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세속화된 사회에서의 불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논단 - 종림 1988년 03월 73호
종림/해인 편집장

종교의 세속화문제는 현대 사회에 종교가 갖는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세속화의 개념이나 평가는 다양하다. 세속화라는 말은 종교 제도의 타락이나 성스러운 신적인 어떤 것의 현현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도회된 종교의 타락은 기존의 사회 질서나 윤리에 의한 판단이고, 현현이란 신적인 어떤 것이 시간이나 공간 속에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화는 신의 창조물인 개체가 절대시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세속화는 종교와 세속문명과의 관계에서 종교가 종교 자체의 목적에서 벗어나 세속사회의 목적이나 질서에 봉사하는 종교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종교적 세속화의 문제는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일찌기 제기되었던 문제였다. 중세의 교향권과 제왕권의 관계에서 사회적인 권위가 교회에서 정치로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세속화라는 말로 표현하였고, 그것이 다시 18세기의 계몽기에는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성에 의한 과학적 지성과 비판적 정신으로 반종교적인 운동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나아가 19세기에는 문화나 철학의 영역에까지 확대되어, 사회나 문화적 영역에서 신화적 사고가 부정되고 교회나 신학의 지배에서 독립하게 된다.
이러한 세속화라는 사회적인 경향에 대해 교회는 세속화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종교의 비신화화, 세속화를 표방하여 무신론적인 신앙을 주장하고, 종교적 신앙의 현세적 성격이나 역할을 강조하는 세속신학자들이 나타났다. 세속선학자들은 신이 창조한 이 세계와 하나님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하였다. 곧 인간은 종교적 제의나 영적이고 개인적인 신비적 체험에서가 아니라, 세속의 일상 속에서 이웃과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봉사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 운동은 교회 내의 혁신 운동뿐만이 아니라, 근대 산업사회의 체제 내부에서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 가난한 자를 해방시키려는 사회적, 정치적 혁명운동으로 발전하여 왔다.
불교의 세속화 문제는 기독교의 세속화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불교에서도 세간과 출세간이라는 구분이 있으나 그것은 ‘성’과 ‘속’이라는 이원론적인 개념이 아니다. 불교는 무신론적인 종교로서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적인 초월성도 창조주적인 신앙도 없다. 원시 불교의 성격이 출세간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여기서 말하는 출세간이라는 것은 신적인 초월성이나 성스러운 세계가 아니라 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진리나 출가자의 실천 윤리가 비세간적인 것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문명 사회에서 그 문명을 주도하는 관념이 피안적이고 종교적인 것에서 비종교적이고 현세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을 세속화라고 한다면, 종교가 그 창조력을 잃고 대중으로부터 매력을 상실할 때 사회는 세속화된다. 신적인 어떤 것에 대한 외경이나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신념이 사라질 때 그 문화는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 종교가 그 사회나 시대의 주도권을 잃고 비종교적인 이념이 지배하게 되면, 종교적 진리는 현세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속화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문명의 성장기에는 종교가 그 사회나 문화적 제활동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하지만 쇠퇴기의 운명에 있을 때에는 세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세속화된 문명은 문명 소멸의 직전까지 계속되고 세속화된 종교 역시, 종교 부흥의 일시적인 운동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고, 그 사회적인 목표를 잃고 형핵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 비판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 문명의 세속화는 당나라 말에서 송대에 이르는 중국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시기에 사회의 기본적 가치관이 결정적으로 전환됨으로써 비롯된다. 곧 종교적 가치관이 세속적 가치관으로 바뀐 것이다. 불교나 도교의 주도적 역할이 현세적이고 합리적인 유교로 그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 변화하게 된다. 중국 문명에서 춘추 전국 시대에 그 제 1 주기의 세속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영향을 입은 한국 문명이 고려 말에 또한 세속화하기 시작하여 조선조에 가서는 유학을 지도 이념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한국 문화의 세속화는 세속화된 원나라의 영향 아래 송대에 완성된 신유학의 새로운 세속화의 정신이 유입되고, 불교는 생기를 잃고 급속히 토속화되어가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사회의 세속화는 종교의 창조성 상실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르네상스나 세속화된 문명의 유입이 사회를 세속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구의 르네상스나 중국의 신유학운동(주자학)이 문명을 세속화시켰다면, 주변 문화권으로서의 한국은 주자학의 유입이 조선조의 사회를 세속화시켰고 그와 마찬가지로 근대에 와서는 서구의 세속화된 산업문명이 한국 사회의 발전 모형이 되었다. 조선조가 건국과 더불어 주자학을 지배 이념으로 채택하고 불교를 억압한 것은, 고려 말의 불교 교단의 타락이 그 일차적인 원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세속화된 문명의 유입에 있다. 설사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기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으로 비판받았을 이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물러난 불교는 기복화나 토속화된 형태로 명맥을 유지해 왔을 뿐이다.
