또 울었다.
예배당 안에서는 목사님의 기도소리가 더욱 기슴아프게 들려왔다.
‘주여! 어찌하여야만 합니까?’
사모님은 찔끔 솟아나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눌러 닦았다.
건너편 국민학교에서는 우렁찬 소리로 아이들이 인민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철없이 몰려다니며 즐거워했다. 점득이도 판순이도 모두 공산당 어린이가 되었다. 인민군들의 휴식시간이면 함께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수건돌리기 놀이도 했다.
많은 군인들 앞에서 판순이는 혼자 나가 노래를 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 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인민군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판순이는 알고 있는 노래는 아무 것이나 다 불렀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 아 이슬 같이 죽겠노라…”
하는 토벌대 군가도 불렀다. 그래도 인민군들은 잘 한다고 추켜주었다.
점득이는 교회에서 배운 찬송가도 부르고 학교에서 배운 동요도 불렀다. 점득이의 맑고 깨끗한 노랫소리는 인민군들의 가슴 깊은 데까지 파고 들어 고향집 식구들을 생각하게 했다. 김 세진이라 부르는 인민군은 점득이를 따로 불러놓고 이야기했다. 미류나무 그늘이 드리운 냇가 풀밭에 앉아 김 세진 인민군은 점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점득이는 나중에 크면 훌륭한 음악가가 될 거야. 목소리가 아주 좋은 걸.”
“판순이보다 제가 노래를 더 잘 부르나요?”
점득이는 가슴이 퉁퉁 뛰도록 즐거웠다.
“판순이도 잘 부르지만 그 앤 목소리가 너무 거칠구나.”
“아저씬 음악 같은 것 잘 아셔요?”
“그래, 하지만 나는 재주가 모자라 성공하지 못했단다.”
‘풍금 칠 줄 아셔요?”
“조금은 알지.”
“그럼, 피아노도 쳐 보셨어요?”
“그래, 쳐 봤지.”
“야! 그럼 아저씨는 우리 학교 오 순금 선생님보다 낫다.”
“오 순금 선생님이라니?”
“4학년 여선생님이에요. 노래도 잘 부르고 풍금도 잘 치셔요.”
“얼굴도 예쁘니?”
“예뻐요. 모두 그러는데 달덩이 같다고 해요.”
“마음씨는?”
“마음씨도 아주 좋아요. 언제나 방글방글 웃거든요.”
“시집가셨니?”
“아직 시집 안 갔어요. 올 봄에 사범학교를 금방 졸업했거든요.”
“집이 어디 있니?”
“집은 서울이고, 혼자서 여기 와서 살았어요.”
“지금도 여기 있니?”
“아니에요. 전쟁이 났다니까 얼른 서울로 가셨어요. 아마 돌아올 거에요… 그런데, 아저씨는 왜 자꾸 캐 물으셔요?”
점득이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물으니까 김 세진 인민군은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했다.
“아냐, 그냥 피아노를 잘 친다니까 물어본 거야”
“아저씨, 장가 가셨어요?”
“아직 총각이야.”
김 세진 인민군은 얼굴을 또 붉혔다.
“우리 외갓집 승호 형도 장가도 안 가고 해방군으로 나갔어요.”
“승호 형이라니?”
갑자기 김 세진 인민군이 정색이 되었다.
“우리 외갓집 형이라니까요. 해방군이 되어 집을 나갔거든요. 벌써 3년도 더 되어요. 그래서 외숙모님은 걱정을 해서 병이 드셨어요. 토벌대가 참으러 다녔어요.”
“그럼, 잡혀갔단 말이니?”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요. 소식이 없어요.”
“그렇담 형은 어디선가 살고 있겠지. 인민 해방을 위해 우리처럼 싸우고 있을 거야.”
“승호 형하고 아저씨하고 같은 해방군이어요?”
점득이는 그 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같은 거야. 하지만 너희 형은 더 훌륭한 해방군이다.”
“정말이어요?”
점득이는 어깨가 우쭐해지고 목안이 뜨거워졌다. 승호 형이 훌륭하다는 말은 참으로 기분좋은 일이었다.
“자, 이젠 쉬는 시간이 다 되었다. 가서 일을 해야지.”
김 세진 인민군은 일어나 점득이 손을 꼭 쥐었다가는 부대 쪽으로 달려갔다.
인민군들은 남쪽 끄트머리까지 내려가 남쪽땅을 모두 해방구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8월이 다 가도록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모과나무골에 정말 무서운 전쟁이 닥친 것은 9월 중순이 지나고부터였다.
