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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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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1년 11월 357호

세월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는 때는 역시 초가을인 것 같다. 이맘때쯤이면 간절기 이불을 겨울 이불로 갈고, 겨우내 창고 속에 들어가 있던 난로도 꺼내게 된다. 이불 두께가 두꺼워 질수록 올해 한해도 마무리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길거리에 하나 둘 씩 떨어진 낙엽 잎사귀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이불두께’하면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웠던 때가 두 번 정도 있었으니, 모두 중앙 아시아에서였다. 한번은 2005년 키르기즈스탄에서였고, 두 번째는 그 이듬해인 2006년 겨울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폴리홈리에서였다. 폴리홈리에서의 겨울은 작년에 언급을 했으니, 이번에는 키르기즈스탄에서의 일화를 전하려한다.
벌써 6년 전 일이지만 나에게는 기억이 생생하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남쪽에 위치한 키르기즈스탄의 경우, 위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텐샨산맥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우리나라보다 온도는 조금 낮다. 그때는 7월이었지만, 고도 약 4천 미터였고, 지상보다도 섭씨 10도는 더 낮았다. 그 당시 나는 수도인 비슈케크(Bishkek)에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30년이 넘은 키르기즈항공의 구소련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들어가기가 겁이 나서 육로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키르기즈는 중국과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비슈케크에서 며칠 육로로 여행하다보면 국경인 투루갓 패스를 통과, 위구르족이 사는 신장 자치구의 카슈카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3박4일 정도 걸린 짧은 여정이었지만, 송콜에서의 기억 때문에 더 길게 느껴졌다.
비슈케크에서 차로 출발, 중간에 코추코르(Kochkor)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었고, 그 다음 정착지는 송콜 (SongKöl) 이라는 호숫가였다. 호숫가에서 어떻게 하룻밤을 지샜었는가하면, 그 옆에 유목민들이 유르트 (Yurt)라는 텐트를 치고 관광객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내가 머문 한 유르트에는 아주 아름다운 키르기즈 여인이 아들을 두 명을 낳아 기르고 있었고, 주변에 말과 양 등 가축들을 키우고 간간히 관광객을 맞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르트 안에는 철로 된 난로가 항상 있었는데, 내가 머문 가장 큰 유르트 안에는 이상하게도 난로가 없었으며, 가족들은 그 옆에 있는 작은 유르트 안에서 모두 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 있는 이불 3겹과 동물가죽같은 것을 덮었음에도 불구, 호수 옆 영하 3도의 온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새웠다. 나를 송콜로 데려다 준 러시아인 운전수는 자신의 차 안에서 자고 나는 유르트에서 잤지만 너무 추워서 속으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추워서 잠이 오질 않을 정도였다.
다행히 아침에 조금 잠을 자긴 했지만, 이러다가 동사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추위를 느꼈던 것이다.
어쨌든 나와 운전수는 아침 일찍 출발, 나른 (Naryn)이라는 도시로 갔고, 그 이후부터는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과 차를 같이 타고 키르기즈에서 중국 국경으로 넘어갔다.
매해 초겨울이 되면 어쨌든 그 때 키르기즈의 송콜에서 고생하던 생각이 난다. 그 때 시간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추운 밤도 지나가 이제는 어언 6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여섯 번 해가 바뀌는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이듬해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갈 결심을 했고, 그 다음해에도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사진작업을 해왔다. 지금은 서울 한 오피스텔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생각할수록 세월의 무상함은 무시할 수 없다. 집 앞 가로수 잎의 색깔이 바뀔수록, 도로변 나뭇잎이 하나둘씩 떨어질수록, 한 해는 가고 그 다음해를 맞이하게 된다. 나무도 봄에 새싹을 틔운 뒤 가을에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나게 되니, 한 살을 더 먹는 셈이다. 나의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가. 오늘을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