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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막에 씌어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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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수일 1988년 03월 73호
80년대 초, 눈이 몹시도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이었다. 이이들은 눈 위를 구르며 정신없이 좋아했고, 난로공상과 잠바공장 사장은 입이 째져라 즐거워했는가 하면, 제설 조치가 엉망인 우리나라의 운전기사는 어쩔줄 몰라하고, 잠바공장 노동자는 연일 철야로 내려오는 눈까풀을 잠 안오는 약으로 겨우 잡아놓을 때였다.
한강의 줄기를 좇아오르면, 경기도하고도 대성리리는 곳에서 큰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겨울-대성리•31인전’ 이라는 주제로 전위미술 행위미술 환경미술 등 생소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강은 꽁꽁 얼고 눈은 발목까지 빠졌다. 설화가 만발한 산과 강을 배경으로, 그 자연 속에 인위의 작업을 첨가하여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기존의 형식화된 작품과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서, 자연과의 동화를 통하여 인간의 원초적 감성으로 돌아가 예술의 본 모습을 찾는 작업’을 한다는 그들의 논리가 그럴듯했다. 그러나 기존 미술에 대한 극복은 외형적 미(美)의 추구를 극복하고 현실적인 ‘진실의 외화(外化)로서의 미’ 를 추구하는 내용적 변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법상의 새로운 시도에 그쳤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하나의 작품을 접했다. 소위 ‘작품’을 감상하며 다니다보니 비닐을 얼기설기 쳐놓은 곳에 이르렀다. 그 공간에 서서 산을 보려면 현수막처럼 쳐진 비닐이 먼저 눈에 띄고 그 비닐에 쓰인 ‘산’ 이라는 글자를 통해서 산을 보게 만들어 놓았다. 강을 보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강’ 이라고 쓰인 비닐을 통해서만 강을 볼 수 있었다. 땅이나 하늘도 모두 그와 같았다. 모든 대상을 문자를 통하여 보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산을 볼 때 산이 갖고 있는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이라는 개념의 틀 곧 관념의 상(相)을 통해서 보게 된다. 자신의 경험의 한계나 삶의 방향에 의하여 그 대상을 파악하고 분별한다. 개념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상으로될 때, 우리는 그 개념에 종속되고 상에 얽매여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
우리의 사회 현실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안락을 위하여 발달한 문명은 그것이 탐욕을 지닌 소수 집단에 의하여 장악될 때 결과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구조를 유지하고자 엄청난 매스미디어와 선전으로 우리의 육근(六根)을 마비시켜 놓고 지배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인간을 종속적 노예로 만든다. 그 속에서 모든 가치의 판단은 길들여진 판단 가준과 고정된 상에 의하여 하게 된다. 인간을 볼 때도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목적을 가진 생명력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만 수단으로 규정한다. ‘부의 축적을 위한 노동 수단’, ‘사업의 대상’, ‘성적 상품’ 등으로 철저히 대상화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하고 행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교육하고, 주입시켜 버린다.
인간을 대하거나 대상을 파악할 때, 비닐에 쓰여진 글자를 통하여 보듯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세력이 ‘규정한 의미’를 통해서만이 모든 것을 판단하도록 세뇌시킨다. 이렇게 길들여진 상에 의해 종속적인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타인을 살아 숨쉬는,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파악하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갈파하여 절대화된 상을 깨뜨리고,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주체로서 일어설 수 있게 하신 분야 바로 석존이시다. 비닐에 쓰인 글자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과감히 비닐을 찢고 온갖 생명이 어우러져 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대상과 전적으로 현실로서 만나야 한다. 인간을 그의 직업, 성별, 빈부에 의한 상으로 파악하고 대상화시켜서 차별하고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그 자체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이를 억압하는 구조를 혁파하고자 한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이 어떠한지 보자. 아니 그보다도 바로 이 모순된 현실을 극복하고자 사자후를 발하셨던 석존의 말씀이 오늘날 어떻게 되고 있는지 돌아보자.
인간을 노예화시키던 브라흐마니즘에 대항하여 인간이 스스로 자신과 역사의 주인임을 선언하며 사성 평등을 주장하셨던 석존의 말씀은 오늘날 그 생명력을 상실한 채, 관념적 사변과 번쇄한 학문적 논리로 변절되고 고고한 현실도피적 안위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상좌부가 논리의 관념화로 소승화되었듯이 대승도 실천을 방기한 채 논리로만의 보살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분소의 한 벌과 맨발로 평생을 보내신 부처님의 모습은, 오색 단청의 장염에 갇히고 금빛 가사에 묶인 채 깊은 산 속에 유폐되어 계신다. 온 인류를 위한다는 수억의 불사는 한반도 민중들의 현실적 고통을 과연 얼마나 인식하고 벌이는 것일까?
인류 최고의 진리의 보고인 팔만대장경은 단지 문자 해석과 수준높은 문화재로 대상화되었다. 번쇄한 지식의 유희를 극복하고자 주창된 ‘선’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는 수단으로 합리화되기 일쑤이다. 현실을 가장 올바르게 보도록 하신 부처님의 말씀은, 가장 두터운 비닐막이 되어 현실을 왜곡시키고 진리를 굴절시키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불교의 정치적 활동을 부정하면서도 ‘법난’의 주역을 오로지 불교 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극 지지한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불교신자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용인된다면 이땅의 민주화와 불교의 자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이 시대의 보살에 대한 백안시는 또한 어찌된 까닭인가? 정작 노예의 틀을 깨뜨리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 자신과 역사의 주인임을 선언하셨던 부처님의 사자후는 아직도 이땅의 중생들에게 절실하건만, 이땅의 불교가 가장 첨예한 노예적 종속과 거짓 허상에 대한 맹목을 일삼음에 부처님께서는 과연 무엇이라 하실까?
혹시 오늘날의 불교계는 구체적인 현실과 진실을 올바로 보기가 두렵고 스스로 자신을 잃었기에, 아예 스스로 세속의 권력이 만들어 준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그들이 써준 비닐의 글씨를 통해, 현실을 단지 그 상으로만 보고 만족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에게 내리치는 부처님의 질타조차도 비닐에 쓰인 허구적인 상을 통해서만 듣고 보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가장 먼저하실 일은 무엇일까? 이교도들을 질타하실까? 아니다. 불교를 가장하고 위선과 허구의 비닐하우스 속에서 음흉한 매불 행위로 제 잇속을 채우는 이들의 비닐하우스를 불태워 그들을 먼저 구제하실 것이다.
오늘날 진정한 불제자라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질 일을 제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