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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의 황제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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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윤한상┃장경판전 근무자 2011년 11월 357호

사시사철 창문이 개방되어 있는 장경판전에는 수백 년 동안 날짐승이 침범하지 못하고 쥐 한 마리도 들락거리지 않는다. 거미가 줄을 치는 일이 없으며 火. 水. 風 3災가 들지 않는다.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장경판전에는 옛날부터 이와 같은 신비스러운 기담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를 증명 하듯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 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인문 지리지)에서 천년이 지났어도 판이 새로 새긴 듯 하고 나는 새들도 이 집을 피해가며 기와지붕에 앉지 않으니 실로 이상한 일이다 하였다.

아름다운 별 지구는 20세기 인류의 눈부신 과학 문명 발달과 함께 진행된 개발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春夏秋冬 사계절이 뚜렷하고 혹한의 동절기에도 三寒四溫의 기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우리 錦繡江山도 이상 기후를 겪고 있다.

천하명당 이곳 장경판전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점차 느낀다. 수백 년 동안 날짐승이 침범하지 않는 전통 속에서도 유일하게 예외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참새목에 속하는 딱새가 그 주인공이다. 언제부터 인가 늦은 봄쯤이면 딱새 한마리가 매년 판전 안에서 부화를 한다. 장경판전 주변에 서식하는 주인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장경판전 108기둥 주춧돌 위에서 기둥 밑 부분과 벽 사이의 틈새에 자리 잡고 판전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자기 영역을 지켜오고 있는 흑 거미가 있다. 이 검은 거미는 주춧돌의 짠 소금 기운에 잘 적응해 오면서 주변에 돌아다니는 벌래들을 잡아먹는 등 자신의 영역에서 생활하다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나 새들이 나타나면 얼른 기둥 사이의 자기 영지로 들어가 버린다. 이른 아침 주춧돌 부근에는 흑거미 4개의 다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간혹 보게 되는데 딱새나 다른 작은 새들에게 몸통은 잡아먹히고 다리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아주 작은 땅벌이 산다. 이 땅벌은 개미처럼 생겼으며 몸통 부위에 날개가 붙어 있는데 판전 통로 바닥에 몸을 비비 비틀면서 굴을 파고 들어가서 살기도 하고 통로의 구석진 곳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무리를 이루어 사는 놈들도 있으나 전체 숫자는 몇 마리 되지 않으며 판전 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대추벌도 간혹 판전처마에 집을 짓는 경우가 있으나 판전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다람쥐와 청설모가 있다 다람쥐는 판전 주변의 나무 밑 부분을 오르내리거나 판전 담장을 넘나들기도 한다. 가을철이면 담장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판전 통로에 간혹 참새보다 조금 많은 정도의 똥을 싸기도 하는데 큰 새나 주변에 돌아다니는 고양이에게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판전 안에는 절대 들어가는 일이 없다.

청설모는 법보전 뒤쪽 수미정상탑 주변 소나무 참나무 등의 높은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기 때문에 판전 담장 안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청설모 역시 큰 새와 주변에 돌아다니는 고양이에게 위협을 받고 있지만 같은 자연 조건에 살면서도 항상 불안한 모습의 다람쥐에 비해서는 보다 여유로운 모습이 대조적이다.

그 밖에 까마귀 까치 비둘기 같은 덩치 큰 새들과 참새목의 작은 새 등 각종 조류들이 살고 있다. 까마귀와 까치는 주로 나뭇가지에서 지내며 땅바닥에도 자주 내려오지만 크게 유해로운 점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비둘기는 법당에 몰래 들어와서 공양미를 마구 쪼아 먹거나 간혹 판전 처마 밑의 기둥 꼭대기 위 주두 양쪽 작은 공간에 올라 알을 낳기도(1회 목격됨) 하는 등 가장 유해 조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새목의 조류 등 작은 새들은 판전 주변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사방에 설치되어 있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나비와 벌래 들이 많이 모여든다. 작은 새들은 이 벌래와 나비들을 잡아먹으며 판전 주변 청소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경판전 주변에 서식하는 조수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주인공은 딱새라고 할 수 있다. 딱새는 도시 변두리 농촌 정원이나 인가 근처에 서식하는 참새목 딱새 과 조류이며 혼자 다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고 날렵한 몸매로 좁은 판전 살창 사이를 더나 더는데 평상시에 는 들어오지 않고 부화기에만 들어와 동사간전과 법보전. 수다라장 안의 높은 보위에서 부화를 하는 것이 지난 3년 연속 목격 되었다.

딱새는 지금까지 판전 안에서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유일한 새다. 이 작고 아름답게 생긴 무법자는 수백 년 동안 날짐승이 들어오는 일이 없었던 신성하고 존엄한 장경판전에서 감히 부화를 하여 전통을 깨트리며 황제 같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장경판전에도 어떤 해에는 주변 나무들과 판전 벽에 나방들이 하얗게 달라붙는 등 생태계 이상 조짐을 보일 때가 있다. 잘라내고 헐고 새로 만들며 편리함과 화려함을 향해 끝없이 진행되는 현대인의 물질적 개발이 가져온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년 전통문화의 상징인 사찰들이 막상 현장에 와서 보면 전국 어디를 가나 새 건물들이 많아서 아쉽다고 관광객들은 전한다. 지금처럼 관광지로 변신하지 않고 고요한 산사의 적막을 깨는 그윽한 목탁소리만 들리던 천 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수는 없지만 지금 모습을 천년 뒤에도 이대로 볼 수 있도록 더 이상 손대지 않고 보존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