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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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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함혜리┃서울신문 문화에디터 2011년 11월 357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어느 가을 날 숲속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나 망설이다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하고 , 다른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시인은 한숨을 쉬면서 회상한다. ‘그것(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여기서 길은 인생의 길을 가리킨다. 인간은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없다.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을 서정적인 시로 제대로 묘사한 것이다. 시에서는 인생행로에 대한 회한이 절절히 묻어난다.
이 시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인생의 고뇌와 인간적 한계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시를 한때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에 공감하지 않는다.

몇 해 전 초파일. 친구와 사찰 참배에 나섰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 경북 문경에 있는 봉암사에서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를 들러 서울로 올라 오는 여정이었다.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니 그렇게 됐다. 하루를 잘 보내고 정선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두 갈래길. 우리는 어느 길을 택할지를 놓고 망설였다. 영월로 가서 서울로 올라가는 방법, 평창으로 가서 영동고속도로를 중간에 타는 방법 등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 평창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길은 너무 멀었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혼자 운전하는 것이 힘이 드는데다 초파일이라 차는 밀렸다. 영월 방향으로 갈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운전대를 놓고 싶어도 옆에 앉은 친구가 운전을 못하니 그럴 수도 없다. 몸이 힘이 드니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치밀었다. 먼길을 달려 해가 져서야 고속도로를 올라탔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해서 차는 그야말로 거북이 걸음이었다.
지칠대로 지쳐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 봤다. 문경에서 봉화를 거쳐 정선으로, 그리고 정선에서 평창으로…. 먼 길을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땅 속 봄기운은 찬란하게 연록 빛으로 산천을 뒤덮고 있었다. 유서 깊은 사찰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맑은 공기를 마셨다. 특히 정선에서 평창까지 가는 길은 가리왕산을 끼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절경이라 일부러라도 찾아가는 명소로 꼽힌다. 그런데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선 탓에 아름다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이 나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던 게 틀림없었다.
순간 도끼가 머리를 때리는 듯한 뉘우침이 찾아왔다. 좀 과장하자면 어리석음에서 깨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까지 뉘우침이 범위를 넓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는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해 일을 한 것이 어느 덧 30년 가까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정말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말할 자신도 없다.
나의 어릴 적부터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의사가 되어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를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기자가 되었고, 항상 ‘이게 아니었는데.. ’ 하면서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친 듯이 살았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해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그날 그 순간 뉘우치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가지 않은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만이 내 앞에 있을 뿐이다. 지금 내가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하리라.

진리란 특별한 것도 비상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일상日常 주변에 있다고 옛 성현들은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의 도처에 스승이 가득하다. 순간순간 보이는 사물들, 만나는 사람들, 겪는 일들이 우리에게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날 그 순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쓸데없는 미련과 집착을 놓아버리고 나서 내 삶은 백팔십도 바뀌었다. 방하착放下着은 이런 데에도 적용이 되었다. 후회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으니 삶을 좀 더 사랑하게 됐고, 내 직업과 일에도 자부심을 갖게 됐다. 버리고 나니 더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이나 아직 오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도, 기대도 하지 않게 됐다. 오직 현재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삶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면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누가 대신 내 인생을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에 얽매여 끌려다니는 삶을 택할 것인가, 주체적으로 깨어있는 정신으로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 답은 명백하다. 가지 않은 길이 내게 가르쳐준 값진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