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불보살과 조사들의 신격화와 ‘극락-저승’의 내세관을 받아들이면서도 봉건제 밑의 대중들의 생산적인 현실적 세계관은 변함없이 기층을 이어져 내려왔다. 그것은 풍농, 풍어를 기리는 생산 노동자로서의 기원, 그리고 그 생산물을 부당하게 빼앗기는,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계에 대한 기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집과 마을의 여러 공간, 그리고 산천과 하늘을 신격화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끈질긴 도전과 생산력의 고양으로 이어진 역사 발전의 동력이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이러한 민간의 세계관 및 신앙과 소망의 체계를 어떻게 수용하였을까? 첫번째로 산악 숭배나 산신 신앙의 불교적 전개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고대 노예제 사회를 전후로 하여 본격적인 농경 정착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산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자 필요한 물자의 주요 공급처였다. 또한 산은 하늘과 땅을 잇고, 인간의 소망을 하늘에 아뢰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는 이 지역이 특히 산악의 형세가 다양하고 기이하면서도 많은 물자의 공급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하여 형성된 산악 숭배와 산신 신앙의 맥을 아무리 불교가 더 정교하고 합리적인 세계판을 갖고 들어왔어도 흔들리지 않고 기층에 광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불교는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방향으로 대용하여 나갔다. 하나는 오대산이나 금강산 신앙처럼 신라 이래로 전개되어 온 불국토사장이며, 다른 하나는 사찰에 산신각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불국토사상은 특히 신라에서 발달하였던 바 중국 당나라의 오대산 신앙의 영향을 받은 자장(慈藏)이 불국토인 이 반도 중에서도 청정하고 광명한 영지(靈地) 오대산에 가람을 짓게 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는 뒤에 풍수지리설의 영향도 받으면서 영험한 산에 사찰을 건립하게 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통에 근거해야 고려시대 묘청이 이국연기(利國延基)의 뜻으로 국내의 명산과 산신 가운데 여덟을 골라 호국백두악태백선인실덕문수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珠師利菩薩) 등 팔성(八聖)을 모신 일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찰에는 예외없이 한 귀퉁이에 산신당 또는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에는 산신 탱화가 빠짐없이 봉안되어 있는데, 탱화에는 백발 노인이 호랑이를 탄 모습이나 호랑이가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무속의 무신도와 거의 동일한 모습인 바, 불교적인 변용이 없이 사찰에 봉안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산신신앙의 보편성과 강도를 웅변해 주고 있다 하겠다.
다음으로 사찰의 삼성각(三聖閣)에 산신과 함께 모셔지거나 따로 모셔지는 칠성(七星)과 독성(獨聖)이 있다. 칠성신앙은 자식 발원과 수복 발원이 주목적인 바, 도교적 신앙이 불교에 수용된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리고 독성은, 석문의범에 의하면, 부처님의 열반에 들도록 허락되지 않아 홀로 천태산에 들어 용화세계가 올 때를 기다리며 수도하는 나반(那畔)존자라고 하는데, 말세에 그에게 빌면 성도(成道)가 빠르다고 한다.
이상의 삼성(三聖)신앙 체계는 도교적인 칠성과 고유한 산신신앙, 그리고 불교적 독성(獨聖)을 함께 모신 한국적 종교혼합주의의 전형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한편에서는 이 삼성신앙이 환인〔七星〕, 환웅〔獨聖〕, 단군〔二山神〕의 삼신(三神)신앙이 도교나 불교의 이름만 빈 채 사찰에서 전승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구한말 이래로 동학, 대종교, 증산교 등 신종교 운동의 신앙 체계와도 관련지어 검토해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보통 재공양(齊供養)이라 불리우는 불교의식을 보면 104위(位)의 신중(神衆)이 있다. 그들은 불보살을 모신 상단에 22위, 천상계의 호법선신(護法善神)이 주를 이루는 중단에 38위, 그리고 기타 신중을 모신 하단에 44위가 있다. 이들 각 신중의 성격은 무척 다양하여 인도의 토속신, 중국 도교의 신격, 한국의 민간 신격 등이 함께 배열되어 있다.
본래 무신론이라 할 수 있는 불교에 이처럼 다양한 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불교와 각 나라의 민간신앙과의 습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 유일신교에 의해 우상숭배로 공격당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배층에 봉사하며 그 지배 이념과 철학을 제공하고, 당시 체계를 유지하는 효율적 수단일 수밖에 없었던 중세 사회의 불교가 그나마 대중들 속에서 중생 구제의 큰 방편을 펴고 실천했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제석(帝釋), 범천(梵天), 사천왕(四天王) 등 소위 천부선신(天部善神)은 인도 재래의 민간신앙의 신격이었으나, 이후 각종의 대승경전에 포괄되면서 부처님 경전과 그 법을 설하는 법사를 보호하겠다고 서원하는 신중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대개 육계육천(欲界六天 : 四天王, 忉利天, 夜摩天, 兜率天, 化樂天, 他化自在天) 중 첫째 하늘인 사왕천의 사천왕, 둘째 하늘인 도리천의 제석(대개 일반적 하늘로 인식된다), 그리고 색계(色界) 18천 중 초선천(初禪天)의 천주인 범천을 중심으로 하여 주로 불법 수호의 기능을 담당하는 탱화로 형상화된다.
칠성은 중단의 44위에서 50위까지 위치하는데, 북극성과 북두칠성에 관한 관심이 자손 번영과 수명 장수였던 민중의 도교적 신앙이 그대로 불교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민간신앙의 신격들은 주로 하단에 위치해 있다. 그 면면을 대강 살며보면, 산신, 조왕신(부엌신), 문호신(門戶神), 우물신, 용신, 해신(海神) 등등으로 거의 ‘마을’이나 ‘집’ 또는 ‘산천’과 관계된 자연신들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인도, 중국, 조선의 각 민간 신격들을 혼용하여 민중의 현실적 욕구에 대응하면서 그들을 불법에 귀의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각 민간 신격을 호법선신으로 자리잡게 하는 한편, 각 신격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의 각종 불공(산신불공, 용왕불공, 칠성불공, 중단의 신중불공)을 모두 포용하는 민중지향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상 불교와 민간신앙의 상호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제의 성격상 좀 더 입체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그러하질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느끼며, 다음에는 사회변동과 가장 역동적으로 관련된 미륵신앙과 민간신앙, 민중운동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