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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온 스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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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지창 1988년 03월 73호
스님, 만나뵌 지가 꽤나 오래 되었읍니다. 헤아려 보니 해인사와 대구에서 스님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것이 벌써 이태 전의 일이군요. 누군가가 ‘승속(僧俗)간의 대화’라고 이름붙였던 그 모임들이 지금은 까마득한 그리움으로 떠오릅니다. 말이 대화였지 실은 저희 속인들의 되바라진 우정들을 스님들이 일일이 너그럽게 받아주시어 드넓은 정법(正法)의 들판으로 이끌어 주시던 자리였읍니다.
그러다가 작년 한 해 동안 스님들은 스님들대로, 저희는 또 저희대로 이리저리 흩어져 자기 일에 분주하다 보니 슬며시 승•속의 만남도 중단되고 말았읍니다. 애당초 무슨 뚜렷한 약속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닌 까닭에 흩어지는 과정도 그냥 자연스럽기만 했던가 봅니다. 그후 어쩌다 서로 얼굴을 부딪치게 되면 그렇게 반가와서 하루 저녁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으면서도 또 누구 하나 발벗고 나서서 약속 시간과 장소를 챙겨 다음 번 만날 것을 기약하지는 않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모이고 흩어지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스님들의 말없는 가르침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소소한 인연과 정에 야박하지 못한 속인인지라 스님을 만나려고 몇 번이나 해인사에 전화를 한 적도 있읍니다만 이상하게도 인연이 닿지 않아 만나 뵐 기회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요담엔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짐짓 재회의 인연을 내팽개쳐 두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스님들과는 그 후로도 한 두 번씩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스님과는 도무지 만날 수가 없었읍니다. 그저 요즘은 어디서 무얼 하신다는 소식만 풍편으로 듣곤 했습니다.
사실 어떤 때는 스님이 계시다는 암자의 위치까지도 자세히 적어 놓았으면서도 막상 서울에 올라가면 쫓기듯이 저자 바닥을 헤매다가 도망쳐 오곤 하느라 미처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했읍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스님께서 ‘민족 불교’의 화두(話頭)를 쫓아 산을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읍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찾아가서 스님을 만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이렇게 멀리서 재회의 기쁨을 아껴두고 있는 것도 저로선 즐거운 일입니다. 해인사의 산방에서, 그리고 대구 시내의 여관방에서 함께 딩굴면서도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들을 이제는 짓궂게 스님을 서울 시내의 어느 주사(酒肆)로 끌고 가서라도 이어가야 하리라는 절박한 느낌이 이렇게 어줍잖은 글줄로 저를 몰아내고 있읍니다.
사실 저는 ‘민족불교’에 대한 뚜렷한 자세나 소견이 없는 속인에 불과합니다. 민족불교는 고사하고 불교에 대해서도 거의 무지에 가까운 문외한일 뿐입니다. 그저 스님들과 몇 번 만나다 보니 괜히 허물없는 정이 들어 실없는 장난이나 치고 잡담이나 농하는 ‘양아치성 사이비 불자’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번 겨울에 하는 일 없이 술이나 마시며 허랑방탕하게 놀고 지냈는데(그러다가 지병인 중이염까지 재발해서 요즘은 술도 못 마시고 지냅니다만), 가만이 생각해 보면, 도갑사, 봉암사, 운주사, 대흥사 등 절집 근처를 떠돌아다니면서 스님 한 두분과는 꼭 동행을 한 셈이니 기이하다면 기이한 인연이 아닙니까? 문득 부처님의 크고 깊은 해인(海印)의 바다 속에서 제가 발버둥치고 있는 듯한 두려운 느낌이 다가옵니다. 아뭏든 저는 스님의 속깊은 열정과 투철한 논리에 걸맞는 일거리가 스님을 산에서 불러내린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읍니다. 그래서 속으로 무릎을 차며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스님, ‘민족불교’ 란 과연 무엇이겠읍니까? 이 분주하고 급박한 시대에 왜 ‘민족불교’ 라는 화두를 붙들고 스님같은 납자(衲子)가 저자 바닥으로 내려와야 합니까? 그 대답은 스님 스스로가 가장 확실히 쥐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저로서도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은 있읍니다. 저의 옅은 지식으로도 불교는 본디 밖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지만 수천 년을 이땅의 중생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생활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어느덧 중생의 삶과 일체가 되어 버린 민족종교로 정착되었음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읍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종교로서의 불교가, 근자에 이르러, 막강한 외세를 뒤에 업은 외래 종교의 위세 앞에 움츠려들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스님들에게만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이 땅의 진정한 자주 독립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한이 되고 있읍니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종교 외적인 여러 가지 정치, 경제적 원인이 있지만 불교계 자체의 대응력이랄까, 주체적인 역량이 부족했던 점도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교가 지니고 있던 그 엄청난 포용력과 창조적 에너지가 쇠잔한 것은 무엇보다도 중생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로부터 불교가 등을 돌리고 그것을 멀리한 탓이라고 저는 감히 헤아려 봅니다. 생각하면 한 줌 티끌처럼 덧없고 맹목적이지만 또 한편으론 인연(因緣)처럼 끈질기고 도도한 저 중생들의 삶-스님께선 이를 일러 ‘뭇 삶’이라고 이름 붙였읍니다만-을 모두 껴안지 못한 종교는 결국 뿌리 잘린 나무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민중의 삶에서 유리된 종교는 아무리 권력과 이재에 아첨하더라도 끝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나치게 가파른 저의 말투를 용서하십시오. 저의 이런 말버릇은 스님께서도 이미 여러번 겪어서 익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제가 꺼내 놓았던 설익은 바둑 얘기가 생각납니다.
