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나한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내처 계속 해야겠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로 범어의 Arahat의 음역이다. 아라한은 수행을 통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어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얻은 성자聖者로서 모두에게 공양을 받을만하다 하여 응공應供이라고도 한다. 《남전대장경》 율장에는 석가여래께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베푸시니 이 분들이 그 자리에서 모두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고, 그래서 세상에는 여섯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을 후에 불佛아라한인 석가여래는 불보佛寶요, 나머지 다섯 아라한은 승보僧寶로 구분하긴 하였지만 어쨌든 깨달은 성자를 일컬을 때 아라한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명호 중에 여래如來 다음으로 응공應供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 와서 진리를 보여주시고 깨달음에 도달하여 중생에게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아라한은 수행의 마지막에 가장 높이 달성하게 되는 위치를 보여주는 명칭인 것이다. 부처님도 아라한이고, 부처님의 십대제자도 아라한이며, 불멸 후 칠엽굴에서 경전을 결집하려 모인 분들도 아라한이었다.
하지만 대승불교가 주류를 형성하는 흐름 속에서 깨달음의 가부로만 구분되던 나한은 소승小乘의 성자로 낮게 평가되기도 하였다. 스스로의 수행과 깨달음의 완성을 우선시 한 나한의 모습은 중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대승적 견지에서는 적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나한의 존재가 세상에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당나라 때로 현장玄奘법사가 《대아라한난제말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약칭으로 법주기)를 번역하여 유포된 이후로 알려져 있다. 이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에도 16인의 아라한은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르며 각지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면서 대가섭大迦葉, 군도발탄君屠鉢歎, 빈두로賓頭盧, 나운羅云의 네 아라한이 법의 수호를 부촉받았다고 하며, 이들 네 비구가 십육 아라한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무튼 《법주기》의 십육아라한은 더 이상 소승의 성자가 아닌 정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보호하고 제도하는 대승의 보살과 같은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중생들이 재齋를 열거나 사찰寺刹, 상像, 보당寶幢 등의 공양불사를 하게되면 십육대아라한이 이들에게 큰 과보를 얻게 하고 미륵부처님의 세상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열반에 들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像으로 나한을 그리고 조성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때부터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몇몇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이미 나한의 모습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정확한 작품의 예는 전해지지 않고, 황휴복黃休復의 《익주명화록益州名畵錄》(1006)에는 당나라 말기에 활동했던 나한도로 유명한 화가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나한신앙의 유행에 큰 공헌을 한 화가이자 스님은 선월禪月대사 관휴(貫休, 832~912)이다. 관휴가 그린 십육 나한도는 특히 영험하여 크게 유행하였고, 이 그림의 모사본이 이후 송宋대가 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고 전한다. 선월대사 관휴는 꿈에서 본 나한을 그렸다고 하는데, “높은 눈썹과 큰 눈(방미대목,龐眉大目), 서역적인 용모의 인도인(호모범상胡貌梵相)”으로 표현되어 그때까지 오리무중이던 나한의 풍모가 이후 깔끔하게 정리되어 전해졌다. 일본 코다이지에는 관휴 스님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십육나한상이 소장되어 있는데, 관휴 스님이 활동하던 당말 오대의 그림은 아니고 남송의 그림으로 보고 있다. 한 눈에도 ‘방미대목 호모범상’의 나한을 알 수 있는 이 작품만 보더라도 관휴 스님이 그렸다는 십육나한은 이후 나한도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