서구 기술 문명의 전파는 가히 세계적이다. 공업화가 바로 근대화라면, 세속화된 사회는 공업화된 서구 문명의 수용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나 세속화되었다고 해서 다 근대화된 것은 아니다. 같은 서구 문명권이지만 라틴 아메리카는 근대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교 문화권이면서도 일본은 근대화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중국이나 한국이 근대화가 늦어진 것은 식민지 지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아직도 종교가 그 사회의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도나 이슬람 사회는 토착의 종교적 가치관과 세속화된 가치판과의 갈등이 공업화를 장애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근대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물질 문명은 자연이나 환경의 파괴는 물론 인간성의 상실에 이르는 많은 사회적 병폐를 낳았고 인류의 문명 자체마저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종교적 가치관 속에서 공업화나 근대화를 추진하는 인도나 이슬람 사회는 근대화의 한 모형이 될 수도 있다.
근대화의 흐름은 계몽주의 이후 이성에 대한 신념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종교적 이념이나 신화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발하고 합리적인 근대 문명을 이룩한 것이다. 근대 세속화의 기본적인 사고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비신성화와 사고의 합리화를 들 수 있다. 세속화된 근대 문명 속에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은 점점 감소되어 가고 있다.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종교 개혁과 같은 전통적 종교의 자기 변혁을 시도하고 있으나, 주변 문화권에서는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정치, 군사 등 사회적인 요인과 더불어 외래의 종교가 국가 종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전통적 종교로서의 불교는 서구 문명에 대한 적응과 자기 변혁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근대 사회 속에서 종교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속화의 경향에 종교가 대응해온 태도는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세속화된 문명에 대하여 그것의 근대적 가치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신앙만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경향이다. 아직도 잠을 깨지 못하고 있는 불교계의 상황이지만, 옛날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지킨다고 지켜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키고 안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 있는 기반의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화되었고 물질 문명의 병폐까지 고스란히 떠맡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근대화의 발전 모형에 대한 한계도 드러났다. 이제는 같은 방법에 의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둘째는 세속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신의 역사를 문제 삼는 세속신학운동이 있다. 제 3세계의 해방신학이나 민중불교의 범주를 포함하여 정치나사회의 영역에 문제의 중점을 두는 것이다. 신의 역사를 이 땅에 창조할지 아니면 세속화의 첨병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철학의 고유한 영역이 논리학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과 같이, 사회에서 소멸되어 가는 종교의 새로운 영역 확보일 수도 있다.
셋째는 세속화를 수용하고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이다. 전통적인 제도를 현대에 맞게 개조하고 그것에 자신들을 적응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세속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이 신앙을 정복하는 것이다. 기존의 교단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태도이며 자칭 한국불교의 전통이라 칭하는 호국불교가 바로 그것의 전형적인 보기이다. 민중불교가 반체제적이라면 호국불교는 국가주의적이다. 그러나 종교가 세속적인 목적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는 둘 다 마찬가지의 형태다.
마지막으로 종교 제도의 합리화와 새로운 신앙 운동이다. 근대 문명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사회 구조는 점점 합리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 속에서 교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운영이 합리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합리화에도 한계는 있다. 신앙의 비합리적인 요소가 갖는 성격 때문이다. 새로운 신앙운동은 종파의 시원이기도 하지만, 기존 교단과 서로 연계 관계를 가질 때 새로운 생명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구조를 재구성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