싸움터에서는 물자도 달리고 사람도 모자란다고 했다. 많은 인민군이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 모과나무골 사람들도 장터 마을 사람들도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 속에서 외갓집 승숙이 누나가 여자 인민군으로 나갔다. 승숙이는 승호 오빠의 뒤를 따라 인민 해방을 위해 스스로 나간다고 했지만 억지로 끌려나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외숙모는 안 된다고 한사코 말렸다.
“승숙아, 네가 가버리면 에미는 누구랑 의지하고 사니?”
“어머니, 승기가 어머니 돌봐주실 거에요. 제가 나가서 인민 해방에 이바지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어머니가 이렇게 병이 드신 것도 모두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 까닭이에요. 승호 오빠랑 함께 꼭 승리해서 돌아오겠어요.”
그러나 승숙이 누나가 헐렁한 인민군 군복을 입고 붉은인민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전쟁터로 나간 다음 날, 장터 마을에는 하늘과 땅이 온통 불바다가 된 폭격이 있었다. 학교가 불에 타고 면사무소도, 정미소도 예배당도 불에 타버렸다.
목사님은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큰소리에 강대상 밑에 쭈구리고 앉았던 몸이 저절로 퉁겨져 일어났다. 땅이 뒤집혀진다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목사님은 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재빨리 움직여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보!”
찔레덩굴이 우거진 모퉁이 담밑에서 사모님이 부르고 있었다.
“주여!”
목사님은 울음소리처럼 대답하는 뜻으로 주님을 불렀다. 그러고는 허둥대는 걸음으로 사모님 곁으로 뛰어갔다. 둘은 손에 손을 잡고 언덕 밑 달구지길로 내려가 되도록 불길을 피해 달아났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어둠이 깔리자 사방에서 솟아나는 불길이 성경책에서 말한 지옥불 같았다. 지붕이 무너져내리고 시뻘겋게 불길이 솟았다가 다시 시커먼 연기가 불쑥 뭉쳐오르기도 했다.
목사님은 바깥 들판으로 사모님과 함께 달아녔다. 신작로가 저만치 보이는 개울둑킬까지 왔을 때였다. 갑자기 세 사람의 인민군이 목사님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직은 땅거미가 어렴풋한 들길이어서 상대방의 얼굴을 분명히 알아볼 수있었다.
“장 목사님,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목사님은 얼굴과 목소리가 낯설지 않는 인민군이어서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불길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 중이오.”
“어쨌든 저쪽으로 가서 봅시다.”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인민군이 목사님께 다가가 양팔을 뒤로 돌려 두어 발쯤 되는 전선줄로 손목을 비끄러매는 것이었다.
“어서 끌고 갓!”
“왜 이러시오!?”
사모님이 놀라 인민군의 손에 매달렸다.
“저리 비키시오.”
한 사람의 인민군이 총을 사모님 가슴에 바짝 들이대었다. 사모님은 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선 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의 인민군은 목사님을 끌고 강둑을 지나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다리 밑 구석으로 목사님을 팽개치듯이 밀어다 부치고는 아까 사모님께 총구멍을 들이대듯이 목사님 기슴에다 총을 들이대었다.
“미국앞잡이 노릇을 하는 당신 같은 반동은 죽어야 하오.”
“하나님……!”
목사님은 간신히 중얼거리듯 말하며 눈을 감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되었소. 당신의 하나님을 모신 교회도 불에 타고 있소. 그래도 당신은 인민을 위해, 그들의 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오!”
“……하나님……!”
“목사님은 정직하고 가난하고 신심이 깊은 분으로 그 동안 우리는 존경하고 있었소. 적어도 목사님의 사람됨은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을 위하는 길을 모르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결국 못된 미국이란 나라에 도움을 주고 조선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인민이 버림받게 된 것이오.”
“……주여!……주여……!”
목사님은 줄곧 눈을 감고 안타깝게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적이 우리를 포위해 오고 있소. 목사님은 어리석었읍니다. 그러니까 인민을 위해 이제는 더 살려두지 못하겠소.”
두 사람의 인민군이 나란히 서서 목사님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 때였다.
저쪽 강둑에서 누군가 쏟살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안 됩니다! 쏘지 마셔요!”
헐떡거리며 큰소리로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낯익은 목소리였다.
“목사님!”
가까이 달려온 여인은 덮치듯이 목사님을 끌어안았다. 목사님은 놀라왔다. 완전히 인민군복으로 몸을 싼 여자는 다름아닌 탄실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