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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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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기 1988년 03월 73호
해제가 되어 안개 낀 신문 밖을 나서는 납자들의 모습은 신선함과 넉넉함이 가득하다. 화두의 끝을 좇고 좇다 비로소 자아내는 그들 웃음의 깊은 의미는 그대로 여여한 법의 바다, 말씀의 바다처럼 보인다. 결제 동안 저들은 얼마나 자기 인내를 시험하면서 싸워 왔을까. 그 고통의 깊이는 또 얼마나 컸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도심의 거리를 기웃거리는 서울의 승려들을 생각하면 온통 흑색들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참여의 필요성을 많이 역설하면서 시내로 내려오지만, 행여나 시류에 물들어 그들의 본분사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또는 포교당 신도 활동을 통해 수효 늘리기에만 급급해 하지않는지. 만약, 행여라도, 이와 같은 태도라면 현실 참여가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이며 포교당이 어찌 필요하리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교당이 필요한 것도, 절 하나가 더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배고픈 중생이고 문명에 찌들 대로 찌든 중생이기에, 그들의 한켠엔 더욱 이 시대의 스승이 그립고 신선하고 넉넉한 인간이 목마르게 필요할지 모른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산문 밖을 나서는 저 선객들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를 구해줄 우리의 의지처가 아닐는지.
근간에 여러 곳에서 불교는 개혁되어야 한다, 불교는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는 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본질적으로 접근하지 못하였다. 우리가 불교 개혁을 운위하였을 때, 그 바탕에는 제도적 문제보다도 승려가 승려답지 못하기 때문에 불교가 사회적으로 허물을 지적당하는 때일 것이고, 이러한 비판들이 결국 불교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산문을 나서는 저 승려들의 법의 무게만큼 당당한 목소리를 이 땅의 모든 승려들이 갖고 있다면 어디 개혁해야 할 것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불교를 비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산중불교’라는 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산에 있든 들에 있든 도시에 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산중불교’로서의 자기 처지를 정리하지 못한 데에 있다. 산에 있으면서도 산사람이 되지 못하고 산중에 있는 절이면서도 산중에 있는 절답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 불교가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우리 불교는 언제까지나 도시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야 하고 낡은 시장의 주위를 배회하면서 현실의 변두리에 서 있을 것인가.
오늘 산문을 떠나는 납자들의 모습은 당당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다. 저들이야말로 하나의 사원이다. 그저 신비에 잠든 사원이 아니라, 세간의 의지처요 동량이다. 그들이 불교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해도, 현실 참여를 하지 않는다 해도, 모든 인간의 사표요 개혁의 참모습이다. 무소의 뿔처럼 본질의 보석을 다듬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극미의 인간상인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호흡을 가다듬고 본래의 고향을 찾아가고 싶어하고 생명의 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이다. 누가 그들이 현실 상황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실천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는가. 누가 저들을 이기적 관념론자, 초현실주의자라고 매도하였는가. 저들이야말로 현실 쪽에서 가장 크게 요구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들이야말로 모든 중생 속에서 깨어 있는 스승이다.
눈에 보이는 참여만이 참여가 아니라 한번 뒤돌아서서 보면 보이지 않는 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노력이야말로 더 무섭게 세간복귀하고 대중의 지반을 획득하고 있음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우리가 운동론을 말할 때 오히려 기계론적 사고나 운동 논리의 관념에 더 매몰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오늘날과 같이 타락한 종교인들, 정치인들, 그리고 타락한 운동가들이 즐비한 속에서 한 구도자의 떠나는 모습이야말로 많은 감명을 준다. 특히나 공부하는 승려, 기도하는 승려 만나기가 힘든 이 즈음 정진을 마치고 떠나는 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기쁘기 한량 없다.
민주화에 몸 바쳐 싸우는 사람을 보고 좌경이다, 빨갱이다, 불순분자다 하고 매도하는 승려들의 대부분이 종권 다툼과 주지 싸움에 연연해 하는 승려들임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의 진보적 승려들이 그들의 비난에 가슴 아픔을 느낄 것이 아니라, 바로 산중에서 정진하는 승려들의 수행하는 정신을 실천 속에서 나투어야 할 것이다. 저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최루탄 속에서도 고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넉넉한 미소도 배워야 할 것이다.
새로운 법열로 산문을 나서는 나의 도반, 선배 스님들께 존경과 흠모를 드리며 우리에게도 그 법열의 기쁨을 나눠 주기를 갈망한다.
떠나는 자들이여 만민의 스승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