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범어사 주지 소임을 보랴 서울과 부산에 있는 안국선원에 오가랴 불교신문사 사장 일을 보랴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선원장 일을 보랴 쉴 틈이 없다. 조금만 움직여도 쉬이 지치는 이 여름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려면 꽤나 힘드시겠다 싶다.
“난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시간을 쪼개서 법문을 한 번이라도 더 해서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고맙지요.” 일이 많지만 스님에게 있어 그것은 일이 아니다. 그저 물이 흘러가듯 부처님 법 안에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힘들 리 없다. 자신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저 높은 곳에 목표를 세우고 그곳에 닿기 위해 허덕이는 중생의 삶과는 다르다.
“난 미리 계획하고 계산하는 건 안 해봤어요. 난 편하게 살아요. 남한테도 불편하게 안 하고 내가 나한테도 불편하게 안 해요. 수행이 잘 되고 있는지 안 되는 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하고 사는 것이지요. 삶이 수행이니.”
스님이 1989년에 개원한 안국선원은 도심 포교원으로써 간화선 대중화를 선도하는 참선도량이라는 큰 뜻을 이뤘다. 개원 당시에는 부산에서 48평의 조그마한 곳에서 시작한 것이 이젠 한번 안거에 들어가면 2천여 명이 찾아오는 규모가 되었다. 그 시작은 이렇다.
“일본 박람회에 갔다가 미래 사회의 흐름을 보았어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모습은 충격이었지요. 미래 사회에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당시 기존의 절에서는 스님이 생각한 간화선 수행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스님이 갖고 있는 수행 프로그램을 맘껏 펼치고 싶다는 생각에 포교원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리한 시도를 한 것이 아닌가 회의가 든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스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일사천리도 통하였다. 그 이후로 한 번도 뒷걸음질 치지 않고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 도심 포교당을 어찌 이렇게 활성화 시키셨는지, 민가의 깊은 기복 불교를 뚫고 간화선 수행을 통해 어찌 이리 포교를 잘 해 오셨는지 여쭙는다.
“수행으로 포교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정법입니다. 그러니 더 손쉽게 포교가 되지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리고 지금 시도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님은 앞으로 더 무궁한 가능성이 있다며 전 세계로 문호를 열어 한국의 선불교 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스님은 수행 프로그램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름 사람들의 방식과는 비교해 본 적이 없다. 다른 방식을 연구해 본 적도 없다. 스님은 그저 핵심을 두고 꿋꿋이 스님의 길로만 걸어왔다. 신도들에게 오라고 권해서 오는 세상이 아니다. 자신에게 맞고 좋으면 알아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안국선원엔 젊은이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이들 몰려드는 것일까? 왜 그렇게들 열심인 것일까?
“자기 변화가 오니까요. 중심이 잡히고 편안해져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져요. 변화하는 것을 빠르게 읽어내는 힘도 생기고 미지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합니다. 눈과 귀가 새로워지니 법문 듣는 힘이 생기지요. 다른 차원의 삶을 산다고 할까요. 현실을 외면하는 삶이 아닌 현실 속에서 정신세계가 넓고 깊어지니까요. 사는 데에 긍정적인 힘을 갖게 되니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지요. 삶의 질이 바뀝니다.”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병은 누군가가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치유해야 한다. 안국선원에서는 수행법을 알려줘서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수불 스님은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고받는다. 정신적 나눔 만한 행복이 없다. 그런데 왜 그리 간화선 수행을 널리 펼치시는가?
“수행은 인류의 본질적인 기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인류가 찾아낸 최고의 방법입니다. 꿈에서 깨어나게 하고 어리석음을 지혜로 전환할 수 있으니 수행을 최고로 치는 것이지요.”
현재 인류 최고의 가치를 눈 뜨게 하는 방법이 참선이라고 규정짓고 있는 것인데 참선보다도 더 빼어난 방법이 있다면 그쪽으로 전환될 터이나 현재 수행 방법 중엔 참선만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스님은 한국의 간화선만한 방법이 있을까 하신다.
“부처님이 방법을 찾아서 우리에게 전했는데, 이 귀한 것을 우리 시대에서 잘 활용을 하고 또 다음 세대에게 알려줘야지요. 이게 사라지게 두어선 안 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종교가 목적이 아닌 수단화 되었다.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다. 종교 생활이 아닌 종교가 얘기하려는 본질적인 것을 찾게 된 것이다. 그 핵심이 선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 안국선원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닐까.
“수행을 통해서 선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지요. 참선과 선은 달라요. 참이 떨어져야 선이지요. 참선은 수단일 뿐, 선이 목적입니다. 선과 내가 둘이 아닌 입장에서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안국선원에서는 혜민 스님을 주축으로 ‘마음치유콘서트’가 열린다. 그것을 뒤에서 말없이 지원해 주시는 게 수불 스님이다. 스님은 6년 전 즈음 미국에 가서 포교를 하고 싶은 뜻이 있었다. 그러나 스님 대신에 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원을 해서 뜻을 이루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뉴욕 불광사에 기부를 하면서 하버드대학에도 기부를 했다. 그 인연으로 혜민 스님과 닿았다. 스님은 불쑥 혜민 스님의 칭찬을 늘어놓으신다.
“준비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어요. 자비심이 가득해서 언제나 나누려고 애를 씁니다. 무한히 뻗어나갈 거예요. 이런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수불 스님 시대엔 소통이 딱딱하기만 했지만 이 시대엔 혜민 스님처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부드럽게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것도 현명한 일일 것이라며 스님은 웃으신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격이 없고 편하니 주변에 좋은 인연이 많으신가 싶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이고 싶어요. 있으면 더 편하고 없어도 상관없는 사람이고 싶은데 말처럼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소.”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낮잠이나 들면 딱 좋겠다 싶은데 몇 차례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들린다. 관계에 담장이 없으니 집에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스님은 그들과 또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실 모양이다. 마치 왔다 가지 아니한 사람처럼.
“책임을 각오하면서 살아야지요.”
마당에 꽃이 피었다 하는데 꽃은 보이지 않고 향기만 그윽하다. 여기, 스님이 계셨던가 아니 계셨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