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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와 나의 할머니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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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이연환┃농협 합천군지부 총무팀 2011년 08월 354호

내 어렸을 적 배게 곁 추억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 젖 먹을 때는 어머니가 계셨지만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을 헤매고 있을 쯤이면 먼 곳 산사에서 들려오는 독경 소리처럼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사를 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가 다니셨기 때문에 젖을 먹을 때는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눈을 떠 면 항상 할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뜰 때 쯤 들려오는 독경소리는 실제로 우리 할머니가 외시던 염불 소리였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그것이 염불인지도 몰랐고 그저 무슨 가락을 읊는 줄 알았다. 내가 잠을 깨고도 30분을 하기도 두 시간도 넘게 염불을 외시고 계셨다.
나는 눈을 떠 일어나 정신이 들 때까지는 그 소리를 들어주었지만 정신 차리고 나면 내 볼일 보러 마당에 나가 놀기가 일쑤였으니 할머니는 참 외로운 염불을 지극정성으로 외셨던 것이다. 좀 더 곁에 기대어 들어주고 마당에 나가 놀았을 걸….
지금은 아무리 유명한 고승의 불경 소리보다 할머니의 염불 소리가 듣고 싶다. 그 때는 왜 한 번도 녹음을 해 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이미 사라진 일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염불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나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고 다만, 염불이 끝나고 나 뒤 한 이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내가 죽게 되거든 딱 3일만 누웠다가 가게 해주시기를 비나이다. 나무아미타불!”
젖먹이 시절부터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한참의 세월 동안 들었으니 그 시절 내 귀에 박힌 명언 한 구절이 할머니의 소원 비는 말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겨울 어느 날 돌아 가셨다. 그 때의 광경을 잊을 만도 한 일인데 나는 그 것이 어제 일인 듯, 영화 촬영 메가폰을 잡아도 그 모습을 그대로 재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할머니는 84세의 고령이었지만 허리 하나 굽지를 않으셨고 키도 165센티는 넘는 신장을 유지 하셨다. 병치레도 않으셨으니, 그 날도 할머니는 마당에 나가 땅콩을 까서 채질하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옆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 오후 한 세시쯤 될 무렵 할머니가 꽂꽂한 자세로 방에 들어가 손수 반듯이 자리 펴고 누우시더니 어머니를 불러 “쌀 두세 가마 방아를 찌어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머니 쌀이 아직 세말이나 남아 있는데 방아를 그리 많이 찌어라 하십니까?”고 말씀을 올리셨다. 그러고는 할머니는 말씀을 않으셨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저 시키는 대로 구루마에 나락 싣고 가서 방아를 찌어 오셨다.
그날 밤부터 할머니는 누워서 일어나시지도 않고 곡기도 멀리 하셨다. 앓는 소리도 없었고 아버지가 의사를 불러 올까 여쭈어도 고개를 흔들어 마다하시고 잠자듯 누워만 계셨다.
이튼 날 할머니의 기운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불효자식을 만드실 것입니까?” 하고 의사 왕진을 청하자 그때사 할머니는 그러라고 하셨다.
시골이지만 소재지에 집이 있었고 병원이 곁에 있었던지라 곧 바로 왕진을 와서 청진기를 할머니 가슴에 대어보며 한참을 살피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는 특별히 병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시고 돌아갔다.
그 때부터 온 가족이 할머니 곁에 둘러 앉아 기껏해야 따뜻한 물을 입에 적셔드리는 일을 하며 손발을 만져드리는 것이 다였다.
할머니는 그날 밤 자시를 넘기고 돌아가셨다. 단 한 번의 않는 소리도 않으시고 고이 잠드시면서 떠나셨던 것이다. 딱 3일만이다.
어린 그 때에도 나는 그 광경이 신기했다. 3일만 누웠다가 돌아가게 해달라는 할머니의 염불이 그대로 맞았고 앓지도 안고 돌아 가셨으니 자식 고생 시키지 않으려던 할머니의 소원대로 가신 것이다.
그런데 커서 알고 보니 할머니의 염불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말씀이 할아버지는 글이 좋아 할머니 가문에 장가드시게 됐고 결혼하여서도 글만 하고 농사와 자식 공양도 할머니가 도맡아 하셨다고 했다. 그러시다가 자식이 좀 큰 뒤에는 아예 해인사 절에 들어가서 글을 쓰고 하셨다고 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해인사 총무 일을 맡아 전국 사찰에 공문을 띄울 때 할아버지가 글을 쓰서 보내셨다고 들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삼가 집에 내려오면 할머니는 아무 불평 없이 모시적삼을 해서 옷가지를 챙겨드리곤 하였는데 할아버지가 해인사로 떠나시면서 없을 때 외시라고 할머니께 가르쳐주신 염불을 따라 하다 보니 외시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주신 유일한 선물이 염불 가르쳐 주신 것이었고 할머니는 그걸 매일 외신 것뿐인데 3일 누웠다 돌아가시는 복을 받으신 것이다.
해인사로 이어지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추억은 이러한데 나는 불효스럽게도 아직 불문에 들지도 못하고 있고 어딘가 남아 있을 지모를 할아버지의 글씨도 못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