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여수 엑스포의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1)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2년 07월 365호

지난달에는 오랜만에 신나는 취재의뢰가 들어왔다. 뉴욕타임즈 여행 섹션에서 여수 엑스포에 대한 기사를 실을 예정이라 사진취재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엑스포 자체도 처음 가보는 것이지만 여수도 처음이라 나름 기대가 컸다. 사실 앞서 ‘신나는’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모든 여행 기사 취재가 신나고 재미난 것은 아니다. 남들은 ‘여행’을 공짜로 가는 거라 부러워하시겠지만, 실제로 그걸 ‘일’로 받아 가는 경우라면 스트레스부터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 여수 취재는 가기 전부터 상당히 긴장을 했고, 편집자를 만족시켜야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했다. 나름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하고 ‘잘 찍어보리라’라는 다짐을 했다.
드디어 엑스포 측으로부터 취재허가를 받은 후 KTX로 여수 엑스포 역 앞에 도착했다. 저녁 8시경 도착했는데 엑스포장 입구 뒤로 대형 LED 화면이 펼쳐졌다. 왼쪽에는 시멘트 창고를 개조한 초대형 오르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엑스포장 안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처럼 방금 도착한 사람들과 이미 와 있던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간식을 먹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첫 인상은 ‘와, 멋지다!’ 이었다.
그러고 나서 엑스포역-정문간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여러 번 헤맨 후에 간신히 여관에 도착,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엑스포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 반에 향일암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그곳 풍경을 취재한 뒤 여수에 있는 소문난 보리밥 식당인 ‘진복 식당’으로 가 취재를 했다. 그 후 국제미디어센터에서 촬영기자 용 조끼를 받아 ‘3문’을 통해 엑스포장으로 들어갔다.
엑스포장 안에 들어서자 관람객의 70% 이상이 어르신들이었다! 그것도 허리가 굽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 분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거의 모두 머리 염색을 하셨는지 도대체 연세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서로 큰 소리로 부르셨다. 그리고 중년들이 많다보니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가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줄을 잘 안서는 것이었다.
엑스포 기간 버스가 전부 무료여서 버스 이동을 많이 하게 됐다. 기사 분들은 너무나 친절하셨는데, 승객들은 줄을 거의 서지 않고 우르르 몰리면서 버스를 탔다. 무료 버스다보니 앞뒷문 구분도 없었다. 사람이 좀 많은 정류장에서는 내리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앞뒷문으로 우르르 승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비규환이었다. 서울에서도 버스 카드를 사용함에도 불구, 뒷문으로 승차하는 사람이 있는 데, 시골은 오죽할까 싶었다.
둘째 날 드디어 아쿠아리움에 갔다. 가보니 텐트 밑에 관람객 수백 명이 피곤한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마침 내가 간 날이 사전예약제가 취소된 다음 날이었다. 보안요원과 도우미들이 어르신들께 계속 마이크로 방송을 했다. 급기야 몸싸움이 일어났다. 할머니 한분이 도우미 언니를 헤딩하다시피 밀면서 앞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도우미는 어쩔 수 없이 그 할머니를 들여보냈지만 다음 줄에 서있던 사람들은 짜증나는 일이었다. 도대체 왜 전화예약제를 안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IT 코리아를 강조하다보니 구식 전화예약은 준비가 안됐었나 보다.
버스 정류장과 관람장에서의 무질서는 저녁 ‘빅오쇼’에서 그 백미를 장식했다. 빅오쇼는 밤 9시 반에 시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4시간 전부터 관람석에 와 앉고서는 떠나질 않는다! 나는 7시 반쯤 관람석으로 갔더니 1층에는 자리가 전혀 없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물며 도우미 언니들도 “자리싸움에 휘말리지 않으시려면 2층으로 가시는 게 나을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2시간 기다린 후 드디어 빅오쇼가 시작됐고, 그 장관은 10시쯤 끝이 났다. 그런데 또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고 자신들이 깔고 앉았던 종이를 스스로 수거하지 않고 그냥 떠나는 것이었다!
내 앞 자리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다른 60대 아주머니에게 종이를 가져가라고 얘기했지만 들은 척도 안하시고 일행과 가버리셨다. 수만 명의 관람객이 자리를 뜬 현장에는 쓰레기만이 널브러져 있다. 이윽고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이 와서 휴지를 치우시긴 했지만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이 들려왔다. 어쩌면 이렇게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이 깔고 앉은 종이와 음료수를 두고 갈까. 혹시 입장료에 청소비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내가 버려도 어차피 용역이 치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용역은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자신들보다 약자가 아닌가? 그 정도도 못한단 말인가.
아무리 최첨단 LED 조명이 빛나는 엑스포였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석기 시대였다. 아무쪼록 해인지 독자들은 그런 분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