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의 병풍 속 이 그림들을 보면 도대체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번번히 빠져 들어간다. 어느새 머리 한 구석에 박혀버린 이 그림들은 나에겐 아직도 그 의미를 풀어내지 못한 어려운 수학문제이다. 세 폭의 병풍으로 엮여있는 학鶴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원숭이 모자母子(관음원학觀音猿鶴) 이 세 가지 주제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이 하나의 공간에서 혹은 각기 전혀 다른 공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견 질서 정연한 이 그림을 대하는 나는 마치 퍼즐을 푸는 어린 아이 같은 심정이 되어 병풍 속 그림을 하나 하나 따로 떼어 감상하고, 혹은 두 개씩 붙여보기도, 세 개를 붙이거나 원래의 위치를 바꿔놓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추리해보고 고민해 보기를 벌써 십 오년이 되었다.
이 그림을 처음 대한 것이 내가 석사과정에서 중국회화사를 배울 때니 그 후로 십 오년은 족히 지났다. 이제 막 미술사에 입문한 초심자였던 나는 중국회화도록에서 만난 거칠고 호방한 붓질의 선화나 신문인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명대의 서위(徐渭,1521~1593), 청대의 팔대산인(八大山人, 1652경~1705경)이 그런 부류의 화가였다. 이때 처음 만난 선화禪畵라고 하는 알쏭달쏭한 그림들에 애매한 호감을 느끼면서 정통문인화의 점잖은 붓질은 왠지 고리타분하고 촌스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조적으로 선화들이 지닌 일탈성逸脫性에 은근히 마음이 갔던 그런 시절이었다. 선화의 매력 중에 하나인 즉각적이고 대담하면서도 우연한 필법은 청년의 기질 그대로이다. 아마도 그 때의 내 마음이 그랬으려니 싶다. 나도 역시 젊었을 때였으니까.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선화들을 보면서 뭔지 몰라도 속이 다 시원하다고 감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화가가 바로 남송대 활약한 목계(牧溪, 1225~1265), 법상法常이다.
목계 법상스님하면 남송대 혹은 전 시대를 걸친 대표적인 선화가禪畵家이고, 대표작이라면 역시 이 그림들을 수위에 꼽는다. 대표적인 선화가인 목계가 그린 <관음원학도>는 선화의 반전에 가깝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들은 선화가 지닌 빠른 붓놀림, 우연한 묵의 번짐 그런 것들하고는 거리가 멀다. 꽤 꼼꼼하게 채워진 학 한 마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 새끼 원숭이를 안고 나무에 올라가 있는 어미 원숭이가 이 그림의 주된 스토리 라인을 이루고 있다. 배경은 대숲이거나, 산 속의 절벽, 오래된 소나무이다. 안개 낀 대 숲 사이에 학은 소리를 내 우는 듯한 모습이다. 학려鶴唳, 학의 울음 소리를 특별히 려唳라고 하지만 학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천태 지의 스님의 시 중에 “학의 울음 목이 메이고(陽鳥啼聲噎), 복사꽃 피어 환하게 웃고 있네(桃花笑瞼開)”라는 대목은 이 그림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학은 신선들과 노니는 도계道界의 중요한 동물이기도 하다. 한편 습기 가득한 대기 속 높은 고목 위 원숭이 모자의 애정은 아주 각별해 보이지만 어미는 긴 팔로 어린 새끼를 감싸 안고 있는 장면이 마치 채 버리지 못한 집착의 한 모습 같아 못내 맘이 편하지는 않다. 원숭이의 모습에서 우리네 삶을 그려야하는 것일까. 그 사이에서 명상에 든 관세음보살은 흰 옷에 높은 관을 쓰기는 했으나 중생와 삶과 신선의 수행 가운데서 어떤 생각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선화의 대표 선수인 이 작품을 다루지 못하고 주변으로 변죽만 울렸던 것은 아직도 나에겐 이 그림이 숙제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 그림을 집어든 것은 마치 숙제와 같았던 의미를 풀어서도 아니고, 그것를 풀고자 하는 마음이 동해서도 아니다. 아직도 이 그림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있다.
너무나 연관성이 없는 이 그림의 주제들은 연관성이 없어서 오히려 강한 유대감과 모종의 이야기가 있음직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선화의 화두들이 그렇듯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알고리즘들이 진실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앞 이빨에 돋은 터럭(판치생모板齒生毛)의 화두話頭를 떠올리게 된 것은 우연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