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은 두 가지였다. 누가 회장이 되느냐가 첫 번째. 그동안 비구니회는 경선이 아니라 추대로써 회장을 뽑았다. 이번처럼 경선을 치르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후보로 출마한 두 스님 모두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공약을 발표하는 등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처음에는 경선이 익숙치 않아서인지 두 후보 모두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관심은 처음 치러지는 경선을 잘 치러낼 수 있겠느냐에 모아졌다. 비구니회는 총회 1주일 전에 운영위원회를 열어 선거관리 규칙을 만들었다. 조계종 승려증을 가진 비구니스님들로 징계 중에 있지 않으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두 후보 측에서 선거관리위원을 추천해 선거관리를 하기로 했다.
회장을 뽑긴 했으나, 과정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교계의 한 언론은 ‘아름다운 선거, 미숙한 운영은 논란거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기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한 스님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투표함에 넣었다. 이 와중에 투표를 포기한 스님은 90표였다. 현장에서 기권한 것이다. 일부는 같이 온 스님들의 표까지 함께 접어 뭉텅이로 투표용지를 투입했다. 무기명 비밀투표의 원칙이 깨졌다”고 당시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본 스님과 기자들은 비구스님들도 해내지 못한 직선제를 비구니스님들이 해낸 것에 놀라워했다. 직선제에 대한 일부의 우려와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btnnews.tv, 2011. 10.18]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로 의미를 부여한다. 정치행위의 핵심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M. 뒤베르제는 정치를 투쟁보다는 통합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정치에 관하여 생각하기 시작한 이래 인간은 전적으로 다른 두 개의 정치해석 사이에서 방황하여 왔다. 그중 하나의 해석에 따르면, 정치는 투쟁이고 전투이다. 즉, 권력을 장악한 자는 권력에 의해서 사회에서 그들의 지배를 보장하고 잉기을 얻어낸다. 다른 하나의 해석에 따르면, 정치는 질서와 정의를 이행하려고 하는 노력이고, 거기에서의 권력은 사적인 이익의 압력에 대항하여 일반의 이익과 공동선을 보장하는 것이다.”[정치란 무엇인가, 배영동 옮김, 나남출판, 239쪽]
정치를 보는 불교의 관점에서 멀지 않다. 집단을 유지,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종 의사결정의 권한을 지닌 우두머리를 불가피하게 필요로 한다. 불교에서는 지도자를 사회계약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즉 많은 이들이 지도자에게 권한을 일시적으로 위임해 집단을 유지 운영토록 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지도자에게 무한의 권한의 맡기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의사결정의 방법, 과정에 대한 대중의 합의가 우선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원만하게 진행하고, 합의된 약속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도자의 역할로 한정하고 있다.
이번 비구니회장을 뽑는 선거는 종단의 선거제도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등 중앙종무기관의 장, 대의기구의 대표인 중앙종회의장 등을 여러 방법에 의해 뽑는다. 특히 총무원장을 뽑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다. 직선제 제안이 대표적인 논점이다. 현재의 총무원장 선출 방법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에서 10명씩 뽑는 선거인단이 총무원장을 뽑는다. 이 제도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과열을 막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반면, 종도들의 대표를 뽑는 것임에도 종도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직선제와 현행의 제도를 단순 비교해 ‘이것이 좋다’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문제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냐, 종도 의사의 반영이냐는 둘 다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가치이다.
이웃 종단의 제도를 살펴보면, 태고종은 조계종처럼 중앙종회와 지방종무원에서 뽑은 선거인단이 총무원장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7월 개정했는데, 조계종의 제도와 흡사하다. 천태종은 종정이 총무원장을 지명하면, 대의기구인 종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 종정이 임명한다. 사실상 종정이 지명하는 방법이다. 진각종은 조계종과 태고종, 천태종의 방법과 상당히 다르다. 우선 출마자가 없다. 따라서 선거운동도 없다. 법랍 30년 이상의 자격을 갖추면 누구든지 통리원장 후보가 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종의회 의원들이 기명하며, 마침내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획득한 정사가 통리원장이 된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최근 떠오른 것은 몇 계파의 합의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계파는 종도들의 지지에 의해 운영되는 그룹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종도들의 의사보다 우선 관철된다. 조계종에는 현재 5개의 계파가 활동하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면, 3개 계파의 대표가 합의하면 선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총무원장을 뽑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종단의 중요 사항도 마찬가지다. 계파의 의도를 드러내어 비판의 장에 세우는 언론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종단 사정이다보니 과두적 지배가 공고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종회도 계파에 속한 종회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어 대의성이 약화된 상태다. 특히 뒤베르제가 말하듯 “질서와 정의를 이행하려고 하는 노력”에서 멀어지면 투쟁으로 치닫던지, 계파간 이해관계의 조정에 머문다. 종도들의 요구가 끼어들 여지가 점점 좁아진다.
과두적 지배 상황이 지속되면 총무원과 종도들이 분리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총무원은 대내외적으로 종단을 대표하며, 각종 사업을 시행하는 핵심적인 기관이며, 대표성과 실행력의 원천은 종도들이다. 그런데 종도들이 총무원으로부터 멀어지면, 총무원의 위상이 약화되고, 이는 조계종은 물론 불교의 사회적 역량의 감소로 이어진다.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비구니회 선거는 투표 과정의 문제점이 있긴 했지만, 혼란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먼 지역에서 비구니회관까지 오느라 여비가 들었겠지만, 재정적인 부담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종단의 대표인 총무원장을 뽑는 제도를 지금의 선거인단제에서 직선제로 개선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수 종도들의 의사가 집약된 결과로써 뽑힌 총무원장은 대표성이 한층 커지며, 종도들의 관심과 참여도도 높아질 것이다.
근래 총무원장 직선제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700명 넘는 스님들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불교사회연구소에서 중앙종회에 총무원장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제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방안들이 제안될 것으로 보인다. 종단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활발한 논의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