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많은 공덕을 쌓은 뒤, 수바는 라자가하(지금의 인도 라즈기르)의 고귀한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다.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얻은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였다. 수바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으며, 그 몸 또한 더할 나 없이 아름다왔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수바라 불렸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에 머무실 때, 수바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일반 신도가 되었다. 신도가 된 뒤로 수바는 거듭되는 윤회의 처참한 실상을 깊이 고뇌하였다. 쾌락이야말로 인간을 감각의 노예로 만드는 사슬이며, 즐거움이란 잠시의 향락일 뿐이어서, 그것을 극기하고 포기해야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수바는 깨달았다. 그래서 수바는 마하 파자파티 고타미1)에게서 계(戒)를 받았다.
수바는 부지런했다. 열심히 선정(禪定)을 닦고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행하여, 드디어 죽은 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수행 단계인 아나가미2)의 과(果)를 얻었다.
어느 봄날 정오에 비구니 수바는 휴식을 취하려 지바카 망고숲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한창 나이의 한 남자가 수바를 보고 반하여 그 길을 막았다. 수바는 자신이 세속의 것을 포기했다는 것과, 욕정의 해로움과 재앙을 그에게 이해시키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가 우아한 팔리어 시형(詩形)으로 디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비구니 수바가 아름다운 망고숲에 들어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 그리하여 수바는 그에게 말하였다.
“어떤 모욕을 내가 당신에게 주었기에, 어떤 잘못을 내가하였기에 당신은 내 길을 막고 있읍니까. 오, 벗이여, 계를 받은 비구니가 남자를 가까이할 수는 없읍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은 내겐 소중하고 존귀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니에게 주신 계율은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엄격하게 따릅니다.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 나는 나를 깨끗이 하였읍니다. 당신은 어인 일로 내 길을 막고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은 욕망으로 가득 차 어쩔 줄 몰라하지만 내 마음은 맑습니다. 천한 열정으로 당신의 마음은 온통 뒤숭숭해 있지만, 내게는 열정이 없으며 세속의 일과 육체에 대한 어떤 욕망과 열망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왜 당신은 그렇게 서서 내 길을 방해합니까?”
그 남자는 그리하여 대답하였다.
“그대는 그렇게 젊고, 그 아름다움은 조금의 흠도 없으며, 그대의 몸도 그렇듯 단정하오. 성스런 삶의 의식이 그런 그대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단 말이오? 이 꽃피는 숲에서 차라리 함께 즐거움을 누립시다.
보시오, 꽃의 향기가 대기에 떠돌고 있소. 꽃송이에 가득한 이 봄을, 기쁨으로 꽃을 피우는 이 봄을 보시오. 이 꽃피는 숲에서 즐거움을 누립시다.
바람에 흩날려 나뭇가지 위에서 꽃굽이치는 꽃송이들이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하오. 그런데 당신은 홀로 숲으로 들어가고 있구려. 거기서 어떻게 기쁨을 구하려 하시오?
이 야생의 거친 숲, 사나운 코끼리가 돌아다니고 온갖 위험과 위협이 가득한, 인적도 드문 이 숲으로 어찌 홀로 외로이 들어가려 하시오?
오, 한점 흠도 없는 그대, 매혹적인 처녀여. 그대는 마치 순금으로 빚은 조각과 같고, 비단으로 만든 우아한 옷을 걸치고 천국의 정원에서 기쁨에 넘쳐 춤추는 요정과도 같소.
오 그대, 눈을 살풋이 감은 요정이여. 나 기꺼이 그대의 종이 되리, 함께 이 빛나는 숲에서 쾌락의 시간을 가질 수만있다면. 아, 당신보다 더 소중하고 달콤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
내 말대로 금욕의 생활을 포기하고 내게 오시오. 거대한 저택에 당신을 머물게 하겠소. 많은 하인들이 당신의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따르며 섬길 것이오.
그대에게 베나레스의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히겠소. 화환과, 향기로운 온갖 것으로 만든 향수, 화려하고 진귀한 장신구와 보석을 그대에게 바치겠소.
그대를 화려한 향나무 침대에 눕게 하겠소. 부드러운 양털로 그 속을 대고, 베개는 백조의 깃털로 만들겠소. 깨끗한 닫집도 꾸미겠소.
마치 호수에 피어난 연꽃과도 같은 그대, 기품있는 비구니여. 그대 순수하고 순결한 육체도 이제 점점 늙어 시들어갈 것이 아니오.”
그래서 비구니 수바는 물었다.
“그렇다면, 이 연약하고 곧 무덤에 묻힐 육체의 무엇을 보고 당신은 그것에서 기쁨을 얻으려 합니까? 오물로 가득한, 땀과 피투성이의 이 몸뚱아리에서 당신이 얻고자 하는 기쁨의 본질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남자는 답하였다.
“그대의 눈은 순진한 양의 그것과 같고, 깊은 산에 사는 요정의 맑은 눈과도 같소. 그대의 눈을 보노라면 내 열정은 나도 자제할 수가 없소.
