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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우경철강(주) 회장 조효선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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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템플 - 최현태 2011년 08월 354호

중부지방은 장마가 끝나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오늘밤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겠습니다…라는 기상정보를 들으며 차창을 열었다. 웬걸~얼굴로 달려드는 바람 기운이 다르다. 반가운 바닷바람이다. 8월 뜨거운 태양아래 쇄락灑落을 이야기 하고 싶은 기업인 조효선 불자를 만났다. 쇄락灑落! 한 여름 무더위에 텁텁하기만 한 마당에 물을 뿌렸을 때 느끼게 되는 상쾌함과 시원함 아니던가.기도를 하면 기도 방이 되고 차를 마시면 다실이 되는
아파트 문 앞에 사자석상이 놓여있다. 기분 좋은 예감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마니주 조효선불자의 오늘은 보랏빛이다. 차탁위의 보라색 산 수국이 소담하고 그이의 옷 빛깔이 그렇다. 보랏빛에 이끌려 기웃거린 아파트실내가 격조 있는 한옥과 다름 아니다. 사서삼경과 골동가구가 놓여 있는 다실을 지나 족자의 파초그림이 시선을 모으는 방에 앉았다. 아! 그곳엔 여름채소 가지가 화병에 꽂혔다. 가지를 다화茶花로 꽂은 이 파격이라니…이 또한 보라색이다. 그이가 매일 아침 차 한 잔 정성스레 달여 올리고 기도하며 발원하는 곳이다. 다구를 만지는 매무새가 여간 아니다.

다실 같은 기도 방, 기도 방 같은 다실이네요.
“차 마시는 자리는 여러 곳이지만 굳이 다실이다…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습니다. 찻자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죠. 공간을 비우고 단순함의 미학을 들이면 거실도, 서재도, 안방도 모두 차회茶會를 할 수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그 자리가 다실이지요.”
오호라! 공空의 도리가 여기에 또 있다. 침대 없는 안방에 이불만 개면 다실이고, TV도 소파도 보이지 않는 거실은 적당히 비워져 여백이 있다. 창에 드리워진 물빛 모시가리개가 서늘하고 삼복더위도 폭염주의보도 무색한 실내다. 그런데 도대체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갤러리 같은 이집에서도 된장국을 끓이고 밥상이 차려질까?
“고맙게도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있잖습니까? 주방을 옮겼구요. 단순한 집안 분위기를 위해서 소파나 침대 같은 덩치 큰 가구를 치우고 곳곳에 수납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집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차를 마시면서부터 집안이 고요한 느낌이었으면 했거든요.”
그이는 말을 참 아낀다. 오래된 그이의 도반이 거들어 주었기에 고성 부잣집 9남매 중 여덟째로 자라 손님상 차리는 것도 겁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지런히 수납된 그릇장이며 가재도구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본 바 없이 자라서 쯧쯧’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조효선 회장의 야무진 살림살이며 집안 꾸밈새를 살펴보면서 말이다. 집안 곳곳이 다실이고 기도처인 그녀에게 기억하고 싶은 찻자리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통도사 자장암이지요. 인연 있는 스님과 일본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차 모임을 가졌는데…아시지요? 계단 따라 올라가면 소나무가 반기는 누각에서의 그 시간은 그야말로 법향과 차향이 가득한 향기로운 자리였습니다.”
자장암, 우주를 바라보는 천문대 같은 그 자리는 그이로 하여금 부처님 법 가운데서 차의 아홉 가지 덕을 품게 했을 터이다.
기다림은 성숙과 지혜로
이제 환갑이라는 조효선 불자의 지나온 삶은 비단길을 걸어와 꽃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그이에게도 과연 힘들고 지난한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주어진 복덕이 아름답고 편안해 보인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 아닐까요. 엉킨 실타래 풀듯이 천천히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억지로 되는 건 없더라구요. 그리고 저는 늘 잘 될 것이다… 는 믿음이 있었구요. 고통은 나의 힘을 길러줄 것이라 생각했지요.”
긍정인정이다. 소설가 이문열은 어렵고 힘든 삶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는 지금 내 전기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적고 있다’라고 중얼거렸다지 않는가.

