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아, 일찍 들어오시게.”
내가 나가는 소리를 들으신 할머니는 잠자리에서도 걱정이시다. 어린 시절 나를 가르치셨던 칼칼한 목소리로 일침을 놓으신다.
“네” 하고 짧게 대답을 하고 스쿠터를 대문 밖으로 끌고 나선다.
집 밖을 나서면 나는 과거로 들어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 때가 있다. 이곳은 내 유년의 추억이 살아 있는 곳이다.
골목은 장정 두 사람이 같이 걸으면 꽉 찬다. 골목은 사람들의 집을 따라 멋대로 뻗어 있어서 밤마다 스쿠터를 밀고 나갈 때면 동물의 매끄러운 몸통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골목은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이 ‘달동네’라고 부르는 너저분한 곳이다. 돈푼께나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군 부대가 떠나고 나면 ‘노른자위’가 되는 돈 덩어리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밖에 모른다. 이골목이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곳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이골목 안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은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매일 매일 새로운 풍경과 빛깔을 입는다. 특히 내가 ‘날라리(내 친구 인경 씨가 부쳐준 별명이다)’처럼 도시의 밤을 찾아 나가는 시간이면 골목은 마치 한 마리의 동물처럼 살아 움직인다. 사람의 키를 조금 넘는 처마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부드러운 불빛, 빛 사이를 채우는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와 다정한 말소리, 소리들을 이어주는 밥 냄새와 사람들의 냄새는 어렴풋한 행복의 꿈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나를 감동시킨다. 스쿠터의 엔진을 끄고 이 골목길을 내리고 오르는 것도 꿈과 같은 현실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내가 아들 민용(가명)이와 함께 이곳에 찾아온 것은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골목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
민용이가 6살이 되던 해였다. 나는 민용이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아내에게 저녁 때 애를 재우고 내가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는 아이를 깨워 놓게 했다. 30분이면 30분을, 1시간이면 1시간을 둘이서 레슬링도 하고, 책도 같이 읽고, 밤참도 같이 먹곤 했다. 아내는 내가 유난을 떤다고 싫어했고, 자다가 깨야하는 민용이도 자주 신경질을 내기는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면 자는 아들만 봐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함께 동화책을 보던 민용이는 주변을 살피더니 제 엄마 몰래 비밀이야기를 할 때 늘 그러듯이 내 귀에다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다. “아빠, 삼촌(?)이 엄마 뺨 때렸어.”
몇 달 후, 나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민용이를 데리고 나를 길러주신 할머니 댁으로 들어왔다. 겉으로는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내가 희생해서 들어온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작은 아버지들과 작은 어머니들 중 어느 분도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것을 꺼려하지는 않았지만, 평생을 사신 집에서 돌아가시기를 원하는 할머니의 뜻을 받들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거취 문제로 가족 간에 의견이 분분하던 때, 나는 하던 카페도 집어치우고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민용이는 더욱 심각했다. 갑자기 이 세상 전부였던 엄마가 없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직감적으로 그리고 어린아이다운 환상까지 작용해서 이 모든 불행을 자기 탓인 것처럼 여겼다. 밤에 민용이는 몰래 기도를 했다. 자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불행하다고. 민용이는 침대에서 몰래 울었다. 죽고 싶다고. 아이를 살려야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를 살릴 수가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인 나 역시 병들어 있었다. 무엇인가를 하려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할머니가 손을 내미셨다.
“동석(가명)아, 네 아들 데리고 할미한테 오거라.”
할머니 댁에 들어와서 8년을 민용이와 같이 보냈다. 이골목 안에서 민용이와 나는 솔직하게 사는 것을 배웠다. 이 세상을 향해 비밀 없이 산다는 것이 여기서는 참 쉬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처럼 골목 안 사람들의 삶도 얼키설키 이어져 있어서 집안의 비밀을 지키려해도 지킬 수가 없었다. 아이와 나의 상처는 숨기고 싶은 치부가 아니었다. 이 골목 안에서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일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들의 안쓰러운 눈빛과 수줍게 내미는 반찬 한 보시기 속에서 감싸 안아지는 대수롭지 않은 상처였다. 우리가 점점 나아지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 병약해지셨다. 나는 전적으로 집안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매달렸다. 민용이의 초등학교 6년 동안 나는 직업을 갖지 않았다. 월세가 들어오는 것에 맞추어서 알뜰하게 살림을 했다. 민용이는 학원 같은 데는 안보내고 내가 직접 가르쳤다. 민용이를 가르치는 김에 동네 또래 아이들을 불러 같이 가르쳤다. 골목안 사람들은 나를 ‘선생 아저씨’라고 불렀고, 나는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들 틈에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이 골목에서의 일상은 내가 품은 독을 없애주는 해독제가 되었다. 어느덧 나는 예전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그에게 차 한 잔과 책 한권을 사주기 위해, 아이와 할머니가 잠들었을 때, 스쿠터를 타고 도시의 밤으로 나서게 되었다. 내 사정을 뻔히 아는 오랜 친구 인경 씨는 “동석 씨는 착한 사람이야, ‘밖’이라는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철통같은 갑옷을 입고, 누구도 벗겨낼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있기에 그가 진짜 누구인지 알 수 없어. 그가 누구인지는 스스로 무장해제한 ‘안’에서만 알 수 있는데, 동석 씨는 용서와 위로를 할 줄 아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쑥스럽지만 지금의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동의한다.
오늘도 나는 내 유년의 골목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위로를 받는다. 나는 문득 달동네 위로 떠 있는 검은 하늘을 본다. 도시에서는 더 이상 별을 볼 수가 없다. 어린 시절처럼 별이 뜨는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별 하나는 내 아들 민용이 별이 되었을 텐데…. 대신에 검은 하늘 전부가 민용이 얼굴이 된다. 필리핀 기숙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민용이와 하루에 한번은 전화를 하는데도 걱정이다. 그 아이는 내 ‘살 속의 가시’이다.
사랑을 알기도 전에 사랑의 이면을 겪은 아이가 그만의 사랑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의심하고, 얼마나 많은 날을 괴로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인 것이 너무 미안하다. 매일 밤마다 아이는 할머니를 안고 잤다. 할머니의 말라붙은 젖가슴에서 제 어미의 온기를 기억했을 것이다. 허기진 그리움을 먼저 알아버린 그 아이의 작은 몸을 이 세상 무엇이 채워줄까를 생각하면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인 것이 너무나도 염치가 없다.
밤하늘을 가득채운 민용이 얼굴을 보며, 아이의 얼굴 속에 숨어있는 별 하나에게 말한다.
“별아, 민용이가 사는 필리핀 밤하늘에서 그 아이를 찾아주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소년에게 친절하고 아름다운 예정을 마련해 주렴.
그 아이의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가장 먼 곳에 대한 사랑’을 알려주련.
그럼 아이의 채워지지 않은 그리움은 사랑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어 그의 몸을 울릴텐데….”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설픈 아버지이겠지만 아들에 대한 바람만은 어리석고 싶지 않다. 나의 바람이 아이가 살고 있는 곳, 밤하늘의 별이 되어 벌써 사랑을 믿지 않으려는 소년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기를 바란다. 소년이 무엇에 이끌린 듯이 눈을 들어 별을 보았을 때, 세상에 대한 사랑이 뭉클 피어오르기를 바란다. 그 순간 소년의 깨어진 마음이 별빛으로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매일 빈다. 민용이가 별빛이 반짝이는 곳, 옳고 그름도 넘어선 그 곳에서, 사랑을 만나기를 빈다. 그래서 민용이가 사랑으로 빛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