금으로 만든 조각이 빛나듯, 그대의 얼굴은 맑게 빛나오.
그대의 눈은 마치 분홍빛 연꽃과도 같구려. 그대 눈빛은 내 감정을 억제할 수 없게 만드오.
그대의 그 그윽한 눈빛이여! 그렇듯 순수하고 생기에 넘친 눈빛의 그대여! 그런데 그대는 그렇듯 멀리 있고, 나는 다만 그대의 반짝이는 눈빛에 잠겨 있을 뿐이오. 오 그대, 사랑스런 눈을 가진 요정이여! 그대의 그 눈부신 눈동자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내겐 없소.”
수바는 그리하여 말하였다.
“그대, 부처님 제자의 길을 가로막은 이여. 그대의 열망은 마치 위험한 길을 걷듯 어리석고 무익하군요. 그대가 나를 그리워함은 마치 메루 산을 단숨에 뛰어넘으려는 것처럼 무분별합니다. 그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지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생명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없읍니다. 격정의 뿌리를, 나는 성스런 가르침의 길을 따름으로써 잘라 버렸읍니다.
타오르는 불속에 던져진 것이 태워지듯, 독을 담은 그릇이 부서지듯, 내 갈망의 불은 그렇게 영원히 꺼졌읍니다. 나는 이제 무엇이 갈망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 몸이 헛된 것임을 모르는 여인이나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은 어떤 여인을 유혹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이 비구니를, 거룩한 네 가지 가르침을 인식한 비구니를 괴롭히고 있군요.
나는 부처님의 제자,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저속한 모든 열망을 버렸읍니다. 성스러운 팔정도의 마차를 타고 나는 열반으로 갑니다. 외롭고 평화로운 그 길로 나아가면서 나는 고독 가운데 살고, 그 적막한 숲의 청명함을 즐기며 그 안에서 환희를 맛봅니다.
오, 그전까지 나는 사치스럽게 치장한 인형, 실과 추가 움직이는 대로 예쁘게 춤추며 매혹하는 꼭둑각시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순간, 실과 추가 모두 떨어져 나가 여기저기에 느슨하게 흩어졌읍니다. 인형과 꼭둑각시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어느 부분에 당신 마음을 매달려고 하십니까?
이 몸은 꼭둑각시 인형과도 같습니다. 신체 기관과 그에 따른 부수물이 없이는 육신은 존재할 수 없읍니다. 각각의 기관과 부수물은 다만 서로 의존하여 형체를 이룬 것뿐입니다. 당신은 그 어느 부분에 당신 마음을 매달려고 하십니까?
지금 당신은 그림 속의 여인을 실제의 여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그릇된 지각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환영을 실제의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 어리석은 이여 ! 그대는 눈멀었읍니다. 당신은 이 공허하고 껍질뿐인 육신에 집착하여 이 몸이 언제까지나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까? 마법사의 요술과도 같고 꿈속에 본 황금나무, 혹은 아득한 안개 속에 보이는 은빛 환영과도 같이 덧없는 이 육신을 말입니까?
당신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 눈은 눈물로 가득하고 점액이 흘러나오며 희고 검고 푸른 여러 색이 섞여 그 모습과 영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수바는 아무 것에도 애착하지 않았고, 그래서 수바의 눈은 아무 것도 연연해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에겐 그렇듯 사랑스러운 그녀가, 한순간 갑자기 그녀의 눈을 파내어 그 남자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대가 그렇듯 이 눈을 원한다면, 자, 가져가시오.”
갑자기 그 남자의 갈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수바에게 용서를 빌며, 그는 부르짖었다.
“오 그대, 성스럽고 순결한 이여! 부디 평안하소서! 원컨대 그 시력을 회복하소서! 결코 다시는 이렇듯 흉악한 죄를 감히 저지르지 않겠읍니다.
이는 마치 제가 타오르는 불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과 같으며, 마치 독사를 끌어안았던 것과 같습니다. 당신처럼 신성한 이를 방해하여 무슨 이익이 있겠읍니까?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사나이를 떠나 비구니 수바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 신 부처님께로 갔다. 거기서 스승의 신성한 광휘(光輝)를 바라보자, 수바의 시력은 다시 회복되었다.
수바의 시력이 이전처럼 돌아왔을 때, 더할 나위 없이 기뼈하는 수바에게 부처님은 최상의 얻음에 대해 그 뜻을 설하셨다.
수바는 더욱 열심히 선정을 닦아 담마(法)의 모든 뜻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드디어 아라한 과를 성취했다.
1) 마하 파자파티 고타미 Maha Pajapati Gotami : 석존의 어머니 마야 부인의 동생으로, 석존께서 성도하신 뒤 오백 명의 여인들과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 교단을 만들었다.
2) 아나가미 Anagami : 아나함. 성문(聲聞)의 네 가지 과(果) 가운데 세번째 단계이다.
3) 아라한 Arahan : 성문의 가장 윗지리로, 응공(應供)이라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