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나는 늙은 개 한 마리의 부고 편지를 받았다.
2.
나는 준호를 독일에서 2000년 추석날 처음 만났다. 그 때 나는 벌써 30대 아줌마였지만, 준호는 10대의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 과정) 학생이었다. 어린 유학생인 준호는 또래의 교포들보다는 나이 많은 유학생인 나와 내 친구들과 한결 잘 통했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지내는 준호가 안쓰러워 주말 모임에 초대를 했고, 그는 이모나 삼촌뻘의 우리를 형, 누나하면서 잘 따랐다.
준호는 우리를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자기네 집에서 낳고, 기르고 퍼뜨린 개 이야기만을 했다. 우리가 애를 써서 화제를 돌려놓아도 ‘금동’이가 ‘은동’이를 낳고, ‘은동’이가 ‘동동’이를 낳은 종가 3대와 방계에 걸친 온갖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나왔다. 슬슬 내 친구들은 준호를 버거워 했다. 하지만 나는 준호가 좋았다. 개건 사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무엇인가에 대해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더구나 준호는 말을 맛깔나게 했기에 그의 개 이야기는 ‘견공열전’ 내지는 ‘견공 삼대’로 엮어내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내 집이 모임의 장소가 되는 날에는 준호를 먼저 꼭 불렀다. 같이 점심도 먹고 장도 보고 하면서 이런 애기 저런 애기를 나누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준호와 함께 장을 보았다.
“누나, 어제 진짜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은동이가 집을 떠나 살림을 차렸데요.”
은동이는 일처종사를 했던 그의 아버지 금동이와는 정반대로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토실토실한 윤기 흐르는 몸으로 나갔다가, 달포쯤 지나 앙상하게 말라붙은 몸에 수세미 털을 늘어뜨리고 돌아오곤 한단다. 다시 몸을 회복하기가 무섭게 향락과 방탕의 삶을 즐기려 뛰쳐나간단다. 그 카사노바가 동네 한 암캐에게 순정을 바쳐 아예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집 아주머니가 준호의 아버지를 찾아와 은동이를 아무리 쫓아내도 다시 오고, 무엇보다도 은동이가 없으면 자기네 개가 식음을 전폐하니 같이 기르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단다.
“그런데 준호야, 너는 왜 개 이야기 밖에 안 해?”
“그럼 내가 다른 얘기해줄까? 누나. 이렇게 계산대 앞, 긴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마다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야, 너도 그래? 나는 은행 직원이 패티큐어한 손을 독수리 발처럼 펴서 자판을 한 자 한 자 치는 것 보면, 손톱을 뽑아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게 하고 싶어.”
내가 웃자 준호도 따라 웃었다. 나는 그의 블랙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그 때, 난 그 아이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다.
1년 후 어느 날, 준호는 긴 줄에서 서서 ‘기다린 것’이 자기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인 것을 깨달았다. 그 날 그는 ‘기다림’이 어떤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 아파서 절규가 입 밖으로 나올 뻔 했다. 하지만 자제력이 뛰어난 그는 입술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고통을 삼켰다. 준호는 심리 치료를 받은 지 몇 번 안돼서 알게 되었다. 왜 그에게는 기다림이 고통인지를. 왜 그는 개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지를.
준호에게는 한동안 어머니가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전혀 알 수 없었던 꿈을 찾아 이 세상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와 형, 누이는 사랑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준호의 형은 밤늦도록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다가 들어왔다. 그의 누이는 자기 방을 닫아걸고 책만 읽어 대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일매일 술을 마시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준호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사실만을 말했다. 그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준호에게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앗아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준호에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들게 했다. 준호에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되었다.
준호는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을 매일매일 기다렸다. 채워지지 않았던 기다림은 그의 가슴속에 검은 구멍을 만들었다. 저녁이 오면 그 곳으로 슬픔이 스미어 들었다. 붉은 저녁노을도 말릴 수 없는 슬픔의 강이 작은 가슴 속에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대문 밖 계단에 앉아 아무나 기다리고 있을 때, 강아지 은동이가 뒤뚱뒤뚱 문지방을 넘어 나왔다. 준호는 은동이를 들어 명치끝에 갖다 대었다. 동그란 하얀 강아지가 품 안으로 들어 검은 구멍을 메워 주었다.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슬픔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준호는 은동이에게서 사랑을 찾았다. 준호가 사람들과 나눈 말은 명령과 지시와 순응과 복종, 아니면 저항의 말이었다. ‘시’가 사라진 언어는 그대로 폭력이 되었다. 준호는 은동이와 ‘시’처럼 이야기 했다. 보이지 않는 느낌이 숨어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축축한 혀로 그의 뺨을 핥아 주었다. 차마 말 할 수 없는 원망은 거친 숨을 토해 내었다. 그래도 앞발을 무릎에 대고 귀를 쫑긋 세웠다. 몰래 가진 희망은 먼 곳을 보게 했다. 그러면 뜨거운 몸을 비벼 대었다. 준호는 사랑의 사각 지대에서, 우리가 업신여기는 사랑 속에서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갔던 것이다.
준호는 그 해 여름 방학, 낯선 삶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다녀왔다. 오자마자 은동이 이야기부터 했다.
“글쎄, 내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저녁 은동이가 왔어요. 그 천하의 바람둥이가 살림을 차린 뒤에는 지 자식, 동동이도 보러오지 않았는데, 준호를 보러 왔다고 가족들이 더 난리였어요. 그 자식을 덥석 앉아 얼굴을 막 비벼대는데 눈물이 흘렀어요. 은동이가 묻는 건지, 내가 대답을 하는 건지 ‘괞찮아?’ ‘괞찮아.’를 계속 말했지요. 그렇게 울고 나니 솔직히 나만 감격했지, 은동이는 우리가 언제 헤어지고 만났느냐는 둥 태연했어요. 곰탕 한 사발을 먹고, 같이 TV를 보다가, 1시간이나 지났나, 그 까만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더니 내손 한번 핥아 주고 가는 거 있죠. 서울에 있는 내내 그 날 한번 오곤 끝이에요. 왕년의 바람둥이답게 엄청 냉정해요. 난, 보고 싶었지만 이미 남의 집 개가 되어서 보러가기도 뭐하더라고요.”
3.
\"누나에게,
은동이가 오늘 죽었습니다.
일주일 전, 어떻게 앞을 보고 왔을까 싶은 눈먼 개, 무슨 힘으로 걸어왔을까 싶은 늙은 개 은동이가 예전에 우리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삶을 끝내려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은동이의 마지막을 함께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자기 집에서 혼자 조용히 갔습니다. 마음의 벼랑에서 작은 개 한 마리는 한 때 나의 어머니였고, 나의 아버지였고 나의 형제이자 누이였습니다. 은동이와 저 사이에 ‘사랑’이외에 어떤 말이 필요할까요? 어린 마음의 구멍을 하얀 몸둥이로 막은 은동이와 스스로 슬픔의 봉인을 뜯어낸 저의 모든 이야기가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까요?
은동이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느 사람도 가르쳐 주지 않은 삶의 비밀을 알려 주었습니다.
기적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