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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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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명신┃해인사 승가대학 2학년 2011년 11월 357호

지금 해인사는 축제가 한창이다.
푸른 빛 뚝뚝 떨어질 듯한 가을 하늘 아래 산사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천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해인사는 넉넉한 자리를 마련했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승속이 어우러져 팔만대장경과 해인사의 풍광, 더 나아가 우리불교를 마음껏 누려보자는 것이니만큼 조금의 소란스러움은 눈감아줘도 좋겠다. 각종 이벤트는 물론 ‘소통’을 주제로 한 해인아트 축제가 열려서 세계 각국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들도 가야 행사장과 해인사로 들어오는 길목, 박물관과 해인사 경내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다. 단순한 종교적 행사의 범주를 벗어나서 우리 민족에게 팔만대장경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알아보자는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 해인사 장경판전은 백 년 동안 외부공개가 금지된다고 하니 열일 제쳐두고 해인사를 찾아야할 이유도 분명한 셈이다.
이런 행사는 굳이 주객을 따질 필요야 없겠지만 이왕이면 마음 편히 손님의 입장에서 누려봄직한데, 해인사 강원 학인인 나로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부담감을 조금은 가지고 참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침 일찍 도량을 청소하고 수업 시간 외에는 절을 찾는 손님들을 안내하는 소임을 맡아서 나름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도량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금한 것 투성이다. 일주문의 현판이 무슨 뜻인지를 물어보는 똘망똘망한 눈빛의 아이는 내게 그 의미를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부처님 상의 머리가 왜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 항의조로 물어보시는 신심 깊은 관람객들은 나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가야의 본행사장에 마련해놓은 팔만대장경을 직접 볼 수 있는 부스는 사람들이 두 세시간씩 기다려서야 간신히 친견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만하다. 하나 짚을 것은 해인 아트축제에 참가한 작가들이 불교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예술작품으로 표현해 놓은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 또한 있었다는 것이다. 불상을 반으로 잘라놓은 작품에 대해서 한 노스님께선 큰 절에서 전시할 작품은 아니라며 언짢아하시기도 했다. 예술이라곤 하지만 그 모양새가 불경스럽게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또 절집의 문화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관람객들이 저지르는 자잘한 실수들이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행사에 전시된 예술품은 호평을 받는 분위기였다. 보경당에 설치해 놓았던 얼음부처님과 성보 박물관 내부 전시물인 ‘기계 관세음보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고 모여 있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예술작품 외에도 누려볼 일들은 많다. 새롭게 단장해서 선보이는 소리길,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홍류동 계곡, 고풍스러운 암자, 가야산의 웅장한 풍경, 그리고 해인사를 둘러싼 모든 것들. 이 깊어가는 가을을 헤치고 절을 찾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되짚어볼 것이 있다. 축제의 떠들썩함 속에 자칫 묻혀버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이래 천년을 기념하는 이번 행사는 축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대장경이 이어져 온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감탄에 그친다면 우리는 본질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판전에 보관된 채 풍파에 낡아 가는 경판을 더 오래 보존하려는 노력은 동판불사 등의 방법으로 메울 수 있을지 모른다. 기술의 발달은 물질의 생명을 더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앞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장경에 녹아있는 다른 요소들은 단순히 그런 차원으론 해결될 수 없다.
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는 명실상부한 법보종찰이다. 팔만대장경으로 상징되는 법보종찰이라는 개념은 부처님의 정법을 호지하는 사찰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적 유물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지금 우리에게 부처님의 법이란 어떤 것일까. 지금 해인사에 살고 있는 나는, 해인사의 대중은, 동시대의 우리 불자 모두는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지, 그러한 정법을 어떻게 지켜나갈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일회성 행사가 될지도 모르는 축제라는 장에서 즐기고 기뻐하는 것을 떠나서 진정한 법보 종찰의 위상 정립, 한국불교의 미래, 부처님 법의 수호를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팔만대장경이라는 틀에만 국한해서 사유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이해, 현재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것을 토대로 한 미래에 대한 조망은 온전한 결과물을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축제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해내야 한다. 부처님의 법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현재에 이르러 다양한 모습으로 퍼져 나가 있으며,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믿고 표현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자랑할 만한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가 부처님의 법을 믿고 이어가면서 그것을 온전히 실천해 내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지금 현재 우리 해인사는 진정한 법보로서 기능하고 있는가라는 절절한 자기반성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것은 분명하지 않겠는가.
무릇 종교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무엇인가.
이번 가을, 축제를 찾은 모든 이가 소중한 추억과 더불어 대장경을 품은 해인사를 각자의 가슴에 품고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모두의 마음속에서 부처님 법의 씨앗으로 자라나길 발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