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자는 북천축국(北天竺國)사람으로 지혜가 출중해 교화한 이의 수가 한량이 없었다. 그가 말년에 나열성(羅閱城)에 머물며 돈교(頓敎)를 드날리던 때이다.
그 지역에서 수행하는 무리들은 오직 변론만을 숭상하였다. 그 무리들의 지도자인 바수반두(婆修盤頭)는 늘 하루에 한 끼니만 먹고 눕지 않고 여섯 차례 예불하며 청정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많은 이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존자가 그를 제도하고자 하여 그 무리들에게 물었다. “이 변행두타(遍行頭陀; 바수반두)가 아무리 그런 행을 닦은들 불도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그 무리들이 대답하기를 “우리 스승이 정진하거늘 어찌 옳지 못하다 하는가.” “그대들의 스승은 도와는 멀다. 설사 고행하기를 천만억 겁을 한다 하더라도 그 모두가 허망할 뿐이다.” “그러면 존자께서는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웃으십니까?”
“나는 도를 구하지는 않으나 뒤바뀌지 않고, 부처에게 절을 하지 않으나 교만하지는 않고, 오래 앉아 있지 않으나 게으르지는 않고, 한끼니만을 먹는 것은 아니나 잡되게 먹지는 않고, 만족함을 모르나 탐하지는 않나니, 마음에 희망하는 바가 없는 것을 도라 한다.”
무리 속에서 이말을 들은 변행두타는 무루의 지혜를 일으키어 기꺼이 찬탄하였다. 존자가 이어 말하였다. “나의 말은 알겠는가. 내가 그렇게 하는 까닭은 도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마치 활시위가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는 것 같으므로 내가 찬성하지 않는 바이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대중들을 안락한 경지에 머무르게 하고, 부처 지혜에 들게 하였다. 존자는 바수반두에게 법을 전하며 게송으로 말했다.
말이 떨어지자 무생에 합하면
법계의 성품과 같게 되나니
만일에 이와 같이 이해하면
현실과 진리는 통달해 마치리
존자가 게송을 마치고 나서 앉은 자리에서 고요히 열반에 드니, 화장하여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 때는 곧 후한(後漢) 명제(明帝) 십칠년 갑술(甲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