마침 그때 스님께선 바둑돌을 예로 들어 오묘한 불법의 한자락을 펼쳐보이셨지요. 요컨대 우리 눈에 보이는 바둑돌의 희고 검은 빛깔이나 둥글고 모난 모양은 바둑돌의 드러난 현상의 한 모퉁이에 불과할 뿐, 바둑돌의 실체는 아니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스님께서 바둑돌의 비유를 든 것은 현상과 실체가 다르다는 평범한 이치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좀더 차원높은 불교의 변증법적 인식론 내지는 현실을 보는 관점을 설파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참석했던, 철학을 전공하는 선배 한 분이 종교와 철학 등 학문에 종사하는 자는 구구한 현실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 즉 바둑판의 승부보다는 바둑돌의 현상과 실체의 문제에만 전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내놓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승•속간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저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즉흥적인 생각을 울컥 털어놓고 말았읍니다.

그래, 바둑돌의 검고 흰 빛깔이나 모나고 둥근 모양이 그저 밖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요, 우리 눈에 비치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치자, 그러나 그런 바둑돌을 가지고 지금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다, 그런데 그중 어느 한사람이 총칼을 들이대고 주먹을 앞세워서 바둑의 규칙을 무시하고 우격다짐으로 바둑판을 휘젓고 있다. 가령 한꺼번에 두 개씩 돌을 놓는다거나 패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낸다거나 상대방에게 어떤 지점에는 아예 돌을 놓지 못하도록 윽박지른다고 치자, 이럴 때도 종교나 철학은 바둑돌의 실체와 현상에만 관심을 둘 수 있겠는가, 아니면 바둑이란 따지고 보면 부질없는 유희에 불과하고 바둑의 규칙이나 승부도 인간이 만든 약속에 불과한 것이니 이기고 지는 승부에 집작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타이를 것인가, 또는 진 사람에게 승패란 일순간의 허망한 집착에 불과하니까 한 번 졌다고 억울해하지 말고 후일을 기약하라든지 아니면 차라리 바둑보다는 영원한 진리에 눈을 돌리라고 권유할 것인가.
아니다, 나 같은 속인의 생각으로는 이럴 경우 종교나 철학은 당연히 바둑의 규칙을 무시하는 대국자에게 준엄한 꾸짖음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무리 사나운 무법자라 할지라도 승부 세계를 초월한 종교인의 질책에는 좀더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겠는가…

대강 이런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얼굴이 뜻뜻해지고 몸 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아마 성고문 사건 둥으로 세상 돌아가는 게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하기만 하여 앞뒤 생각없이 그런 소리를 지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후 6월의 민주화투쟁에서 12월의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우리 중생들은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며 한 해를 보냈읍니다. 그러다가 이젠 깊고 깊은 실의의 구렁에 빠져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움켜쥔 채 세상을 저주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있읍니다. 따뜻하고 푸근한 세상을 만들자던 사람들도 여유와 자신을 잃고 사납고 강파른 모습으로 친구들을 욕하고 있기도 합니다. 몸을 던져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할 때는 오히려 행복한 정법(正法)의 시대였읍니다. 그러나 제 자신과 가족과 이웃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칼날을 겨누는 요즘의 세태야말로 참으로 말법(末法) 세상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집착이 빚어낸 환각에 불과한 것일까요.
스님, 해인사의 솔바람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밤새 파도소리처럼 가슴을 때리고 또 쓸어내리던 그 솔바람 소리와, 잠못 이루던 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새벽녘의 꿈결에 들려오던 예불의 목탁소리와 싸늘하고 맑은 아침 햇살 속에 눈을 찌르던 소나무 숲의 짙푸른 빛깔도 되살아납니다. 그러나, 스님, 그러한 아침처럼 문득 부처님의 세상이 찾아와줄는지 저는 자신이 없읍니다. 그저 답답하고 막막할 뿐입니다.
“조막손으로 크나큰 활을 당기니 어찌 능히 화살을 쏠 수 있으리오” 하는 토정비결의 한 귀절이 저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합니다. 저의 올해 운세가 이런 지경이라면, 차라리 가만히 들어앉아 책이나보며 지내라는 제 처의 짜증섞인 권유는 제가 최근에 가당찮게도 이 지역의 ‘민족 문학회’ 일에 발을 들여놓은 데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토정 선생의 예언이 빗나가게 되는데…” 하고 농담처럼 되받으면서 저는 단순한 오기만은 아닌 어떤 믿음의 한 가닥을 움켜 잡으려 합니다. 그건, 말하자면, 아무리 허약하고 어설픈 조막손이라도 있는 공력을 다 쏟아 활시위를 당기다보면 화살 한대를 창공으로 날려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민족불교’의 활시위를 당기고 계신 스님께선 저의 이러한 심정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 때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외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 생각생각 잊지 말고 깊이 궁구하여 가되 일념만념 되게하여 폐침망찬(廢寢忘饌)할 지경에 대오(大悟) 하기 가깝도다…”
경허 스님의 참선곡(參禪曲) 한 구절을 원어가며 ‘민족불교’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 하기를 빕니다. 다음에 만날때는 쓰잘 데 없는 바둑 얘기는 그만 두고 못 두는 바둑이라도 한 판 두며 위로를 받기로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