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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에서의 고시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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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한범덕 2011년 08월 354호

3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만 고시공부하던 때를 생각하면 늘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그 답답하고 지루하고 그러면서도 고민에 고민을 하던 젊은 날의 아픔이 생생합니다. 왜 그리 아펐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 때를 돌이켜보면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인데 온 세상의 고뇌는 다 짊어진 것처럼 왜 하루도 마음을 편하게 갖지 못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대학은 졸업했지, 군대는 가야지, 결혼도 해야지, 부모님도 잘 모셔야지…그러기위해서는 직장을 잡아야하는데 쉽게 생각했던 행정고시가 왜 이리 안 되는지…글쎄 왜 안 되는 일의 나열만 되는지 몰라도 그 시절의 내 젊음은 해야 될 일만 있었지, 해놓은 일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더 마셔댔고, 책은 팽개쳐 놓고 세월만 보내면서 그저 세상원망만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충청북도 단양에 살던 친구가 강제로 저를 데려다 놓은 곳이 찻길에서 세시간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 도락산 광덕사라는 조그만 절이었습니다. 무심코 그 친구 제안을 받아들이고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산길을 올라가면서 후회를 많이 했지요. 제대로 된 길도 아니고 나무를 베기 위한 산판길인데다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한 도락산의 깊은 계곡에 잘못왔구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또 한편으로는 사방이 꽉 막힌 듯한 현실에서 일단 떨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어 군말 없이 뒤를 따라 갔습니다.

막상 절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형편이 없더군요. 건물도 낡고 협소한데다 편의시설이라곤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이 자급자족해야 하는 절의 형편이었습니다. 전기는 물론 없었고, 물도 넉넉지 않은데다 식량도 주식은 산판길이 열릴 때 구한 3년묵은 쌀이지요, 부식은 철저히 직접 갈아먹어야 하는 살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의 배설물도 귀중한 자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식성이 엄청 좋은 먹보인 나로서도 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고, 반찬은 물론 입에 맞질 않았지요. 화장실에 가서도 자기의 배설물을 재로 잘 다독이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등잔불의 적응도 어려웠던 것은 물론이고요. 다만 그 절을 지어 살아오신 주지스님과 공양주보살님의 넉넉하신 웃음과 여유가 위안이 되었습니다. 예불 올리랴, 농사지으랴, 살림살이하랴 두 분의 하루하루가 예사롭지 않았지요. 또 먼저 와있는 고시 공부하는 친구 하나와 병치료를 위해 와있는 고등학생 하나가 외로움을 덜어주었지요.

그런데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낯설었던 환경이 날이 갈수록 낯이 익게되자 차츰차츰 편하게 되고 그에 따라 마음도 가라앉아 공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에서 떨어진 불편함이 익숙해지자 복잡해진 마음이 단순해지면서 공부에 몰두하기가 쉬어졌습니다. 산중의 산이라 자급자족에 의존하는 살림인지라 힘들여 농사진 작물을 마구 먹어대는 산짐승은 생존을 위하여 막아야 했습니다. 살생을 하지 못하는 절이지만 덫을 놓지 않을 수 없었고 올가미를 길목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걸린 짐승이 있으면 그것을 처리하는 일은 도리 없이 공부하는 남자들인 우리 고시생이었는데 나이가 조금 위인 내가 해야 했지요. 중학 1학년때 개구리 해부도 하지 못했던 나로서 노루를 칼로 손질했던 일은 지금도 신기합니다. 그냥두면 썩은 사체에 파리가 끼어들어 도저히 견디지 못했기에 손질해야 했는데 요리는 하지 못하고 나뭇꾼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산중의 산사에서의 생활은 어찌 보면 생활 속의 수양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심이란 복잡함에서 벗어나 단순함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아닌가 합니다. 그 덕분에 저도 그 많던 고민을 단순화시켜 마음에서 밀어내고, 책을 볼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희미한 등잔불아래 그야말로 적막만이 존재하는 산사에서의 생활은 그대로 불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여하튼 저는 공부를 하게 되었고, 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직 30년이 지나고 선출직 공직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잘했든 못했든 공직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 것은 산사에서의 고시공부가 큰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고시합격하면 단양군수 되어 도락산 광덕사를 좋은 절로 만들어 달라는 주지스님과 공양주보살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생생히 귓전을 울립니다.