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果報를 정보正報와 의보依報로 분류한다. 환경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정보라고 하고, 정보가 의지하고 살아가는 환경과 세간을 의보라고 한다. 의보의 의依는 의지한다는 뜻이며 보報는 과보라는 뜻이며, 정보는 정인正因의 업보로서 수생受生하는 신심身心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보를 화엄경에서는 세계해世界海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세계해란 우리의 생활환경을 가리키는 것이며, 우리들은 이러한 세계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이다. 보살의 안목에서 보자면 온 우주 법계法界가 바로 세계해이다.
정보가 의지하고 살아가는 환경이 의보이며, 이러한 의보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도 역시 정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의보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정보는 보살의 경계에 올라선, 보살행과 보살도를 완성한 정보일 것이다.
그것을 일러서 일체보살一切菩薩 엄정국토원력嚴淨國土願力, 모든 보살들의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려는 원력이라고 말한다.
보살이라면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의 온 힘을 기울여서 의보인 환경을 좋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원력을 실행實行한다. 그러한 원력에 의해서 이 세상은 더울 때가 되면 덥고, 비가 올 때가 되면 비가 오고, 눈이 나릴 때가 되면 눈이 내린다. 시원할 때가 되면 시원해지고, 추워질 때가 이르면 추워지게 된다. 억지로 힘을 쓰거나 굳이 조작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덥고, 비가 오고, 시원해지고, 추워지고, 눈이 내리는 것은 보살들이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려는 원력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처해진 조건들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해한다면 이상기온이나 지진이나 해일 등으로 피폐해진 의보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정보인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통감해야 하며, 허물어진 자연과 환경을 회복하고 보존하기 위한 실천에 솔선수범하려는 원력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바로 일체보살의 엄정국토원력을 수순隨順하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원력이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생명력이다. 희망과 기대와 원력이야말로 살아가는 보람이 되고, 활발발活潑潑하게 용솟음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정보에 대한 기대와 무한한 가능성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명색이 없고,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고 많은 무수無數한 인연들이 작용하고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보인 것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들까지도 역시 무수한 인연에 의해서 비로소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식한다면, 정보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황폐해진 의보를 회복시키는 것도 정보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정보에 의한 엄정국토,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의지이며 용맹력勇猛力이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계가 청정하다는 심청정국토청정心淸淨國土淸淨의 명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려는 의지와 원력을 지닌 정보의 마음에서 국토를 청정하게 하려는 온갖 행동이 실천되는 것이며, 이러한 실행에 의해서 의보인 온 우주법계와 세계해가 청정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결국 의보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은 정보인 우리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며, 이처럼 세간과 법계를 장엄할 수 있는 원력과 능력을 지닌 정보야말로 진정한 보살이며 진솔한 부처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주체主體로서 의보의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지위地位를 확립하는 방편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임제 선사가 말씀하신 수처작주(隨處作主, 가는 곳마다 참된 주인이 된다면) 입처개진(立處皆眞, 서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도량이 되리라)의 이치이다.
정보로서의 주체성을 확고하게 정립定立하게 되면 어떤 경계, 어떤 순간에도 자타自他를 분리하거나 분별하지 않고 흔들리거나 동요動搖되지 않는, 모든 의보를 향하고 위하는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을 유지하고 시현示顯하는 수처작주와 입처개진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추수와 수확으로 여념이 없이 분주한 농부의 손길에는 새삼스레 의보에게 끝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과 같이, 만산滿山에 홍엽紅葉과 단풍으로 단장한 절경에 감격하는 것도 역시 의보를 향한 기쁨과 찬탄의 표현일 것이다.
나 자신을 정보라고 한다면, 나를 둘러싼 모든 인연과 가족과 주위와 이웃이 모두 의보일 것이다. 내가 의지하고, 나를 의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경과 세간과 세계해에 의지하고 감사하는 것에 못지않게 나와 맺어진 주변의 모든 인연과 존재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정보로서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며, 마음을 청정하게 맑히고 가꾸는 첩경일 것이다.
금수강산을 장엄한 단풍의 행렬로 청정한 국토를 음미하는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심청정국토청정이기 보다는 국토청정심청정이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문愚問이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