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으로 가을빛이 완연하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나는 경주 남산 ‘삼릉에서 용장까지의 유적을 답사하였다.
삼릉에서부터 금오산 쪽으로 올라오면서 옛 신라인들이 조성해 놓은 불교 유적들을 만났다. 깨어진 탑의 조각들과 머리 부분이 없는 불상들이 바위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들을 보고 마음이 아릿하다.
두루뭉술한 큰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년 전의 시대로 잠시 다녀오는 듯 하다. 어떤 불상들은 바위에 전체 모습을 뚜렷하게 새기지 않아 스케치만 해놓은 것 같이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러나 한참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면 바위 위에 새겨놓은 불상들이 바위 속에서부터 나와 모습을 스르르 드러낼 것 같이 보인다. 굴곡이 있는 바위결의 모양이 마치 얇은 커튼을 드리운 것처럼 보인다면 바위 위에 새겨진 불상들은 도리어 커튼 뒤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상들의 모습은 피안의 서방정토세계로부터 나와서 곧 모습을 보일 것 같다. 높은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불상들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하강하는 듯하다. 신라인들은 자연과 어우러지게 불상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새겨 놓았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석불들의 모습을 마음에 담으며 산 능선을 따라 금오산 동쪽에 있는 용장사지로 향했다.
키 작은 소나무와 가을 억새가 어우러진 산 능선이 아늑하다. 가을 햇볕을 따갑게 받으며 길을 가자 용장골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드디어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나타났다. 용장사를 감싸고 뻗은 금오산 동쪽 바위산맥 위에 가장 높게 보이는 봉우리에 탑이 서 있는 것이다.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의 위로는 오직 파란 가을 하늘만 펼쳐져 있다. 5m정도의 작은 탑이지만 단아한 위엄을 가지고 있으며 용장골에 들어서면 어디서나 그 탑의 자태를 볼 수 있다.
탑의 모양은 신라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가탑 양식이다. 하지만 이 탑의 독특한 특징은 하층 기단을 만들지 않고 직접 바위 위에다가 상층기단을 세운 점이다. 바위는 금오산의 한 부분으로 하층기단이 된다. 신라사람들은 왜 하층 기단 없이 탑을 조성했을까? 그것은 신라 하대의 사람들은 탑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수미산을 나타내려는 의지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미산須彌山은 불교의 우주관으로 소우주의 중심이 되는 상상의 산이다. 수미산은 물이 가득한 금륜金輪에 서 있으며 바다 속 깊이 뿌리박고 수면에서 팔만 유순 높이로 솟아 그 정상은 하늘에 닿아 있다. 불교에서 보는 천상 세계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 도리천․야마천․도솔천․낙변화천․타화자재천의 순서로 층층이 부처님 나라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이 석탑은 바로 해발400m 가량 되는 큰 바위산을 하층 기단으로 삼고 있다. 금오산은 바로 팔만 유순由旬의 수미산須彌山이라고 볼 수 있다. 바위산의 산정은 사천왕이 되고 탑의 첫째 기단은 도리천이 되고 그 위로 층층이 쌓은 옥신은 하늘나라의 부처님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신라인들은 높이 5m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탑으로써 하늘세계까지 연결되게 표현한 것이다. 신라인들의 불국토로 향한 맑고 깨끗한 마음이 이러한 오묘한 구상을 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산을 이용하여 탑으로 조성한 의미로 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남산의 자연과 신라인의 신앙과 예술혼이 가미되어 산 정상에 용장사 삼층석탑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탑을 지나 조금 내려오자 용장사터茸長寺地가 나왔다. 용장사는 조선시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이곳 금오산에 머물며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곳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몇 군데의 석축만 남아 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신라의 땅은 여러 세월을 거쳐 조선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한 시대의 회오리 속에 김시습은 속세를 멀리하고 설잠雪岑스님의 모습으로 용장사茸長寺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는 그가 남긴 시 한 편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는 용장사의 정취를 아련히 그려보게 되었다.
용장사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네
의자에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깰 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그는 왜 이곳 남산에 터를 잡고 생활했을까. 수많은 탑과 불상들을 만나며 그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교에서는 천지만물들은 생노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고 본다. 모든 생명체들은 열심히 삶을 살다가 때가 되면 죽음을 맞아 땅에 묻힌다. 영원한 실체로 보이는 물질들조차 긴 시간이 흘러 인연을 다하면 부서지고 다시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끝임 없이 윤회하는 이 진리를 통해서 보면 우리 자신도 한바탕의 꿈처럼 현실을 살고 현실의 끝에서 피안의 세계로 가게 된다. 신라인들은 피안의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을 통하여 현실에서 혜안을 얻고자 하고 나아가 수행하여 자신도 그곳 해탈의 세계로 가고자 했을까. 그들은 자연의 석물들을 이용하여 현실과 피안의 세계를 한 자리에 공존하게 불상과 탑을 장엄해 놓았다.
남산에 와서 어떤 시대의 사상적 이유로 인해서 부서져 버린 유물들과 시간의 흐름에 퇴색되어 사라져 간 유적들을 대하며 형상色이 있음이 서서히 사라짐空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쓸쓸한 마음이 되었다.
용장사지로부터 내려오는 길에는 계곡 물이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 얕게 흐르는 계곡 물에 손을 담갔다. 그 옛날 이곳에서는 신라 승려들의 범패 소리와 용장사 종루에서 푸른 새벽빛을 깨치던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탁 소리를 들으며 이 계곡을 지나 수미산 정상을 향하였을 것이다. 나는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용장사 석탑 쪽을 올려다보았다. 현세와 피안을 연결해주는 탑의 모습은 신라인들의 불국토 염원의 정수처럼 파란 하늘에 햇살을 받으며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단아하고 위엄 있는 탑을 바라보며 신라인들은 수미산 정상인 그곳까지 불심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이제 신라인들의 얼이 담겨 있는 삼층석탑은 산정에서 이 땅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갈 때마다 탑은 점점 작아져 보인다. 탑은 점차 한 점으로 가물거리고 나는 고향집을 바라보듯 아쉬움을 가지고 뒤돌아보며 내려왔다. 산 아래에 이르러 마을이 보이자 나는 과거세와 피안의 미래세가 공존하던 그곳 꿈의 세계로부터 이곳 현실 세계로 빠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옛 신라인들은 서기 어린 골짜기 바위마다 햇볕이 아름답게 부서져 내리는 산허리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부처를 새겼다. 그들은 남산에 와서 부처님을 찾으며 자신들과 닮은 친근한 모습으로 불상들을 조성했을 것이다. 또 그들은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은 세우고 높은 봉으로 여겨지면 탑을 세워 자연의 모습에 조화를 이루면서 남산에 불국토를 조성해 놓았다. 나는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 신라인들이 꿈꾸던 이상 세계를 보았다. 우뚝 솟은 수미산 정상에서 파란 하늘에 닿으며 하얗게 빛나는 탑은 신라인들이 꿈꾸던 불국토 이상세계의 정수精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