마니주摩尼珠라는 법명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떤 인연인가요?
“범어사에서 남편 49재를 모셨어요. 그때가 마침 안거중이라 선방스님들께서 금강경독송을 해주셨는데 그것이 불법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인연이 되었지요. 마니주 는 원래 용왕의 뇌 속에서 나온 구슬을 말하는데 사람이 지니면 불에 타지도 않고 독극물에도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청정무구한 사람의 본래 마음을 뜻하기도 하구요.”
법명을 지어주신 스님께서 관세음보살처럼 살라 하셨단다. 책임감과 고마움에 첫 마음으로 우선 화주보살이 되어 초파일등 50개를 달았다.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차 도구를 챙겨들고 성전암에서 무차공양을 올리기를 몇 해, 그러다 큰 며느리를 불자로 들여 함께 한 두어 해는 그저 행복이었다. 암자로 찾아드는 모든 이에게 순해진 마음으로 무욕하게 차 공양 올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참 곱고도 아름다웠으리.
차를 내는 동안 기업인의 이미지가 얼핏 설핏 나타나지만 보기만 해도 예쁘다는 큰며느리자랑과 손자, 손녀 이야기를 하면서 한 옥타브 올라가는 그이의 목소리는 영락없이 자상한 할머니다. 이제 둘째며느리를 맞이한다면 차도 불교도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조효선불자는 숙우회에서 선차를 공부한다. 숙우회는 경봉스님을 비롯한 당대큰스님들의 정신과 사찰의 발우공양을 응용해 차를 행하는 모임이다. 숙우회는 차를 통한 수행으로 지혜롭고 성숙한 삶을 지향하는데 식힘 사발 숙우熟盂 역시 기다림과 성숙을 일컬음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고전 보기를 즐긴다는데 좋아하는 한시나 선시가 있다면?
“말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欺心을 좋아합니다. 족자로 만들어 다실 벽에 걸어 두고 새기지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欺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가 일러주는 가르침을 좋아하고 새겼기에 지금 저리 편안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젊어서는 아이들 뒷바라지며 사업에 짬 낼 시간이 없었는데 늦게 시작한 공부에 새록새록 재미가 붙는단다.

나이드니 어떨 때 섭섭하고 무엇이 좋은지요?
“섭섭하다기보다는 시간이 별로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죠. 젊을 때는 아이들 뒷바라지며 사업하느라 짬 낼 틈이 없었는데 늦게나마 시작한 공부가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아이들한테 제가 좀 유난했거든요.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거 맞아요. 겉돌던 영어발음이 어느 순간 입에 착 감길 때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산사를 찾았을 때 주련을 한 글자씩 읽어 뜻을 맞춰 볼 때 공부한 기쁨이 밀려들지요.”
아이들에게 유난했다는 그이의 말이 그저 들리지 않는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강인한 힘을 갖고 있는 어머니는 여자 이상의 존재다. 그녀에게 두 아들은 힘든 시절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어려움을 극복하게 한 에너지였으리라.

불교가, 혹은 차가 회장님을 변화시켰다면 어떤 점인가요?
“매일 부처님께 향 사르고 차를 올리는 겁니다. 그리고 손님이라도 오시면 제대로 차 한 잔 대접할 수 있어 좋지요. 차는 사람을 순하게 살라 하고, 불법은 앎도 중요하지만 행하게 하고 무엇이라도 고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일러준 것 같애요.”
앎의 변주는 이렇듯 아름답다. 어릴 적 집에 들린 장사꾼들도 모두 밥 먹여 보내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 그런지 필자에게도 먼 길 왔다고 맛난 저녁 챙긴 넉넉한 그이지만 감성은 소녀다. 아직도 예쁜 꽃을 만나면 설렌다는 그녀, 국화 필 때쯤 가을꽃꽂이 해두고 차 한 잔 나누자 기별하겠단다. 삼복더위에 가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